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승산이라곤 없는 흥정이었다. 800 소모니, 한화로 1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 국경을 넘어간 곳에서 벌떼처럼 내게 접근한 택시기사들이 제시한 금액이다. 타지키스탄 측 경비소를 지나 바리케이드까지 넘었을 때, 타지크인들 일고여덟 명이 내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몇은 혼자서 영업을 하는 듯했고, 또 몇몇은 둘 쯤 짝을 이뤄서 호객 행위를 하는 듯 했다. 상당히 험상궂은 인상의 기사들에게 에워싸이고도 별다른 위험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나의 대담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엎어진 물을 되담을 수 없다는 현실 감각에서였다.
수중에 700 소모니를 들고 있던 나는, 아니 정확하게는 700 소모니를 들고 있는 줄로 알고 있던 나는, 내가 적어도 흥정에 나설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다. 휴게소 그늘에 앉아 있는 시커먼 남성들이 번갈아 가면서 내게 다가와 어르고 달랬지만, 700 소모니로 배수의 진을 친 나에게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늘도 없는 땡볕 아래에서 나처럼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키스탄으로 넘어오는 배낭여행객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두 시간이 지나도록 동행인을 구할 수 없었다. 드나드는 사람들이라곤 보따리를 주렁주렁 이고 오는 현지인들 뿐이고, 그나마 나타난 배낭여행객들도 곧장 판지켄트로 갈 생각이었을 뿐 반나절을 이용해 7개의 호수(seven lakes)를 다녀오려는 생각을 하는 이는 없었다.
타지크인들은 확실히 우즈베크인에 비해 수척하고 좀 더 가무잡잡한 피부를 가지고 있어, 더 벽지(僻地) 깊숙이까지 들어온 느낌이 있었다. 세월아네월아 마냥 시간이 흘러가던 중, 운전사보다는 관리자에 가까운 느낌의 한 타지크인과 막판 협상을 벌였다. 화폐 실물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직접 세어보다보니 내가 수중에 들고 있던 돈은 700 소모니에 한참 못 미치는 450 소모니 가량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더 높은 금액대를 배수진으로 여기고 버텼던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한번 현실을 받아들이고, 가지고 있는 돈 안에서 우선 판지켄트를 들어가기로 했다. 판지켄트로 들어가면 나와 같은 여행객을 더 만날지도 모를 일이고,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은행이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 J에 따르면 타지키스탄은 '-스탄'으로 이름이 끝나는 중앙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느낌이 다르다고 한다. 판지켄트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 마주한 그 혼종적인 거리의 모습이란. 우즈베키스탄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 소도시에서 사람들의 복장은 한층 보수적이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글씨였는데, 이곳 거리에서는 라틴 알파벳을 찾아볼 수 없었다. 죄다 키릴 문자였다. 구 소련 당시 지어졌을 법한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건물들과 그 옆에 뜬금없이 들어선 새하얀 모스크, 맞은 편 재래시장으로 이어지는 울퉁불퉁한 통로. 이 열악한 인프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왜 이리 붐비는지, 근대도 아니고 중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는 더더욱 아닌 정신 사나운 풍경이었다.
국경 검문소에서까지만 해도 딱히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판지켄트에 도착하니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은 지금껏 느껴봤지만, 이건 내가 무엇을 알지 못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보다 동물적인 두려움이었다. 멀쩡하게 거리를 활보하는 누군가가 테러리스트일 거라는 생각을 잠깐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제법 번듯해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정오부터 타지키스탄의 국경수비대에서 식사도 거른 채 객기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식당에 들어서니 나보다 늦게 검문소를 나와 먼저 판지켄트에 도착한 슬라브인들이 보인다. 거리에서 느꼈던 몽롱한 두려움은 식당 안이라 해서 사라지진 않아서, 심지어 한국의 웬만한 노포(老鋪)보다 훨씬 깔끔한 식당에 들어서면서도 묘한 공기의 차이를 느낀다.
예의바르고 건장한 청년이 내게 다가와 영어로 몇 가지 안내를 한다. 판지켄트는 타지키스탄의 작은 도시이고 수도인 두샨베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이지만, 영어를 쓰는 이 청년은 꾸미지 않은 예의바름이 있어 분명 대학생일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뷔페식으로 본인이 먹고 싶은 메뉴를 양껏 담아가면 그에 맞게 계산하는 이 식당에서도 어김없이 환타며 코카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마실 것으로 주어진다. 솜사나 고기 요리는 우즈베키스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국의 음식에 대한 감각이 없어 생각보다 많은 양을 받아온 나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는 동안 한족(漢族)과 똑같이 생긴, 그렇지만 머리에 히잡을 두른 어떤 여성과 그녀가 데리고 식사 중인 아이들의 맑은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천진한 아이들은 발도 닿지 않는 높이의 철제 의자에 앉아, 이따금 나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무구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다가 나랑 시선이 마주치면 배시시 웃으면서 옆에 앉은 형제의 등 뒤로 얼굴을 숨긴다.
뒤이어 페르시아(Farsi) 느낌이 풍기는 한 남성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혼밥을 하는 사이, 예의 청년이 내게 밀푀유 비슷한 디저트를 내어왔다. 손님을 위한 선물이라며 영어로 짧게 한 마디 한다. 상당히 상냥한 그의 태도와 분위기는, 식당 밖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촉수를 뻗어 감지해내려 했던 적의(敵意)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정말 이상한 체험이었다. 나는 거리에서든 건물에서든 무언가를 보고 있었는데, 그냥 시각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만이 아니라 그 공간을 총체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공간은 내게 명확하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때로는 내게 낯섦을, 때로는 내게 두려움을, 때로는 내게 친근함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내가 바라보는 것과 내가 느끼는 공간 감각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