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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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해선 안 될일상/film 2022. 5. 21. 08:13
한동안 라 필모테크 뒤 캬흐티에 라탕에서 시리즈와 시리즈를 꽤 긴 기간 동안 상시 상영했다. 하루는 날을 잡아 를 보고 왔다. 이야기 전개가 단조롭고 청승맞은 느낌은 분명 있지만, 홍콩 느와르의 서막을 연 기념비적 작품이기도 하고 꼭 그런 영화사적 의미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양조위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일국양제가 막을 내리면서 이런 느낌의 홍콩영화가 더 나올 일이 없다는 게 아쉬운 일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이렇게 기분 나쁘고 본 게 후회된 영화는 가스파 노에의 이 처음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라 필모테크 뒤 캬흐티에 라탕에서 보았다. 영화의 구성상 엔딩 크레딧이 영화의 맨 앞에 나오고, 영화의 맨 마지막에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듯한 메시지 '시간은 모든 걸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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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에콜 시네마 클럽(Écoles Cinéma Club)일상/film 2022. 5. 18. 05:20
라탕 지구의 에콜 시네마 클럽이라는 곳에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사실 영화를 본지는 한 달도 훨씬 더 전의 일인 것 같은데, 기록을 남기는 일도 점점 밀리면서 한없이 늦어졌다. 라탕 지구에서 르 셩포라는 영화관을 알게 된 후 크게 세 곳의 영화관을 번갈아 가며 종종 찾곤 한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된 게 에콜 시네마 클럽이라는 곳이다. 그리고 에콜 시네마 클럽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영화가 마틴 스콜세이지의 라는 작품. 라탕 지구에는 특색있는 영화관이 워낙 많은데, 각 영화관마다 서로 다른 개성이 있다는 게 관객으로서는 참 반가운 일이다. 라탕 지구에서 가장 처음으로 발견했던 르 셩포의 경우, 가장 특징적인 점은 흑백영화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컬러화돼서 상영 중인 오래된 작품들도 있지만, 양차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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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희한한 세상이야(It's a Strange World)일상/film 2022. 4. 9. 18:43
She wore blue velvet Bluer than velvet was the night Softer than satin was the light From the stars She wore blue velvet Bluer than velvet were her eyes Warmer than May her tender sighs Love was ours Ours a love I held tightly Feeling the rapture grow Like a flame burning brightly But when she left, gone was the glow of Blue velvet But in my heart there'll always be Precious and warm, a memory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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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온 여인일상/film 2022. 3. 30. 17:20
Elsa Bannister: I told you, you know nothing about wickedness. Michael O'Hara: A shark, it was. Then there was another, and another shark again... 'till all about, the sea was made of sharks, and more sharks, still, and no water at all. My shark had torn himself from the hook, and the scent, or maybe the stain, it was, and him bleeding his life away drove the rest of them mad. Then the beasts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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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햅번과 마릴린 먼로일상/film 2022. 3. 30. 01:45
최근 필모테크 뒤 캬흐티에 라탕(filmothèque du quartier latin)에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한 편은 코엔 형제의 , 다른 한 편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다. 영화관에는 크게 두 개의 상영관이 있는데 는 오드리 햅번 관에서, 는 마릴린 먼로 관에서 관람했다. 오드리 햅번 관은 파랑으로, 마릴린 먼로 관은 빨강 컨셉으로 꾸며 놓아서 특색 있는 영화관이다. 를 먼저 보았는데, 역시 이전과 마찬가지로 예정된 시각보다 10분여 늦게 시작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필립 시모어 호프만이 출연한다는 점 정도다. 나는 코엔 형제의 작품에 담긴 유머 코드나 그들이 보여주려는 세계를 잘 이해하지는 못하는 편이라서 코엔 형제의 작품을 찾아보지는 않는데, 하루는 가장 늦은 시각에 상영하는 작품 중 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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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다나카 키누요(田中絹代)일상/film 2022. 3. 11. 22:33
르 셩포에서 현재 상영중인 작품들은 최근에 개봉된 작품들은 없고 대체로 최소한 몇 십 년 전 쯤에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저녁 시간에 왕가위의 작품들도 상영하고 있지만, 같은 작품은 이미 봤기 때문에, 다나카 키누요(田中絹代)라고 하는 귀에 익지 않은 일본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처음 본 작품이 이고 두 번째로 본 작품이 인데 둘 모두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든다. 가장 큰 공통점은 매춘을 하는 여성들이 영화의 중심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배우로도 활동했던 다나카 키누요 감독은 48년 미조구치 켄지(溝口健二) 감독의 작품에서 창부 역할을 맡은 적이 있는데, 이후 그녀가 감독하는 작품 안에 창부라는 모티브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과 모두 외부로부터 갱생을 종용받지만 좀처럼 갱생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는 이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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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음에 관하여일상/film 2022. 1. 3. 21:59
31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는 북유럽 특유의 창백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말끔하게 표백된 영상 안에서 우울한 군상들의 삽화(vignette)가 하나의 커다란 스케치를 만들어 나간다. 신앙심을 잃은 사제, 옛 친구에게 미운털이 박힌 한 남자, 패전하고 쫓겨나는 군인들과 폐허가 된 도시,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여자로 인해 앙심을 품은 남자.. 영화는 루틴같은 비애와 고통이 우리의 삶을 끝없이(endlessly) 수놓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영화 속 장면장면들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루한 느낌도 있다. 영화에 결여된 것은 단연코 웃음이다. 영화에는 웃는 얼굴을 찾아볼 수 없다. 『장미의 이름』에서 엄격히 웃음을 금했던 호르헤 수도사의 철학이 떠오른다. 남자의 품에 안겨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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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아워(ハッピーアワー)일상/film 2021. 12. 18. 21:52
[직접인용은 없으나 스포일링이 될 수 있음] 317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밀도 있는 장면들로 꽉 차 있어서 올 한 해 봤던 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은 아주 잘 절제되어 있고, 그들 사이에 교차하는 대사와 시선은 단 하나도 버릴 것이 없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드러내보이길 두려워하는 아카리(あかり), 친구들 사이에서 묵묵하게 관계를 조율하지만 그 자신이 처한 곤경은 털어놓지 못한 사쿠라코(桜子), 허울뿐인 대화 속에서 사실은 자신이 죽임 당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던 준(純),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표현하는 데 마냥 서툰 예쁜 이름의 후미(芙美),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키겠다는 코헤이(公平), 의미없는 말들로 사람들을 시험하는 우카이(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