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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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즈음에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17. 11. 9. 00:16
늘 머리를 떠나지 않는 몇 가지들.. 삶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사명감. 끝모를 외로움, 소외감, 그리고 소리없는 몸부림. 도돌이표를 찍는 괴로움, 어수룩한 표정과 몸짓들. 천근만근 어깨를 짓누르는 목표설정, 힘겹다 못해 이탈 직전에 놓인 과정들. 그럼에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전혀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해서 이상할 것 또한 없는 지금의 삶. 과밀한 삶 속에서 때로 멍한 눈초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떤 때는 잠시 한 마리 짐승이 되었다 느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정신이 뜨였을 때 수면 위로 올라오는 슬픔. 삶은 아름답지만 참 슬프기도 하다. 삶은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다. 삶이라는 노정은 결국 정의를 다듬어가는 여행길일 터. 아마 나는 끝끝내 내 삶을 정의하지 못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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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즙(搾汁)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17. 6. 12. 03:36
뿌리가 퍽퍽한 토양으로부터 희박한 수분을 빨아들인다. 뿌리는 물을 찾아 가녀린 잔뿌리로 처절하게 흙을 더듬고 있겠지. 줄기를 지탱해야 할 이랑의 흙더미는 메마른 먼지가 되어 흩어진지 오래된 듯, 식물의 밑동은 건조한 열기에 맨몸을 휑하니 드러낸 채로 줄기라는 것을 떠받친다. 그나마 땅위로 솟아나온 줄기는 거꾸로 서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볼품없이 뻗어 있다. 듬성듬성 가지에 남은 잎사귀들―남은 잎사귀보다 떨어진 잎사귀가 더 많은데 이랑의 흙더미와 마찬가지로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빛바랜 누런 색을 띠고 있다.광합성은 제대로 할는지 이 식물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 보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채 여물지는 않았으되 야윈 열매들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완연히 무르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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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생각을 좀먹다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17. 4. 18. 23:22
하루는 모든 인풋을 멈추어 보았다 즐겨듣는 mp3 음악감상,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공부, 운동, 독서, 모두 다 내키지 않는 하루였다 입시, 스펙쌓기, 군복무, 이제는 취업단계다 그간 나름대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왔다 다음으로 내게 인풋될 명령어는 무엇일까 결혼? 승진? 노후대비? 뭐 하나씩 스테이지를 완파해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 그런데 왜 이리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은 느낌일까 발가락이 꽉 껴서 아프다 100km 행군을 하고나서 왼발 넷째 발가락의 발톱이 기이하게 휘어져 버렸는데 되돌아오질 않는다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발톱을 깎을 때마다 일그러진 발톱을 되돌리고 싶은 묘한 기분이 들곤 한다 내게 주어질 다음 명령어는 무엇일까 내 삶이 그 발톱처럼 되어가고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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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동호(東湖)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16. 11. 15. 01:53
우연(雨煙)에 가라앉은 도시물기를 머금은 공기중에 둔탁하게 퍼지는 차량의 전조등 도도(滔滔)하게 흐르는 시커먼 한강물그 위에 흩어지는 주홍, 다홍 따위의 나트륨등(燈) 백색 난간이 없었다면 아스팔트빛 하늘과 구분하지 못했을 교각그 교각을 관통하는 오렌지빛 철교(鐵橋) 길 위에 어지러이 흩어진 젖은 낙엽의미를 알 수 없는 형형색색의 전단지 조각들박쥐처럼 땅으로 내려오는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시시각각 색깔이 바뀌는 한남대교의 조명과 정박한 유람선이 발하는 눈시린 백열등치우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것 같은 크고 작은 쓰레기 부스러기 인위적인 것들서로 어울리지 않는 과시(誇示)의 향연이 모든 것을 묵묵히 집어삼키는 어둠과 박무(薄霧) 그리고 나를 집어삼킬듯 굉음을 내며 달려드는 자동차들강변북로 너머로 눈에 들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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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와 광화문 사이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16. 8. 20. 20:52
小考#1 다양한 군상이 모였다 흩어지는 이곳. 왁자하게 떠드는 젊은이들, 다정한 연인, 담배연기에 에워싸인 넥타이부대, 손에 지도를 쥐고 길을 헤매는 타국의 사람들, 아이의 고사리손을 잡고 책을 사러 나온 부모, 카페 창가에 앉아 진득하게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사람. 웃는 얼굴, 조금 의기소침한 얼굴, 술에 취한 얼굴, 손님을 대하는 얼굴, 대화에 몰입한 얼굴. 뭐 하나로 꼬집어 정의내릴 수 없는, 막연하게 들뜬 기운이 감도는 어느날의 이곳, 종로와 광화문 사이에서. 小考#2 '무엇인가'가 되려고 하지 말고, '나'가 되려고 하지도 말고, 이 모든 것을 의식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