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시간 흥정 끝에 원하던 수확도 없이 무턱대고 들어온 판지켄트 시내에서 딱히 구경거리가 없다는 사실은 한번 더 맥빠지는 일이었다. 부산스러웠던 루다키 거리에서 관심을 끄는 대상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재래시장이 있었지만 딱히 들어가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듯한 모스크 역시 그다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앞서 밝힌 것처럼 마치 다른 시간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주변을 조심스럽게 시선으로 쓸어담을 뿐이었다.
** 냉장설비도 없는 정육점을 돌아나올 때 누군가가 내게 알은 체를 했다. 타지키스탄 국경검문소에서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관리자 같던 인상의 아저씨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골 읍내같은 작은 시내에 내 움직임이 어쩔 수 없이 눈에 띄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작정하고 계속 예의주시하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 국경검문소에서 아저씨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조카라며 내게 전화연결을 해 흥정을 붙였었다. 그 아저씨 입장에서는 두 시간 동안 나를 구스르면서 어지간히 고집불통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간 그는 내게 제안을 했는데, 7개의 호수를 보러가지 못하게 된 이상 판지켄트 일대라도 구경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두 시간 동안 주머니속 내 현찰을 궁금해하던 자가 공짜로 구경을 시킬 리는 없었다. 나는 200 소모니에 차를 얻어타고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예의 조카가 안내자가 되어 동행하기로 했다.
*** 아담. 그의 이름은 뜻밖이었다. 아담이 이름일 수 있냐고 물으니 아담 자체가 '사람'을 뜻하고 생각보다 흔한 이름이라고 말한다. 기껏해야 20대 중반이나 되었을 법한 이 친구는 전형적으로 멋내길 좋아하는 무슬림 청년이었다. 넷째 손가락에 굵은 금반지를 끼고 머리에 가볍게 포마드를 바른 그는, 작은 키에 비해 겉보기에도 단단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일전에 경찰로 일했었다는 그는 지금은 큰 돈을 벌고 싶어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오너의 관광 사업을 보조하고 있다고 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허풍 섞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남다른 후광이 있는 친구였다. 그의 영어는 훌륭했는데, 터키어와 프랑스어도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슈퍼마켓에서 생수를 사는 동안 장난스럽게 프랑스어로 말을 거니, 프랑스어로 답변을 한다. 그는 이곳과는 도무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영화 주인공처럼 득의만만한 미소를 띠며 활발하게 걸어다니는 그는, 지나치게 국제적이고 지나치게 야심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에 비해 "튀었다". 더군다나 이 마을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수완을 부리는 듯한 그의 행세는 주민들이 보기에 어떻게 느낄까 싶기까지 했으니.
**** 이후의 여정은 단편적이다. 아저씨가 운전을 맡고 보조석에 앉은 아담은 자신이 관여하고 있는 사업얘기를 하며 이따금 걸려오는 전화를 받곤 했다. 우즈베크어나 타지크어나 알아들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 고대 사람들이 살았다는, 그러니까 이른바 '사라즘' 문명이 꽃피웠다는 곳을 두 군데 갔지만, 먼저 찾은 곳은 원시의 심원(深遠)함이 느껴지기보다는 오랜 기간 풍화가 진행된 지질 공원 같았다. 뒤이어 유네스코 유적지에도 잠시 들렀지만, 깊은 감명을 받지는 못했다.
***** 제라프샨 강이 내려다보이는 가리박 다리(Мости Ғарибак)로 향했다. 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현수교 위에 올라서니, 목조와 철골이 혼합된 구조물로부터 미세한 흔들림이 느껴지고, 맞은 방향에서 차가 다가올 때마다 시선이 흩어진다. 나는 이런 풍경이 참 좋다. 나무 하나 없는 민둥산, 척박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토양, 놀랍게도 그 위에 터를 지어 살아가는 사람들. 마치 비온 뒤 강물이 불어난 것처럼 다리 아래로 황톳빛 강물이 거세게 흘러갔다.
아담은 옆에 있으면서 야트막한 산자락 끝에 걸터 앉은 마을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즈베크인들이 사는 마을과 타지크인들이 사는 마을을 구별해준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 접경지역인 이곳은 우즈베크 사람들이 많이 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마르칸트처럼 타지키스탄에서 멀지 않은 우즈베키스탄 지역들이 한때는 타지키스탄에 속했다고도 한다. 닥종이를 찢어 붙여놓은 듯한 중앙아시아의 국경을 보며 그럴 법도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강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아담은 내 발음을 바로잡아 준다. "제라프샨". 두세 번 반복해서 읊조려보지만 아담이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나온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 목청의 떨림으로 뭔가 말해보려 하지만, 그 소리는 내것 같지가 않았다. 이 황량한 풍경 안에서 머뭇머뭇 입안을 맴도는 낯선 소리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많다는 것, 내 것일 수 없지만 누군가의 것이 있다는 것으로 인해 이 세계가 좀 더 넓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