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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Buxoro |하우지나브 거리(Xavzi Nav ko'chasi)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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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머물면서 느끼는 인지적 혼란은 이들이 쓰는 ‘글자’에서 비롯된 게 분명하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의 글자가 ‘상당히’ 다르다는 건 알았다. 그러니까 이들이 키릴 문자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다. 문제는 이들이 키릴 문자만 쓰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식적으로 오늘날 우즈베크어는 라틴 알파벳 표기를 따른다. 여전히 키릴 문자가 더 많이 쓰이고는 있지만, 라틴 알파벳이 자주 눈에 띄는 이유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생기는 문제. 우즈베크어를 키릴 문자로도 적고 라틴 알파벳으로도 적는다는 것 뿐만 아니라, 러시아어를 키릴 문자로 적고 영어를 라틴 알파벳으로 적는 데서 오는 극심한 혼란이다. 키릴 문자를 전혀 읽을 줄 모르는 나도, 라틴 알파벳과 비슷한 글꼴을 보면 얼추 발음법이나 뜻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키릴 문자와 라틴 알파벳은 닮은 듯 다른 고유 알파벳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H, P 같은 문자는 각각 /n/, /r/로 발음이 된다.
N과 R을 좌우로 뒤집어 놓은 알파벳은 또 어떠한가? 이들은 각각 /j/, /ja/로 발음된다. 글자에서 소리로 넘어가면 이 혼란상은 한층 커진다. 발화자의 문장 속에서 문장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될만한 키워드를 파악하기가 아주 어렵다. 튀르크어족인 우즈베크어는 인도-유럽어족이 공유하는 기초적인 어휘가 아예 다르다. 하나, 둘, 셋을 헤아리는 것에서부터, 일상 어휘도 전혀 다르다. 적어도 글자를 알아볼 수 있거나—한자 문화권—영어로 웬만큼 소통이 가능한—유럽과 인도—지역만 여행해온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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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내가 가려던 곳은 칼리파 쿠다이다드 사원(Xalifa Xudoydod masjidi)이다. 구시가지에 있는 사원들보다는, 현지인들이 실제 종교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는 곳을 보고 싶었다. 이 건조한 도시에 지하 우물이 있다는 사실도 흥미를 끌었다. 다만 중간에 거쳐가는 이스마일의 묘(Somoniylar maqbarasi)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중앙아시아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슬람 양식의 건축물이라는 이곳은, 문양만 해도 십수 가지가 넘는 말린 벽돌로 만들어졌다. 이 벽돌들은 빈틈없이 쌓아 올려지지 않고, 마치 날실과 씨실이 포개어 있는 것처럼 벽돌 사이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어슷한 방향으로 쌓아 올려져 있다. 덕분에 묘 안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데, 오전에 이미 볕이 뜨거워질대로 뜨거워져 바깥을 바라보는 눈이 부시다.
이스마일의 묘는 외관 자체도 훌륭하지만, 내부는 더 볼 만하다. 특히 돔과 돔 아래를 떠 받치고 있는 벽돌들의 화려함과 정치(精緻)한 배열에 시선을 빼앗긴다. 하지만 이곳은 어디까지나 묘인지라 내부 한켠에 석관(石棺)이 떡하니 있다. 그럼에도 내벽을 따라 돌벤치가 있어 그늘에 앉아 건축 감상을 즐길 수 있는 이 곳은 완연한 관광지이다.***
이곳 거리에서는 칼 파는 가게가 심심찮게 보인다. 모직물과 자기 그릇을 파는 관광지의 여러 기념품샵 사이에서도 어김없이 칼 가게가 보인다. 묘역을 떠나 하우지나브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그랬다. 하우지나브 거리는 영동대로만큼이나 차선이 많은 도로다. 차이라면 길가로 높은 빌딩을 대신해 오래된 단층 건물이 많다는 점이다. 예의 멋없이 커다란 벽돌 건물을, 주택으로 쓰는 곳도 상점으로 쓰는 곳도 있다. 그리고 이 틈바구니에도 역시나 칼 가게가 보인다.
비행기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N에 물었을 때, 우즈베키스탄에서 ‘칼’을 사갈 만하다고 했다. 이곳의 칼은 생김새가 독특하다. 칼날이 초승달 모양처럼 휘어져 있는데, 뭉뚝한 꼴을 하고 있는 우리의 칼과는 확연히 생김새가 다르다. 실용성이 낮아 보여 처음엔 장식용으로 만든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주택가 사이에 있는 이 상점에서도 같은 꼴의 칼이 매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의 종교가 초승달을 상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곳의 주식(主食)인 양고기를 손질하기에 이런 모양새가 더 적합한 건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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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도착한 칼리파 쿠다이다드 사원. 주말이어서 사람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던 것과 달리 파리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을 만큼 사원 일대의 골목은 조용했다. 사원에 가면 입구마다 전광판에 기도 시간을 알리는 시간표가 있다. 글자를 읽을 줄 몰라도 전광판에 뜬 숫자가 기도 시각이라는 건 대충 알 수 있다. 기도 시각은 적혀 있거늘 어찌된 일인지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실제 종교생활이 행해지는 곳을 보러 더운 날씨를 뚫고 여기까지 왔거늘.
무슬림의 기도는 하루 중 다섯 번 이루어진다. 새벽(Fajr, 파즈르), 정오(Dhuhr, 주흐르), 오후(Asr, 아스르), 일몰(Maghrib, 마그리브), 밤(Isha, 이샤)가 그것이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외지인이 보기에는 꽤나 엄격하여, 어떤 숙박시설에서는 객실의 벽면 꼭대기에 교통카드만한 크기의 초록색 플라스틱 패널에 초승달을 내건 모스크의 엠블럼을 표시해 부착해 놓은 곳도 있다. 비상구 표시도 아니고 저게 뭘까 곰곰이 유추하다가, 메카가 있는 방향, 그러니까 기도를 올릴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라는 그럴 듯한 결론에 다다른 적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20분 거리를 걸어와 사원 경내를 둘러보지 않을 순 없었고, 사원 앞 수위실 같은 곳을 지키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에게 들어가도 되는지 손짓을 해보였다. 흔쾌히 들어가도 좋다고 한다. 육중한 나무문을 낑낑 밀고 들어가자, 겉으로 보던 만큼이나 내부 또한 개량된 느낌의 건물이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내부 역시 사람 한 명 없었지만, 비신자가 들어와서 돌아다니기에 위험한 분위기 역시 없었다. 이따금 인기척이 들려 주위를 둘러보면, 히잡을 두른 아주머니가 장미에 물을 주거나, 새하얀 비슈트를 걸친 이맘이 어두컴컴한 기도실 문을 닫고 나오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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