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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나보코프의 책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절망’.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말미에 달려 있는 옮긴이의 글까지 읽어볼 필요가 있었다. 옮긴이의 글을 읽지 않더라도 도플갱어의 조우(遭遇)를 그린 이 이야기를 읽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왜 하필 도플갱어—게르만과 펠릭스—를 등장시켰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출신의 망명작가로서 러시아 문학을 바라보는 나보코프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도스토예프스키, 고골, 푸슈킨 등 이 책에 등장하는 러시아 작가와 작품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죄와 벌」 정도는 읽었지만 나머지는 영 낯설다. 작중 작가로 표현되는 게르만이라는 인물은 작가로서의 출세에 심혈을 기울이는 인물인데, 나보코프는 앞서 언급한 여러 러시아 작품들을 풍자하고 희화화하여 게르만의 아둔함과 지적 허세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예를 들어, 푸쉬킨이 아내에게 바친 시에서 “To a remote abode of work and pure delight”라는 문구를 “To a remote abode of pure delight”로 바꾸는 방식이다. ‘노동의 기쁨’을 쏙 빼고 자신의 문학세계를 찬양하는 게르만의 모습에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의 비열함과 허영심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 서문에서 나보코프는 문학이 사회적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입장으로부터 거리를 두겠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그는 ‘수기 양식’의 사실주의이든 그밖의 유미주의이든, 또는 러시아 사회를 뒤덮은 이데올로기적인 문학이든, 사회가 짜놓은 일체의 사상과 주의(主義)를 문학에 담아내는 것을 배격한다. 어두운 사회상을 고발하는 도스토옙시나를 러시아 문학의 전형으로 바라보는 서구적인 시각을 비판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래서인지 나보코프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개성이 강하고 분방하고 때로는 일탈의 길을 걷고 유머로 가득하다. 이들은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지는 않지만, 삶의 아이러니와 딜레마를 재치 있게 묘사한다:P
그나저나 로버트 달의 「경제 민주주의」 책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여하간 이번 나보코프의 글을 읽고 나니 찾아봐야 할 러시아 문학이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fin]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내 존재의 독재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논리도, 그 어떤 황홀경도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내 처지에 대한 생각을 거두게 하지 못한다. 신의 노예라는 처지 말이다. 이건 심지어 노예의 처지도 아니고, 호기심 많은 아이가 쓸데없이 그었다 끄는 성냥개비의 처지다. 아이의 장난감이 느끼는 공포. 그러나 아무 걱정 없다. 신은 없다. 불멸도 없다. 신이라는 괴물처럼 이 불멸이라는 녀석 또한 쉽게 처치할 수 있다. 정말로 한번 상상해보시라. 당신이 죽어 천국에서 눈을 떴다. 당신이 소중히 여겼던 고인들이 당신을 미소로 맞이한다. 자, 그럼 말씀해보시라. 그들이 진짜 고인들이라는 사실을, ...... 바로 이게 문제다. 바로 이게 끔찍한 거다. 연기는 실로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저세상에서 당신의 영혼은 자신을 둘러싼 다정다감한 영혼들이 탈을 쓴 악마들이 아님을 결코, 결코, 결코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영혼은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의심 속에 머물고, 자기 앞에 고개 숙인 사랑스러운 얼굴에 나타날 끔찍한 변화를, 악마의 조소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실크해트를 쓴 건장한 사형집행인이든, 영원한 부재의 조가비 소리든, 뭐든 전부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불멸이라는 고문만은, 이 차가운 하얀 강아지들만은 거절하겠다. 날 가게 놔두라. 조금의 애정 표시도 참지 않을 것임을 너희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속임수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가증스러운 요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저승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며 익숙한 손을 뻗을 때에도, 나는 공포에 질려 소리칠 것이다. 천국의 잔디 위에 털썩 쓰러져 몸부림칠 것이다. 아, 나는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이방인에게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라.
—p. 115~117
아, 나를 몸서리치게 하는 건 결코 그게 아니다. 그토록 주도면밀히 계획된, 그토록 주도면밀히 집필된 내 작품이 내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이제 모조리 내적으로, 본질적으로 파괴되었다는, 쓰레기 더미가 되어버렸다는 의식, 바로 이 생각이 나를 찔러댔다. 이봐요, 이봐! 심지어 그의 시체가 내 시체라고 진짜 믿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지팡이는 발견되었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그를 체포하는 줄로 생각하며 날 체포했을 거요. 바로 그 점이 가장 수치스럽단 말이오! 실로 모든 게 바로 실수가 있을 수 없음에 기반을 두고 있었소. 그런데 지금 보니 실수가 있었소. 게다가 그게 어떤 실수요? 아주 하찮고 우스꽝스럽고 조악한 실수가 지금 드러난 거요. 들어봐요, 들어봐! 나는 경이로운 내 작품의 잔해를 지켜보며 서 있었소. 그러자 날 인정하지 않은 군중이 옳았는지도 모른다고 역겨운 목소리가 내 귀에 대고 소릴 질러댔소......그래요, 난 전부 의심하게 되었소. 핵심을 의심하게 된 거요. 그리고 길지 않은 여생을 온전히 단 하나, 이 의심과의 헛된 싸움에만 쏟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소. 나는 사형수의 미소를 지었소. 그리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툭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보다 나은 제목은 찾을 수 없소.
—p. 226'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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