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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3. Buxoro |미르두스팀 거리(Ulitsa Mirdustim)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4. 08:39
* 글의 제목에 부득이 건물 이름이 아닌 ‘길 이름’을 붙이게 된 건, 아주 난삽했던 이날의 동선 때문이다. 심지어 제목 속 도로명이 내가 들렀던 장소들과 반드시 일치하지도 않는다. 얼추 그 일대를 돌아다녔다는 의미다. 이곳의 지명을 잘 모르는 내가 편의상 취한 기록방법이니 그 기록 역시 난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이런 무리한 기록법을 선택하게 된 것은, 첫째 하루 동안 있었던 긴 여정의 호흡을 끊을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 너무나도 생소하고 이국적이었던 이 나라의 풍경을 지도 속 고유명사에서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이 날의 첫 행선지는 볼로하우즈 사원(B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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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길렘의 의학론일상/book 2025. 5. 23. 06:53
오늘날의 의학은 유기체의 자연적 반응에 대해 일단 의심하는 태도를 취한다. 의심은 반응이라는 사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반응이 처음에 적절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충분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이 의심은 개입하려는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촉진시킨다.―p.20 히포크라테스주의는 자연의 힘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비-히포크라테스적 의학은 그 힘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그 한계를 뒤로 물릴 수 있다. 오늘날 무지는 자연에 속하지 않는 것을 자연에 요청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의술은 자연의 변증법이다.―p.21 의학이 진단의 근거를 더 이상 자발적 증상에 대한 관찰에 두지 않고 유발된 징후에 대한 검사에 둔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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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 Buxoro |라비하우즈(Labihavz)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2. 15:44
* 부하라의 구시가지는 ‘오래된 동네’라고는 하지만 관광지로 재정비가 되어서 실상은 오히려 옛스러움을 느끼기 어렵다. 관광이 용이하도록 방부 처리된 공간에 가깝다. 오히려 큰길에서 떨어진 시장(bazaar)과 학교(madrasasi), 골목골목을 통해 옛 풍경을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이곳의 유적지를 다니다보면 19세기~20세기 초에 찍은 흑백 기록사진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는데,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곳들도 있다. 가령 부하라 아르크가 그렇다. ** 이제 알고 지낸지도 9년이 넘어가는 J는 내게 부하라의 야경을 반드시 챙겨보라고 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인 법. 혼자 여행하는 자에게 일용할 양식은 귀중하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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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2. Buxoro |부하라 아르크(Buxoro Arki)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21. 13:12
*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가 흔한 것처럼 이곳에서는 뽕나무가 흔하다. 보행로에 우수수 떨어진 이것이 오디가 맞다면 말이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진 하양 까망의 이 열매들은 아무리 보아도 내가 한국에서 맛보던 오디가 맞다. 껍질이랄 게 없는 이 작은 열매는 중력에 의해 지면에 닿을 때마다 찰팍, 하고 과즙을 터뜨린다. 뜨거운 햇살 아래 무방비로 노출된 과즙들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점액질을 띠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발 밑창이 찌걱댄다. **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아니, 아이들이 많다. 공차기는 만국공통의 놀이인지, 소리를 지르며 골목에서 공차기를 하는 남자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다만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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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수명일상/book 2025. 5. 20. 10:52
괜찮으시면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요컨대 선생님께선 지금, 에세이 작가는 임의적인 진릿값을 적용해 글을 쓸 수도 있고 현실 세계에 사는 실제 인물의 입에서 나온 인용문을 전혀 다르게 가공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한데 그런 건 보통 픽션이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p.62 “태권도가 비교적 현대에 체계화된 무술이라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실제로 문서화된 역사만 놓고 보자면, 태권도는 190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시작되었다. …비록 태권도의 실질적 형태는 한국의 최흥희라는 장이 조국의 다양한 무술 양식을 하나의 무예로 통합하기 위한 운동을 조직한 1955년에야 비로소 갖추어졌지만 말이다.” ―p.113 때때로 우리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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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2. Buxoro |나마즈고크(Nomozgokh)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19. 03:02
* 전날 열차를 놓치고 허탈감에 한동안 생각이 멈춘 나는 보안요원이 일러준대로 일단 매표소 창구에서 그 다음 열차라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긴 줄에 대기한 끝에 내 차례가 왔지만 영어로는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할 수가 없었다. 두 명의 당직자가 모든 승객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처리는 한없이 더뎠고, 발권 키오스크는 먹통이었다. 세월아 네월아 시간이 가는 상황에서 가장 빠른 열차를 타도 사마르칸트에 도착하면 새벽 3시가 넘는다는 걸 깨닫고, 이 무거운 배낭을 맨 채 계속 이 상태로 있을 순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 다만 탑승하지 못한 티켓을 일부나마 환불 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했지만, 중과부적(衆寡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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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산책여행/2025 끝추위 묵호 2025. 5. 18. 09:33
이제 이 여행기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여행기의 끝은 아주 평범하고 아주 밋밋하다. 장소로는 요새 전국 각지에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 스카이워크가 목적지였고, 날씨로는 맑다고 할 순 없는 우중충한 날이었으며, 시간으로는 주말 점심에 해당하고 사람들이 한창 활동하기 시작할 때였다. 이른 아침 무릉계곡을 다녀온 뒤 느즈막히 도착한 논골담길에는, 붐빈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 아담한 마을이 품기에는 다소 북적인다고 느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두 개의 스카이워크—바다에 접한 낮은 높이의 스카이워크가 있고 산자락 위에 설치한 고층 스카이워크가 있다—를 지나 묵호등대, 논골담길을 따라 거니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들지 않았다. 일찍이 문제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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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Toshkent |베쉬 코존(Besh Qozon)여행/2025 우즈베키스탄 2025. 5. 17. 22:28
* 우즈베키스탄에서 처음 맛보는 필라프는 제법 맛있었다. 음식 주문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필라프를 기본으로 시키고, 삼사(somsa)라 불리는 전통 빵과 샐러드를 주문했다. 여기에 콜라까지.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아 많은 양을 주문했다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식사가 나오고 보니 삼사는 냄비만한 크기에 통으로 나왔고 콜라는 뜬금없이 1.5L 들이를 가져다 놓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탄산음료를 즐기는 테이블이 여럿 보인다. 그래도 내가 찾은 베쉬 코존(Besh Qozon)은 N과 M의 말대로 우즈베크 스타일의 필라프로 이름난 곳인지, 넓은 식당 건물과 테라스로 사람들이 거의 다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점심시간에서 빗겨난 3시경에 찾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