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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세 번째 안동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26. 18:22
이틀 간의 짧은 일정으로 안동을 다녀온 뒤, 그러고도 몇 주 지나 한 번 더 안동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지난 번 일정보다도 더 짧아서, 동해안을 쓱 훑어보는 김에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안동을 들렀다. 안동은 이렇게 해서 세 번째 방문인데도 아직 못 가본 곳이 있었다. 바로 월영교였는데, 나는 노을이 지는 시간에 맞춰 월영교를 찾았다.
월영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목책교로, 워낙 오래된 유적지들이 많은 안동 안에서는 아주 근래(2000년대)에 조성된 곳이다. 밤이 되면 달빛이 밝아 달골이라고 불렸다는 이 일대의 설화에 영감을 얻어 달빛이 비춘다는 의미의 '월영교'라는 이름이 공모에 부쳐졌고, 안동시민들의 채택으로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는 글귀가 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희뿌옇던 날씨는 오후가 됨에 따라 차차 개여서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들의 푸름이 한층 선명해졌다. 늦은 오후의 태양은 안동댐이 유속을 바꿔놓은 낙동강 물줄기 위로 햇살을 무수히 쪼개놓고 있었다. 강물은 쪼개어진 햇살을 다시 포개어 놓으면서 무상하게도 유속을 거스르는 것 같다. 다리 위로 오르니 제법 강바람이 세서 시원했고, 한낮의 후텁지근함은 가을같은 선선함으로 누그러져 있었다.
그러고도 아쉬움이 남아 안동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법흥사지 7층 전탑을 둘러보고, 이전에 들렀던 카페에서 커피를 하나 주문했다. 이제는 되돌아가는 밤운전 길에 거북이 등딱지 같은 산등성이들이 먹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개개의 나부끼던 잎사귀나 나뭇가지들 따위가 이제는 하나의 집합체가 되어 어둠에 묶여 버린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두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의 민낯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햇빛이 모든 사물을 적나라하게 들춰내는 낮이 아니라, 빛이 사라진 어둠의 세상이야말로 태고의 원시를 간직한 본모습이라고. 서안동 톨게이트를 빠져 얼마나 달렸을까, 달리는 교각 아래로 영주 시내의 휘황한 네온사인들이 애처롭게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민낯의 저 밑바닥을 훑으면서 나는 서울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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