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에서 온 여인일상/film 2022. 3. 30. 17:20
Elsa Bannister: I told you, you know nothing about wickedness.
Michael O'Hara: A shark, it was. Then there was another, and another shark again... 'till all about, the sea was made of sharks, and more sharks, still, and no water at all. My shark had torn himself from the hook, and the scent, or maybe the stain, it was, and him bleeding his life away drove the rest of them mad. Then the beasts to to eatin' each other. In their frenzy, they ate at themselves. You could feel the lust of murder like a wind stinging your eyes, and you could smell the death, reeking up out of the sea. I never saw anything worse... until this little picnic tonight. And you know, there wasn't one of them sharks in the whole crazy pack that survived.
Arthur Bannister: Killing you is killing myself. It's the same thing. But, you know, I'm pretty tired of both of us.
스토리 면에서 보자면 퍽 난해하기도 하고 산만한 느낌이 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지 영화가 끝나고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뭘 말하려 하는지 모르겠어, 하고 옆사람에게 중얼중얼 투덜거린다. 영화의 주제가 문제라기보다는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뭔가가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영화 초반에 엘사(리타 헤이워스)와 마이클(오손 웰스)가 조우한 다음, 엘사의 남편 아서 베니스터와 그의 친구 그리스비가 빠른 속도로 등장한다. 특히 그리스비가 죽는 과정이 깔끔히 묘사되지 않는 부분이 (다음 이야기 전개를 위해 스토리를 막연하게 남겨 놓는다고는 하나)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에서 온 베니스터 부부가 아카풀코와 파나마 운하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향한다는 설정은 어쩐지 쥘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떠올리게 한다. 또 그리스비가 마이클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청탁하는 장면은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나 그밖에 자살을 요청하는 모티브를 활용한 다른 미국소설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실 영화의 핵심적인 주제에 관해서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여정 중 마이클 오하라가 풀어놓는 상어(requin) 이야기가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한 번은 브라질을 간 적이 있는 마이클 오하라는 석양이 내려앉는 바다에서 서로를 물고 뜯고 죽이는 상어를 발견한다. 마이클이 소개하는 이 삽화는 타인을 끊임없이 기만(欺瞞)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기만하는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표리부동하고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도 제어하지 못한다.
아내의 요청대로 마이클을 고용하지만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때로 그의 고통을 즐겁게 바라보는 아서. 배 위에서 교태롭게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남편의 친구를 죽음으로 내몬 엘사. 엘사와 도주하기 위해 그리스비의 청부를 수락하기로 한 마이클. 엘사에게 집요하게 구애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죽음을 바라는 그리스비. 이 모든 인물들은 단순히 어느 한 측면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영화 안에서 역할이 쉼없이 바뀌고 그 성격 또한 반전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어 이야기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 반전이라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저열하고 때로는 흉측한 욕망이 뒤얽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상하이에서 온 여인>에 관해서라면 마지막 거울 씬을 빼고 볼 수 없는데, 1940년대 영화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세련된 느낌이 있다. 입사각이 다른 여러 개의 거울 사이로 세 명의 인물—마이클, 엘사, 아서—가 혼란스럽게 비춰진다. 하반신이 자유롭지 못한 아서가 두 개의 지팡이를 짚고 절룩이는 모습이 거울에 반사되는 장면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자신의 욕망을 전혀 제어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모습으로 거울 앞에 나타난 아서의 모습은 어쩐지 라캉이 거울이론을 연상케 한다. 그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한 유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심리적으로 발가벗겨진 아서의 모습이 거울 안에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게 퍽 감각적이다.
스토리가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장면의 구성이 치밀하다고 느꼈다. 이는 마지막 거울 씬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파나마 운하를 우회해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여정 위에서 각 지역의 특색에 맞는 장면들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잘 담겼고, 경극(京劇)과 놀이공원이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한 점도 좋았다. 물론 오손 웰스와 그의 아내이기도 한 리타 헤이워스가 매력적이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손 웰스라는 감독을 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의 작품을 조금씩 찾아보아야겠다. [end]
'일상 > film'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편의 에콜 시네마 클럽(Écoles Cinéma Club) (0) 2022.05.18 참 희한한 세상이야(It's a Strange World) (0) 2022.04.09 오드리 햅번과 마릴린 먼로 (0) 2022.03.30 두 편의 다나카 키누요(田中絹代) (0) 2022.03.11 끝없음에 관하여 (0) 202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