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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일상/book 2021. 4. 4. 14:06
상품의 소비행위는 상품과 소비자들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항상 소유화 작업(travail d’appropriation)을 전제한다는 점을 말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는 좌표설정(repérage)과 부호해독(déchiffrement) 작업을 통해 자신이 소비하는 상품의 생산에 기여하는데, 예술작품의 경우에는 이러한 작업이 소비와 만족 전체를 구성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은 시간을 요구하고, 오직 시간을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성향을 요구한다.
—p. 193
사회계급은 단 하나의 특성에 의해서는 규정되지 않으며, 여러 특성들의 총합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음, 인과관계 즉 조건지우고 조건지어지는 관계를 맺고 있는 기본 속성(생산관계 상의 위치)을 중심으로 짜여진 일련의 속성들에 의해 규정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모든 관여적 속성들간의 관계구조에 의해 규정되는데, 이 구조가 각각의 속성과 각 속성이 실천에 행사하는 효과들에 고유한 가치를 부여한다. 이처럼 물질적 생활조건과 각 조건이 부과하는 조건화의 기본적 결정요인들을 중심으로 가능한 한 최대로 동질적인 계급을 구성한다는 것은 결국 이 계급들을 구성할 때나 각 속성과 실천의 분포의 계급별 변이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의식적으로 이차적 특성들의 관계망(réseau)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단 하나의 기준만으로 이 계급을 구성할라치면 언제나 많건 적건 이러한 특성을 조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객관적 구분 원칙, 즉 변별적 속성들 속에 육화(肉化)되거나 객체화되어 있는 구분 원칙도 함께 파악되어야 하는데, 각 행위자들은 통상적 실천 속에서 이러한 원칙에 기반해 스스로를 구분하고 통합시키기도 하는 동시에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정치 행위에 의해, 그리고 정치적 행위를 위해 스스로 참가하기도 하고 동원되기도 한다.
—p. 205~206
재생산 전략은 현상적으로 매우 상이한 일련의 실천으로 나타나는데, 개인이나 가족들은 이러한 전략을 이용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자본을 보존하거나 증대시키며, 따라서 계급관계의 구조상의 위치를 유지하거나 개선하려는 경향이 있다. 단일한 통일원리이자 생성원리의 산물인 이러한 전략들은 체계적인 방식으로 기능하고 변화하는 하나의 체계를 구성한다. 이 전략들은 미래에 관한 성향을 매개로 해서 먼저 재생산할 자본의 크기와 구조, 즉 해당 집단이 소유하고 있는 경제자본, 문화자본과 사회관계 자본의 현재적-잠재적 크기와 이들 세 가지 자본이 자본구조 속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에 의해 좌우된다. 두번째로,또 2차원 공간의 구성작업은 상이한 종류의 자본간의 상호전환가능성(convertibilité des différentes depèces de capital)의 원리를 정식화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즉 상이한 종류의 자본간의 전환율은 이러저러한 자본과 관련해 서로 다른 힘과 특권을 행사하고 있는 상이한 계급분파들간의 투쟁의 기본 목표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말이다.
—p. 242~243
사회공간은 두 개의 축으로 위계화되어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이동형식이 허용된다. 이것들은 결코 등가적이지도 않고 또한 개연성도 아주 불균등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유동성에 대한 전통적 연구들은 이것을 혼동하고 있다. 먼저 (초등학교 교사에서 교수로 된다든가, 소경영자에서 대경영자로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동일한 수직적 영역에서 즉 동일한 장에서 이루어지는 상승이동과 하강이동으로 구성되는 수직이동(déplacements verticaux)이 있다. 다음으로 한 장에서 다른 장으로 이동하는 횡단이동(déplacements transversaux)이 있는데, 이것은 (초등학교 교사 또는 그 자녀가 소상인이 되는 경우처럼) 동일한 수평면에서 일어날 수도 있고 (초등학교 교사나 그 자녀가 공업경영자가 되는 경우처럼) 다른 수평면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수직이동은 이미 자본구조에서 지배적인 종류의 자본(교수가 된 초등학교 교사의 경우에는 학력자본)의 크기만을, 다시 말해 결국 특정한 장(기업의 장, 학교의 장, 행정의 장, 의료의 장 등)의 한계 안에서의 이동 형태를 취하는 자본총량의 분배구조 속에서의 이동만을 요구한다. 이와 반대로, 횡단이동은 다른 장으로의 이동을, 그리고 한 종류의 자본에서 다른 종류의 경제자본이나 문화자본의 한 아종(亞種)에서 다른 아종으로의(가령 토지재산에서 공업자본으로, 혹은 문학적-역사적 교양에서 경제적 교양으로) 전환을, 따라서 자본구조의 변형을 전제하는데, 바로 이것이 사회공간의 수직적 차원에서 자본총량을 보존하고 사회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p. 245
지체현상의 효과는 학교제도와의 거리가 클수록, 학력자격시장에 대한 정보가 적을수록 혹은 추상적일수록 더 확실하게 나타난다. 상속된 문화자본을 구성하는 정보 중에는 아무래도 학력자격시장의 변동에 대한 실제적 혹은 학문적 지식을 가장 중요한 정보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데, 이것은 결국 학교시장에서는 상속된 문화자본에서 또는 노동시장에서는 학력자본에서 각각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투자감각(sens du placement)으로 나타난다. 가령 이전 상태의 시장에서는 가장 높은 이익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주던 학교적 가치에 집착하는 대신 정확한 시기에 가치하락된 분야나 경력에서 발을 빼 장래성이 있는 분야나 경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감각을 전형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지각도식과 평가도식의 지체효과는 가치하락된 학위의 소유자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함게 공모(共謀)해 학위의 신비화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통설(通說; allodoxia)의 전형적 효과에 의해 가치하락된 학력자격에다 객관적으로는 인정되는 않는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나타난다. 학력자격 시장에 대한 정보가 가장 빈약한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명목임금은 유지되어도 실질임금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는데도 수년에 걸쳐 학교를 다니면서 겨우 일종의 불환지폐(不煥紙幣) 같은 것이라도 받을고 발버둥치는 이유 또한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p. 263
학력자격으로부터 이전 세대보다 적은 것밖에는 얻을 수 없도록 운명지어진 세대의 구성원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구조적 탈숙련화 현상은 일종의 집단적 환멸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오용되고 좌절된 이 세대는 학교제도에 의해 촉발된 분노감과 반항심을 모든 제도에까지 확장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일종의 반(反)-제도적 기질은 종국에는 암묵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사회질서의 전제들에 대한 부인에로, 즉 사회질서가 제시하는 목표와 사회가 공언하는 가치에의 통념적 동의의 실제적 중단에로, 그리고 사회질서가 기능하기 위한 조건인 투자에 대한 거부로 이들을 이끌게 된다.
—p. 270
모든 종류의 사회과정의 기저에 자리잡고 있는 계급탈락과 재계급화의 변증법적 관계는 관계된 모든 집단이 똑같은 목적, 동일한 특성을 향해 동일한 방향으로 달려갈 것을 전제하고 요구한다. 이 특성은 경주에서 선두를 점하고 있는 집단에 의해 대변되며, 규정상 후속집단은 접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내적으로 어떤 속성을 갖고 있건 간에 이 특성은 이 선두집단의 변별적 희소성에 의해 변형되고 질적으로 바뀌고, 또 수가 증가하고 비밀이 드러남으로써 하위집단에게도 접근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견 역설처럼 보이는 과정에 따라 실체적(즉 비관계적) 특성들이 끊임없이 변화함으로써 질서=순서, 즉 거리, 차이, 서열, 우선권, 독점권, 탁월성 같은 서열적 특성 전체가 유지되고 이와 함께 사회규성체에 구조를 부여하는 순서적 관계 전체가 유지된다.
이것은 특정한 시점의 기성질서는 필연적으로 시간적 질서, 라이프니츠의 말을 빌리자면 연속적 계기의 순서(ordre des successions)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각 집단을 바로 자신의 아래에 있는 하위집단을 자신의 과거로, 그리고 바로 위에 있는 상위집단을 자신의 미래로 갖기 때문이다. 경쟁관계에 있는 집단들은 본질적으로 이러한 시간의 질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른 여러 차이에 의해 분리되는 것이다.
—p. 301
계급탈락과 재계급화의 변증법적 관계는 또한 이데올로기적 매커니즘으로서도 기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수적 담론은 이 매커니즘의 효과를 강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매커니즘은 신용구입을 통해서라도 상품을 즉각적으로 향유하려는 조급함을 보여주는 피지배자들로 하여금 실제로는 투쟁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데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환상을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계급간 차이를 계기의 순서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경쟁 투쟁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는 상속법에 의해 규제되는 사회질서 속에서 선행자와 계승자를 구분하는 차이와 마찬가지로 최고로 절대적이며 극복하기 어려운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이며 가장 소멸하기 쉬운 차이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비현실적이며 소별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다리는 것밖에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인데, 그것도 퇴직하고 나서야 미로소 자신의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쁘띠 부르주아지처럼 평생을 기다려야 하거나 아니면 도중에 끊긴 자신의 궤적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쁘띠 부르주아지처럼 몇 세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이고 소멸하기 어려운 이유는, 일단 기다릴 수만 있다면 거역할 수 없는 진화의 법칙에 따라 아무튼 약속된 것을 갖게 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컨대, 경쟁이 영속하는 것은 상이한 존재상태가 아니라 존재상태들간의 차이 때문인 것이다.
일단 이러한 매커니즘을 이해하면 먼저 영속(永續)과 변화, 구조와 역사, 재생산과 ‘사회의 생산(production de la société)’ 같은 학문상의 양자택일에서 비롯된 논쟁의 공허함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p. 304~305
계급투쟁의 특수한 형태인 경쟁은 지배자들이 제시한 내기에 거는 돈=투쟁목표를 피지배계급의 성원들이 수락할 때만 진행될 수 있다. 이것은 상대방을 통합시키기 위한 투쟁이며, 최초의 장애가 있다는 점에서 재생산적인 투쟁이기도 하다. 일정한 격차의 존재가 증명하듯 필연적으로 패자로서 이런 종류의 경주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은 단순히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선행자들의 목표의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p. 307
아비투스는 객관적으로 분류가능한 실천들의 발생 원리인 동시에, 이 실천들의 분류체계(principium divisionis)이기도 하다. 아비투스는 두 가지 능력간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데, 분류가능한 작품과 실천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과, 이 실천과 생산물들(취향)을 구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로부터 사회공간, 즉 생활양식 공간이 구성된다.
—p. 311
사치취향(또는 자유 취향)은 필요로부터의 거리(la distance à la necessité), 자유, 또는 자본 소유가 보장해주는 용이함(facilité)에 의해 규정되는 물질적 존재조건의 산물이다. 필요 취향은 필요의 산물로 바로 그 필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본모습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가장 영양가 있는(nourrissantes) 동시에 가장 저렴한(eeconomiques) 음식물(nourritures)에 대한 대중적 취향(goût populaires)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노동력을 재생산해야 할 필요성(necessité de reproduire au moindre coût la force de travail)으로부터 추론해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규정상 프롤레타리아에게 강요될 수밖에 없다.
—p. 324'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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