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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만휴정(晩休亭)여행/2023 봄비 안동 2023. 5. 11. 00:52
빗길 운전은 긴장되는 일이어서 안동으로 들어온 뒤에 지난 여행에서 자주 찾았던 카페로 향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 보니 불과 3년 사이에 안동역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안동역의 위치가 옮겨졌다는 것이다. 청량리발 KTX역이 신설되면서 구 역사는 문화플랫폼으로 변모해 있었다. 지난 여행에서 안동행 완행 열차를 탔던 걸 떠올리며 조금 아연했다.
다른 한편으로 모디684라는 이름—‘모디’는 경북 방언으로 ‘다함께’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으로 탈바꿈한 옛 안동역 광장 앞으로는 <차전장국 노국공주>라는 타이틀로 행사가 크게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나중에 히데(秀)와 차전놀이를 구경하게 된다.
카페를 입장했을 때 나는 냄새로 이 공간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랐다. 아기자기한 다육식물과 화초, 그림들로 실내를 꾸민 이 곳에서 가장 먼저 옛 기억을 상기시켰던 건 이곳에서 나는 향기였다. 냄새라는 건 말로써 형용하기 어려우면서도 시각에 비해 원초적인 면이 있어, 카페에 들어설 때 눈에 들어오는 것보다도 코끝으로 먼저 공간을 감지했던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시간을 뭉개다 간고등어로 점심을 해결하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안동에도 여전히 가보지 않은 곳이 있다. 그 중의 한 곳이 만휴정이다. 나는 이 만휴(晩休)라는 표현이 어딘가 마음에 든다. 뒤늦은 휴식이라고 본다면 지금까지는 쉼없이 달려왔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거꾸로 말하면 느즈막이 휴식을 취한다는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만휴정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아담한 못이 있는데 그 틈바구니로 계곡물이 졸졸 흘러내려간다. 비가 온 탓에 물줄기도 제법 무성하다.
보백당 김계행이 16세기 초에 지었다는 이 정자는 사색에 잠기기 참 적당한 곳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시원하게 계곡물이 흐르고 뒤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정자를 감싸고 있다. 정자를 잇는 외다리가 아니었다면 세상과는 영영 동떨어진 곳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 정자 뒤켠에는 언제부터 자라났을지 모를 새하얀 수국이 빗방울을 머금으며 몇번째인가 꽃망울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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