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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Samarqand |물라칸도프 길(Mullakandov ko'chasi)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6. 1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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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 역에서 나는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택시를 잡았다. 사마르칸트에는 두 개의 노면 전차(streetcar) 노선이 있다. 마침 역 앞에 전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는데 승객이 꽤 찬 걸로 보아 곧 출차를 앞둔 것 같았다. 전차에 오르기 전 확인을 받아두고자 기사 아저씨에게 “레기스탄?”하고 물으니 영 반응이 시원찮다. 전차 뒤쪽 자리에 앉아 나를 지켜보던 할머니가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손주의 등을 민다. 소년은 전차의 전차의 뒷문으로 몸을 빼고 다른 노선을 타라고 유창한 영어로 일러 주었다. 그럼에도 다른 노선의 전차는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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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숙소가 있는 곳은 레기스탄에 인접한 물라칸도르프 길. 내가 레기스탄에 도착했을 때, 레기스탄에서는 이미 야간 조명쇼가 열리고 있었다.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한 이래 가장 인파가 많은 공간이었고, 내가 보기에도 볼만한 야간 조명쇼였다. 레기스탄을 비추는 형광 조명은 레기스탄이 가진 고유의 색채와 질감을 모두 지워버리고 부피만 남겨놓은 듯했다. 파사드를 어루만지는 변화무쌍한 색조를 보고 있자니, 흡사 알라딘이 사는 3D 애니메이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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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신기했던 경험 중 하나는 ‘인종 개념’ 또는 ‘인종에 대한 의식’ 희박해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인도 남부 또는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사는 사람들의 피부색은 이들에게도 유난히 눈에 띌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서 온 나는 내가 어딘가를 돌아다닐 때 내가 ‘주목받는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실제로 이곳에는 몽골, 또는 신장(新疆) 위구르 지역에서 온 듯한, 외모의 사람들이 많아 내 외모에 대한 이질감이 상대적으로 덜한지도 모르겠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통칭 ‘백인’으로 분류될 만한 러시아 사람들도 많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즈베키스탄으로 건너온 러시아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남쪽에 사는 페르시아인 또는 파슈튠인의 느낌이 나는 사람들도 상당수 보이는데, 이는 타지키스탄에 가까워질 수록 그런 경향이 더 짙어진다. 우즈베크인은 튀르키예를 제외하고 인구가 가장 큰 튀르크 계열의 민족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외지인인 내 눈으로 보기에 우즈베크인은 방금 언급했던 외양들이 모두 중첩(重疊)되어 있어서 집단의 공통된 개념적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 눈에 이런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했던 건 비단 그들의 혼종적인 외모와 인구 구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무리 나와 닮은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다고 해도, 내 행동거지나 옷차림, 시선은 그들이 보기에도 외지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들 ‘바깥’에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이들이 딱히 열려 있다거나 포용적이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반대로 무심해서 그런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분위기는 굉장히 이상한 기분을 들게 했다.
흔히 선진국이라 하는 서유럽 국가를 가면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친절함’을 경험하게 된다. 지속적인 라포(rapport)에 바탕을 두고 내게 베푸는 친절이 아니라 그들이 열려 있다는 걸 증명하는 주입된 친절이다. 인권에 대한 교육이 철저한 이들 국가에서는 교육은 되었으되 미처 체화되지는 못한 호의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서유럽 사회가 더 문명화된 것이고, 중앙아시아 사회가 덜 문명화되었기 때문에 느끼는 비언어적인 차이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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