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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안 보여!! 세 마디 외침과 함께 본격적으로 플롯이 전개되는 이 책을, 처음에는 이거 좀비물인가? 하며 읽어나갔다. 도시와 나라 전체가 실명에 빠져드는 상황을 그려나가는 이 소설은 언뜻, 미드 <워킹 데드>를 연상시키기 때문.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배설욕구’에 대한 부분이 비중 있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다뤄지고 있기 때문에 <워킹 데드>보다 다소 지저분(?)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덮을 즈음에는, 불현듯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떠올랐다. 동굴 속 모닥불에 일렁이는 벽면 그림자가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속박된 사람들. 그들은 동굴 밖 참된 진리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른 채, 동굴 속 그것이 삶의 원래 모습인 양 삶을 살아간다.
만나기 쉽지 않은 포르투갈 소설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영문판이 번역되어 소개된 것 같다. 여하간 작가의 문체가 간결한 편이고,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 없지만 동시에 현실감각을 단단히 붙잡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같은 포르투갈 출신의 작가이지만 몽환적이고 자기 내면으로 점점 침잠해 들어가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과는 비교가 된다. (물론 페르난두 페소아는 그 나름대로ㅅ 매우 매력적인 문체를 가지고 있다) 벌써 주제 사라마구의 글 가운데 읽고 싶은 다음 책이 생겼을 정도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떠올렸다는 대목에서 사실 이 소설이 비유하는 것들의 의미는 이미 뚜렷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들여다봐야 할 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눈먼 자와 단 한 명 눈이 멀지 않은 자. 아주 간단하게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자와 계몽(啓蒙)된 자로 이들 캐릭터를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걸까. 플라톤이 묘사한 우화에서 동굴에 어른거리는 실루엣을 보는 상황이 인간이 삶에서 면하는 초기조건이라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실명’이라는 위기는 처음부터 전제된 것은 아니다. 모두 멀쩡히 시각을 지니고 살아왔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시각을 잃어나간다. 즉 플라톤의 우화가 ‘무지(無知)’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이야기한다면, 주제 사라마구의 글에는 ‘상실(喪失)’과 맞닥뜨리자 당혹스러워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이들의 삶은 상실 이후부터 대단히 모욕적이게 된다.
삶을 견뎌내는 것은 결국 모욕을 목도(目睹)하는 것이다. 주제 사라마구가 그린 아귀다툼 속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것은, 약간씩 모양새를 달리한 모욕적인 순간들뿐이다. 이런 것들은 대개 말초적이고 원초적인 것들과 직결된다. 식욕, 배변욕, 성욕, 안전에 대한 욕구에 이르기까지, 절망에 빠진 자들이 원하는 것은 그다지 고차원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얻어지지가 않는다.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먼 자들이 놓치는 모욕적인 순간들을 어쩔 수 없이 바라봐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불우한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말미에 해제(解題)에서 밝혔듯, 이 책은 포르투갈의 암울했던 근현대사를 투영한다. 마뇰 드 올베이라의 영화를 통해, 포르투갈 사회가 경험한 40년 독재통치의 뼈아픈 근현대사는 이미 접한 적이 있다. 조용하지만 강력했던 살라자르의 독재는 인간 존재를 한없이 누추하게 만들었다. 참고로 살라자르가 이끌었던 독재 통치의 관성(慣性)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가 노년기 의식을 잃게 되었을 때 측근 참모들이 나서서 살라자르가 정상적으로 국정 운영을 하는 것처럼 위장을 했고, 이 기간이 길게 잡으면 6년이라고 하니, 우민화—전두환 정권 당시 3S처럼 살라자르 통치하에서는 3F(Fado(음악), Fatima(종교), Futebol(스포츠)) 정책을 펼쳤다—라는 것의 독성을 짐작할 수 있다.
프랑코 통치하의 스페인, 무솔리니 통치하의 이탈리아와 달리, 같은 남부 유럽국가 중에서 현저히 저성장을 기록했고 독재기간이 더 길었음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의 살라자르라는 인물은 생소하기만 하다. 근대의 여명기에 신항로 개척에 앞장 섰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포르투갈.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돌뗏목>이라는 작품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는 자기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잊고, 아무 생각 없이 문에 달린 구멍의 뚜껑을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마치 구멍 바깥에 하얀 벽이 서 있는 것 같았다. 남자는 구멍을 둘러싼 금속 테가 눈썹에 닿는 것을 느꼈다. 속눈썹이 아주 작은 렌즈를 스쳤다. 그러나 밖은 볼 수 없었다.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백색이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남자는 자기 집에 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냄새, 공기, 정적 등이 모두 익숙했다. 손으로 만지기만 하면, 손으로 가볍게 쓰다듬어보기만 하면, 이것이 어떤 가구이고 어떤 물건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물건이 해체되어, 남과 북이 없고, 위와 아래도 없는 어떤 이상한 영역으로 들어와버린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어렸을 때 장님 놀이를 자주 했다. 그는 오 분 정도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떠보고는, 앞이 안 보이는 것이 괴로운 상태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충분한 기억, 그러니까 색깔만이 아니라 형태와 면에 대한 충분한 기억을 가지고 있을 때는, 적어도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 아닌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그나마 견딜 만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적이 있었다. 그는 심지어 장님들이 살아가는 어둠이라는 것은 단순히 빛의 부재일 따름이며, 우리가 실명 상태라고 부르는 것은 존재와 사물의 외양을 덮고 있는 어떤 것일 뿐, 그 검을 베일 뒤에는 모든 것이 말짱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그가 지금 빠져든 백색의 상태는 너무 환하고, 너무 전면적이어서, 색깔만이 아니라 사물과 존재 자체를 흡수해 버렸다. 아니, 삼켜 버렸다. 그래서 훨씬 더 안 보였다.
―p. 14~15
그는 탈진하여 소파에 등을 기댔다. 잠시 후, 너무도 흔히 찾아오는 몸의 자포자기 때문에 피로가 밀려왔다. 논리적으로만 따지자면 모든 신경이 바짝 긴장해 있어야 하는 고뇌나 절망의 순간에 몸은 오히려 이런 식으로 포기를 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진짜 피로라기보다는 나른함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진짜 피로만큼이나 묵직하게 몸을 눌렀다. 남자는 곧 장님 흉내를 내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 또 계속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꿈도 꾸었다. 눈을 뜰 때마다, 마치 여행에서 돌아오듯이, 그가 알고 있는 대로의 모든 형태와 색깔이 변함없이 확고하게 그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런 마음 편한 확실성 밑에서, 불확실성이 쏟아내는 음울하고 괴로운 잔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것은 기만적인 꿈인지도 몰라, 너는 조만간 이 꿈을 떠나야만 하고, 그때는 어떤 현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어.
―p. 16
그러나 사려 깊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배반하고, 또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부해 온 도덕적 양심은 지금도 존재하고 또 전에도 늘 존재해 왔다. 그것은 영혼이란 것이 혼란스러운 명제로 전락해 버린 제4기의 철학자들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세월이 흐르고, 더불어 사회도 진화하고 유전자도 바뀌면서, 우리의 양심은 결국 피의 색깔과 눈물의 소금기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우리의 눈은 내부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우리 눈은 우리가 입으로는 부정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관찰에 덧붙여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그 특수한 상황이란, 단순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악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생기는 가책이라는 것이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온갖 종류의 공포와 뒤섞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잘못을 얼버무리려 하는 사람은 결국, 가혹하게도, 자신이 받아 마땅한 벌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이런 생각들이 이 더럽고 음흉한 인간의 마음속에서 이미 고개를 쳐들고 있던 공포심을 부채질했을 것임을 짐작하는 데는 그리 대단한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앞서 말한 대로, 가책, 즉 고통을 느낀 양심의 자기 표현이기도 했다. 비유적인 말을 사용하자면, 그것은 물어뜯는 이빨을 가진 양심이었다.
―p. 31~32
그래, 인간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야, 반은 무관심으로, 반은 악의로.
―p. 52
……이런 일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를 일으킬지 생각해 보시오. 이거 원, 실명은 원래 옮는 것이 아닌데. 죽음도 옮지 않죠, 하지만 우리 모두 죽지 않습니까.
―p. 53
……우리는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제 곧 우리가 누군지도 잊어버릴 거야, 우리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몰라, 사실 이름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는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를 인식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개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개는 냄새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 상대방이 누군지도 확인하지, 여기 있는 우리도 색다른 종자의 개들과 같아, 우리는 으르렁거리는 소리나 말로 서로를 알 뿐, 나머지, 얼굴 생김새나 눈이나 머리 색깔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아,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지……
―p. 85~86
먼 옛날에 보통 사람들은 대담한 낙관주의에 기초하여, 그 해설자가 말한 것과 비슷한 주장과 비유를,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삶과 운의 성쇠로부터 지혜를 배운 사람들이 간직해 온 탁월한 격언이었다. 이것이 눈먼 자들의 땅으로 옮겨지면 이렇게 번역될 수 있겠다. 어제는 어제는 우리도 볼 수 있었으나, 오늘은 볼 수 없다. 내일은 다시 볼 수 있겠지. 마지막 말은 약간 물어보는 듯한 느낌으로 해야 한다. 막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신중한 태도 때문에, 희망 섞인 결론에 약간의 의심을 덧붙이는 것처럼.
―p. 173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다. 음식을 가지러 간 사람들이 얼마 안 되는 양을 들고 올 때마다 사람들의 항의가 터져나온다. 그리고 늘 집단 행동, 대중 시위를 제안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자기들이 숫자가 많아서 누적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들은 그 힘이 역사적으로 누차 확인되어 왔으며, 또 단호한 의지들은 일반적인 경우처럼 서로 더해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는 서로 무한히 곱해지기도 한다는 변증법적인 원리가 바로 그런 힘을 긍정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람들은 진정되었다. 좀더 신중한 사람이 나서서 그런 행동의 이점과 위험에 대해 잘 생각해 보자면서. 열성분자들에게 총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치명적인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신중론자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앞에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겁니다, 그러나 뒤에 있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우리가 첫 총성에 겁을 집어먹었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아마 총에 맞아 죽는 사람보다 발에 밟혀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p. 228~229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은 어디에서나 똑 같은 것 아닌가.
―p. 237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조금씩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나도 압니다, 남자다운 자존심, 아니 이건 남성의 자존심이라고 해야겠죠, 어쨌든 지금까지 많은 수모를 겪은 뒤에도 우리가 여전히 그런 이름을 붙일 만한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 자존심이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 이미 겪기도 했지만, 다시 겪으리라는 것,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싶다면, 이것이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인지도 모릅니다.
―p. 238
사실 우리가 이기주의라고 부르는 그 제2의 살갗 없이 태어난 인간은 없으며, 제2의 살갗은 너무 쉽게 피를 흘리는 원래의 살갗보다도 훨씬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p. 241
갑자기 지친 몸이 그녀에게 너는 늙었다고 말했다. 늙었지, 그리고 살인자이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다시 살인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언제 살인이 필요할까, 그녀는 생각하면서 현관 쪽으로 향했다. 그녀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이미 죽은 것이 될 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그게 무슨 뜻일까, 말이야, 그저 말일 뿐이야.
―p. 270~271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 지옥에서, 우리 스스로 지옥 가운데도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이곳에서, 수치심이라는 것이 지금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이에나의 굴로 찾아가 그를 죽일 용기를 가졌던 사람 덕분이기 때문이오. 그 말이야 맞지만, 수치심이 우리에게 먹을 걸 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 말은 맞소, 늘 수치심이 없어 배를 채울 수 있었던 자들이 있었소, 하지만 우리는 우리 분수에 맞지 않은 마지막 한 조각의 존엄성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소, 이제 우리에게도 마땅히 우리 것이어야 하는 것을 찾기 위해 싸울 능력 정도는 있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p. 275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내 목숨을 내놓을 생각은 없어요. 그럼 당신은 누군가 당신에게 먹을 걸 주기 위해 목숨을 잃었을 때, 그걸 먹지 않고 굶을 생각은 있소.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신랄하게 쏘아붙였다. 상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p. 276
삶의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첫 두목의 비극적 죽음 뒤에 그 병실에서 모든 규율과 복종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총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권력을 찬탈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눈먼 회계사의 심각한 실수였다. 결과는 그 정반대였던 것이다. 그가 총을 쏠 때마다 총알이 거꾸로 튀고 있는 셈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총을 쏠 때마다 조금씩 권위를 잃어갔다. 따라서 총알이 다 떨어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보자. 수도사의 옷을 입었다고 해서 수도사가 되는 것은 아니듯, 왕의 홀을 쥐었다고 해서 왕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다. 지금은 눈먼 회계사가 왕의 홀을 쥐고 있지만, 사람들은 선왕을 계속 기억하고 있다. 선왕은 비록 죽었지만, 죽어서 그 자신의 병실에 묻혀 있지만, 그것도 겨우 일 미터 깊이에 대충 묻혀 있지만, 적어도 그는 그 악취를 통해 자신의 강력한 존재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p. 293~294
……각 병실 내부는 수벌들이 살고 있는 벌집 같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질서와 조직에는 별 관심이 없이 윙윙거리기만 하는 곤충들 말이다. 이 곤충들은 평생 무슨 일을 한다는 증거도 없으며,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한다는 증거도 없다. 물론 눈이 먼 불행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을 착취자나 기생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빵 부스러기를 착취했으며, 무슨 과자 부스러기에 기생했다는 말인가. 비교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경박해질 수 있으니까. ……이미 오래 전에 그 습관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이곳에서, 한 사람은 모든 사람을 위해야 하고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을 위해야 마땅한 이곳에서, 우리는 강한 사람들이 잔인하게도 약한 사람들의 입에 들어갈 빵을 빼앗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p. 296~297
눈먼 사람에게 말하라, 너는 자유다. 그와 세계를 갈라놓던 문을 열어주고, 우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말한다, 가라, 너는 자유다. 그러나 그는 가지 않는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꼼짝도 않고 그대로 있다. 그와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들은 정신병원이라고 정의된 곳에서 살았다. 사실, 그 합리적인 미로에서 사는 것과 도시라는 미쳐버린 미로로 나아가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는 안내하는 손길이나 개줄도 없다. 도시의 미로에서는 기억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p. 305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p. 328~329
참 나, 눈을 감고도 오르내릴 수 있던 계단인데. 상투적 표현이란 그런 것이다. 의미의 미묘한 차이를 무시해 버린다. 예를 들어 이 경우에는 눈을 감는 것과 눈이 머는 것 사이의 차이를 구별하지 않았다.
―p. 342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그게 그 얘기야. 선생님을 사랑하시나요. 응,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하지만 만에 하나 내가 눈이 먼다면, 내가 눈이 먼 다음에 다른 사람이 된다면, 내가 어떻게 그이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무슨 감정으로 사랑을 할까, 전에 우리가 볼 수 있었을 때도 눈이 먼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지, 일반적인 감정은 볼 수 있는 사람의 감정이었고, 따라서 눈먼 사람들도 눈먼 사람들의 감정이 아니라 성한 사람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어. 그런데 이제 눈먼 사람들의 진짜 감정들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어, 아직도 시작일 뿐이야, 지금은 그래도 우리가 가졌던 감정에 대한 기억에 의존해 살고 있잖아, 지금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아는 데는 눈이 필요 없어……
―p. 354
식탁에 앉았을 때 의사의 아내는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할 때가 왔어요, 모든 사람들이 눈이 먼 것이 확실해요, 지금까진 내가 만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물은 없어요, 전기도 없어요, 공급되는 물자도 없어요, 혼돈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임에 틀림없어요, 이것이야말로 혼돈이라는 말의 의미예요. 정부는 있지 않겠습니까,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말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있다 해도, 눈먼 사람들이 눈먼 사람들을 통치하는 정부겠죠, 그러니까 무(無)가 무를 조직하려는 것과 똑같을 거예요. 그럼 미래가 없겠구려,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말했다. 미래가 있다 없다 하는 이야기는 못하겠어요, 지금 중요한 것은 당장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방법을 찾는 거예요. 미래가 없다면 현재도 소용이 없소, 현재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오. 아마 인류는 눈 없이도 살아가게 되겠죠, 하지만 그것은 이제 인류라고 부를 수 없을 거예요, 그 결과는 분명해요, 우리 가운데 누가 우리 자신을 전과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요……
―p. 358~359
그녀는 기뻐해야 마땅한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녀의 멀어버린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p. 367
우리는 모욕의 모든 단계를 내려갔죠, 그걸 다 내려가서 마침내 완전한 타락에 이르렀어요, 방식은 다를지라도 여기서도 똑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도 그곳에서는 그런 타락이 다른 사람들 탓이라고 핑계댈 수 있었어요, 지금은 그게 안 돼요, 이제는 선과 악에 관한 한 우리 모두 평등해요,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이냐고는 묻지 말아주세요, 눈먼 것이 드문 일이었을 때 우리는 늘 선과 악을 알고 행동했어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에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해요……
―p. 387~388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사실 신경은 많은 것을 견딘다. 모든 것을 견딘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아내의 신경은 강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두 여자, 부정(不定) 대명사로 표현하자면 다른 사람들, 그들 역시 울고 있다.
―p. 395~396
의사가 말했다, 이 쓰레기들이 사방에서 썩어갈 거 아냐, 죽은 짐승들도 썩어갈 거고, 심지어 사람 시체도 그렇게 될 거고, 틀림없이 집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있을 거야,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조직이 없다는 거야, 각 건물마다, 각 거리마다, 각 지역마다 조직이 있어야 해. 정부가 필요하다는 거로군요, 아내가 말했다.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눈먼 사람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어요. 스스로를 조직해야지,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 어쩌면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실명의 경험은 우리에게 죽음과 고통만을 주었어요, 내 눈도 당신 병원처럼 쓸모가 없어요.
―p. 416
……마지막 충고를 하나 드려도 좋다면, 옛 속담대로 하라는 겁니다, 옛날 사람들은 인내가 눈에 좋다고 했는데, 그 말이 옳습니다. 여자가 말했다, 우리를 괴롭히지 말아요. 용서해 줘, 두 사람 다, 우리는 기적이 이루어지던 곳에 들어와 있어, 그런데 지금 내 마술의 힘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어, 다 빼앗겨버렸어. 우리가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은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여자가 말을 이었다, 매일매일 연약한 삶을 보존해 가는 거예요, 삶은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처럼 연약하니까, 어쩌면 진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어쩌면 삶은 진짜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건지도 몰라요, 삶은 우리에게 지능을 준 뒤에 자신을 우리 손에 맡겨버렸어요, 그런데 지금 이것이 우리가 그 삶으로 이루어놓은 것이에요. 꼭 사모님도 눈이 먼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눈이 멀었지, 당신들의 먼 눈이 내 눈도 멀게 한 거야,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면 나도 더 잘 볼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안됐지만 당신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소환당해 무슨 일인지도 모를 일을 진술하기 위해 법정을 찾아가는 증인 같군, 의사가 말했다. 시간은 종말에 이르고 있어요, 부패는 널리 퍼지고, 병은 열린 문을 찾고, 물은 바닥이 나고, 음식은 독이 되고 있어요, 이것이 내 첫 번째 진술이 될 거예요, 의사의 아내가 말했다. 그럼 두 번째는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물었다. 우리 눈을 뜹시다. 못해, 우리는 눈이 멀었어, 의사가 말했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 나는 보고 싶어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그 마음만 가지고 눈을 뜰 수는 없습니다, 유일한 차이는 아가씨는 이제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요, 자, 갑시다, 여기서는 더 볼 게 없군, 의사가 말했다.
―p. 418~419
그들은 위대한 조직 체계, 사적 소유, 자유 통화 시장, 시장 경제, 주식 매매, 과세, 이자, 몰수와 도용, 생산, 분배, 소비, 수요와 공급, 빈부, 통신, 억압과 비행, 복권, 감옥, 형법, 민법, 도로 교통법, 사전, 전화번호부, 매춘망, 군수 공장, 군대, 공동묘지, 경찰, 밀수, 마약, 허용된 불법 차량, 약학 연구, 도박, 사제와 장례 비용, 정의, 채무, 정당, 선거, 의회, 정부, 볼록하거나, 오목하거나, 수평적이거나, 수직적이거나, 경사지거나, 집중되거나, 확산되거나, 덧없는 생각들, 성대의 소모, 말의 죽음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근본 원리들의 장점을 찬양했다.
―p. 438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먹는 모든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입에 들어갈 걸 빼앗은 거야, 우리가 너무 많이 빼앗았다면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거지, 이런저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살인자야.
―p. 44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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