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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분실(紛失)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3. 09:54
9월 3일 휴일에 남기는 기록. 힐로에 도착한 첫날은 별다른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렌트카 영업소에 백팩을 두고 온 사실을 숙소에 도착한 뒤에야 알아차려서, 렌트카를 빌린 장소로 다시 차를 몰고 가야 했던 것이다. 영업소에 전화를 걸어보니 다행히도 불과 몇 시간 전 키를 건네 주었던 직원이 보관하고 있단다. 미국에서 분실물을 찾다니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팁 문화를 잘 모르더라도 귀중품을 찾아준 사람에게는 사례를 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기도 하건만, 아버지가 되찾은 백팩에 들어있던 현금 중 소액을 백발의 직원에게 건네도 직원은 꽤나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길에 안도하면서도 나에게 미안해 하셨고, 나는 그런 모습에서 아버지의 나이듦을 또 한번 곁눈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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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의 느낌—영화와 바다일상/book 2024. 9. 2. 18:19
……영화는 글이나 그림과 다르게 물리적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 예술이다. 외부 세계, 기술, 미적 의도 사이 만남의 산물인 렌즈 기반 이미지는 외부 세계에 불가분하게 속해 있다. 그라베의 말을 바꿔 말하자면, 영화는 세상 밖으로 떨어질 수 없다.―p. 2 바쟁에 의하면, 사진의 진정한 힘은 현실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관객이 “사물의 실재성이 그 재현물로 전이”되면서 이미지가 생산되었음을 인식하는 데 있다.―p. 29 기술은 아마도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덜어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술은 아마도 삶의 방식을 불도저로 밀어버릴 것이다.―p. 36 연안 노동을 묘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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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힐로(Hilo)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 11:40
8월 힐로의 날씨는 고요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하와이 행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5월에 갔어야 할 여행이었지만 회사에서 예정에 없던 신규 프로젝트에 착수하면서 예매해 둔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게 되었다. 1년 전, 그러니까 작년 5월 무렵에 예약해 놓은 티켓이었다. 하와이로 출국하는 당일에는 우리나라에 태풍이 올라왔다. 기상 상황이 불안정해서 비행편의 이륙시간이 두어 차례 순연되었다. 인천에서의 이륙이 늦어지면서 덩달아 하와이 안에서 한 번 더 이동하는 국내선 비행편으로의 환승 또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때문에 일찍부터 준비에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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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매미울음을 들으며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4. 8. 20. 17:55
올해 들어 날씨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무더위도 아니고 기습적인 호우도 아니고 바로 매미의 변화 때문이다. 이번 여름 유난히 길바닥 위로 죽은 매미가 심심찮게 보였던 것. 날아다니는 매미를 땅에서 발견한다는 것도 기이한데, 작년까지만 해도 보지 못한 광경이라 생경하기까지 하다. 뙤약볕을 받아 바싹 메마른 매미를 보며 안타까움이 들었던 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5~6년의 시간을 어둠 속에서 지낸 시간이 덧없을 뿐만 아니라, 표독스런 햇살이 그런 무상함을 더욱 적나라하게 들춰보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도심지역의 밝은 불빛으로 인해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매미울음이 소음공해로 인식되어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적이 있다. 원인 제공을 한 건 바로 우리 자신일 텐데 책임주체를 뒤바꾸는 건 참으로 손쉬운 일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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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망: 미니멀리즘 탐구카테고리 없음 2024. 8. 17. 02:30
심오한 미니멀리즘과 피상적 미니멀리즘의 차이는 개념이 전도되는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니까 더 효과적으로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줄이는 과정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자신을 줄이는 과정 뒤에 따라오는 보상을 받기 위해 의지를 관철하느냐 둘 중 하나다. 이것은 사상으로서의 미니멀리즘이 사물로서의 미니멀리즘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후자는 소유물을 멀리한다는 것은 온갖 문제와 어려움을 멀리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자는 과잉을 멀리하는 행위의 최종 목적은 결국 세상은 엉망이고 불편할 뿐 아니라 보기보다 경이롭고,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암시한다. ―p. 20 미니멀리즘은 전 세계의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반복되는 감각에 가깝다. 우리를 둘러싼 문명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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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일기일상/book 2024. 8. 8. 02:54
내가 시간 속에서 점하는 위치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변화하는 내 자아를 가능한 한 완전히, 가능한 한 쓸모 있게 활용하고 싶었다. 비틀ㄹ비틀 서성이면서, 비몽사몽간에, 내가 세상에 진 빚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p.9 나는 내가 맹렬한 기세로 다음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전 사람에게서 달아나고 있을 뿐이었다.―p.27 한 친구는 이렇게 썼다. 금이 헬륨과 비슷하면서도 헬륨 이상의 무언가이듯, 결혼은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이상의 무언가다. 전자(電子)의 내부 껍질이 꽉 차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