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편의 에콜 시네마 클럽(Écoles Cinéma Club)일상/film 2022. 5. 18. 05:20
라탕 지구의 에콜 시네마 클럽이라는 곳에서 두 편의 영화를 봤다. 사실 영화를 본지는 한 달도 훨씬 더 전의 일인 것 같은데, 기록을 남기는 일도 점점 밀리면서 한없이 늦어졌다. 라탕 지구에서 르 셩포라는 영화관을 알게 된 후 크게 세 곳의 영화관을 번갈아 가며 종종 찾곤 한다. 그중 가장 마지막에 알게 된 게 에콜 시네마 클럽이라는 곳이다. 그리고 에콜 시네마 클럽에서 처음으로 접했던 영화가 마틴 스콜세이지의 <특근(After hours)>라는 작품.
라탕 지구에는 특색있는 영화관이 워낙 많은데, 각 영화관마다 서로 다른 개성이 있다는 게 관객으로서는 참 반가운 일이다. 라탕 지구에서 가장 처음으로 발견했던 르 셩포의 경우, 가장 특징적인 점은 흑백영화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컬러화돼서 상영 중인 오래된 작품들도 있지만, 양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하는 비교적 오래된 영화들이 많이 상영되는 편이다. 최근에는 루이스 부뉴엘과 장 르누아르의 작품들이 상영중이고, 다나카 키누요라는 50~60년대 영화감독을 알게 된 것도 바로 이곳이다. 라탕 지구 안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영화관 중 한 곳인 이곳은 안타깝게도 일대의 다른 영화관보다는 관객 수가 많지 않은 편이다. 이 일대 영화관 중에서도 상영작이 대체로 가장 클래식한 편이어서일까.
다음으로 필모테크 뒤 캬흐티에 라탕은 가장 내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상영되는 곳이다. 르 셩포와 비슷하게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많이 상영되는데, 똑같은 거장 똑같은 마스터피스라고 해도 내게는 어쩐지 장 르누아르보다는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이름이 훨씬 친숙하게 다가온다. 최근에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상영되고 있는데,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유위강 감독의 <무간도>처럼 비교적 최근 작품들도 비중 있게 포함되고 있다. 내가 찾는 세 곳의 영화관 가운데 가장 관객수가 많은 곳이다. 이 영화관과 관련해서는 약간의 에피소드가 있는 편이다. 일단 관람비를 아끼려고 이 영화관의 영화 정기권을 10장 단위(un carnet)로 구매했고, 티켓부스를 지키는 청년도 이제는 나를 알아보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가스파 노에의 작품을 봤는데 살면서 본 영화 중 처음으로 관람을 후회한 영화도 있었던 기억과, <무간도>를 관람할 때는 내 앞에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는 듯 영화상영 내내 키득키득대는 이곳 학생 몇 명 때문에 짜증났던 기억 등등.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발견한 게 바로 에콜 시네마 클럽이다. 앞의 두 영화관에 비해서는 생미셸 거리에서 조금 빗겨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제법 관객이 많다. 상영작의 구성이 서울 대부분의 독립영화관들과 비슷한 느낌이다. (아마도 르 셩포가 우리나라의 서울아트시네마와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정작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좀 궁금하기는 한데, 예전에 상영시간표를 찾아봤을 때 라탕 지구에 있는 영화관들과는 상당히 달랐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에콜 시네마 클럽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은 시기적으로 무게 중심이 더 최근으로 옮겨 온다. 최근에는 에릭 로메르의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상영되고 있어서 누벨바그로 회귀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영화 <캐롤>을 본 것도 이곳에서였다.
영화 감상이 아닌 영화관 감상으로 빠졌는데, 어쨌든 <특근>—제목 번안을 나름 잘한 것 같다—은 파리 시내의 영화관을 하나둘 알아가던 시기에 주로 접했던 미스터리 영화들—<블루 벨벳>,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과 비슷한 느낌을 지니는 블랙 코미디 영화다. 폴이라는 남자가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마시라는 여자와 엮이면서 생기는 해괴망측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런 미스터리 영화들의 공통점은 굉장히 불가해한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영화에서 시선을 뗄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가 쓰이기도 하고, 또는 다소 급진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도,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까를 기다리면서 긴장감을 갖고 계속 지켜보게 된다.
특히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어김없이 영화에 등장하는 태엽이 앞으로 움직이는 듯한 OST도 기억에 남는다. 폴은 이날 일과 후 특근을 단단히 한다. 현실에 있을 법하지 않지만 때론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게 폴의 일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다음으로 본 영화는 <캐롤>이라는 영화로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간혹 재개봉하면 눈독을 들이던 영화다. <캐롤> 자체가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보니 국내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단골로 재개봉하는 영화였는데, 에콜 시네마 클럽에서 최근 상시 상영을 하고 있었다. 일단 믿고 보는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가 있었고, 루니 마라가 맡은 테레즈 벨리벳이라는 역도 퍽 눈에 띈다. ‘사랑스럽다’는 수식어가 가장 걸맞는 영화다. 영화 속 풍경은 계절상 분명 겨울임에도 모든 장면마다 온기가 느껴졌고, 두 주인공이 무언으로 주고 받는 시선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버릴 장면 하나 없이 언제 어느 장면을 다시 펼쳐 봐도 따뜻함이 느껴질 것 같은 영화다. 영화 감상보다 영화관 감상이 길었던 이번 리뷰는 이쯤에서 끝—:)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Upside Down (0) 2022.08.26 마주해선 안 될 (0) 2022.05.21 참 희한한 세상이야(It's a Strange World) (0) 2022.04.09 상하이에서 온 여인 (0) 2022.03.30 오드리 햅번과 마릴린 먼로 (0) 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