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휴정에 이어 내가 향한 곳은 다른 곳도 아닌 월송정(越松亭)이다. 월송정에 대해서는 많은 부연이 필요하지 않다. 싱그러운 소나무와 바다가 있는 곳. 그리고 그 완충지대에 봉긋 솟아오른 둔덕, 둔덕의 곡선을 어지럽히는 첨예한 정자. 비가 내리는 월송정을 가보고 싶었고 나는 당진영덕고속도로를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불과 5개월 전쯤 이곳을 찾았기 때문에 기억 속 낯익은 진입로와 주차장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사철 푸른 소나무가 펼쳐진 이곳의 풍경이 겨울과 크게 달라졌을 건 없다. 겨울에도 그랬듯이 이곳의 금강송들은 싱그러운 붉은 몸통 위로 진녹의 침엽을 하늘로 뻗어올리고 있었다. 먹구름을 떠받치는 덩치 큰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면 좀전까지 진녹의 빛깔을 띄었던 잎사귀들은 이내 빛을 등진 시커먼 응달로 모습을 바꾸곤 한다. 그리고 이따금 소나무숲 아래에서 색을 잃어가는 솔잎들을 허무하게 바라보곤 한다.
정자에 올라서면 비로소 부드럽게 뻗은 언덕 너머로 한 점 티끌 없는 바다가 펼쳐진다. 나는 아마도 서해나 남해보다 동해를 좋아하나보다 하고 생각한다. 갯벌도 섬도 없는 적막한 바다. 발걸음은 자연히 바다로 이어지고 해안선을 따라 파도를 마주하며 거닐어 본다. 모든 생각을 내던진 채 비가 멎은 바닷가를 걷는다.
다시 와도 좋은 장소다. 방금 해안선에 올라온 파도는 물러가면서 뒤이어 올라오는 파도와 조용히 겹쳐진다. 어지럽게 흩어진 해초와 어망의 잔해물들 따위는 신대륙으로 이어지는 단서라도 되는 것처럼 뇌리에 들러붙었다 의미도 없이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