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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은 오랫동안 내 서가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두꺼운 책이다. 출판사 <열린책들>의 창립 30주년 전집 가운데 아직까지 읽지 않은 몇 안 되는 책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프로이트라는 이름은 여러 문학작품, 사회과학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어서, 그의 책을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음에도 어쩐지 그의 이론을 얼추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늘 그렇듯 원전을 읽고 나면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를 깨닫곤 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무의식의 세계를 열어 보임으로써 철학, 심리학, 사회학, 의학을 망라하여 무수히 많은 학문적 영역에 영향을 끼쳤다고 흔히 얘기된다. 하지만 꿈-해석이라는 분야가 이전부터 어떠한 경로를 걸어왔는지 프로이트가 서두에 밝히듯이, 그가 작업하기 착수하기 이전부터 꿈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선행연구는 매우 많았던 것 같다. 게다가 일찍이 고대에도 꿈의 예언적 속성을 규명하려는 여러 시도가 이루어졌음을 명시하면서, 구약성서에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한 사례를 거론하기도 한다. 또 역사적 인물인 비스마르크가 빌헬름 황제와의 갈등 상황에서 꾸었던 꿈을 분석해 보이기도 한다.
다만 프로이트의 작업이 그 이전의 꿈-해석과 다른 점은, 훨씬 명료한 언어로 꿈에 내재된 여러 개념들을 가다듬고 그저 뒤죽박죽인 무엇인가로만 여겨졌던 꿈을 학문 체계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 꿈은 아주 난해한 것으로, 수면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신체적 반응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풀이되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이를 ‘소원 성취’라는 간명한 명제로 꿈의 역할을 정의한다. 신경학 그리고 생물학에서 출발한 프로이트의 관심사는 신경증을 앓는 환자들을 상대하면서 ‘인간의 정신(精神)’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신경증 환자들이 묘사하는 꿈-내용을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이를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연역적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꿈에는 그가 상대했던 신경증 환자들의 꿈뿐만 아니라 본인이 체험했던 꿈에 대한 분석도 담겨 있다. 꿈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영역이다보니, 그 자신의 꿈을 분석할 때에는 꿈-내용의 범위를 축소하거나 제한하고, 논리적인 치밀함을 갖추기 위한 노력이 더욱 엿보인다. 특히 프로이트는 꿈의 역할로 제시하는 ‘소원 성취’가 ‘리비도’, 즉 인간이 원초적으로 타고난 성질과 맞닿아 있다고 보았는데, 성(性)이 결부된 사례들이 다수 소개됨에 따라 이론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저자인 프로이트에게 오해와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던 상황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1899~1900년 초판 발행 이후 제2판이 발행되기까지의 9년 동안 판매된 부수가 600부뿐이었다고 하니,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해야 했던 것은 그의 이론에 관한 비판보다는 무관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꿈의 역할(소원 성취)과 그 동력(리비도)에 대한 부분으로 되돌아오자면, 프로이트가 말하는 리비도는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아기에 경험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프로이트가 책에서 소개하는 많은 사례들은 대체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개념 안에서 매끄럽게 설명된다. 처음 꿈의 해석을 접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유아기에 겪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성인이 되어 꾸는 꿈에 개입한다는 사실은 언뜻 대단한 논리적 비약으로 보이기도 한다. (사실 글을 읽으면서 몇 가지 궁금증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이러한 심리기제는 잠을 자는 동안 전의식(의식으로 표출되는 직전 단계)에 이르는 과정에서 전위, 압축, 묘사가능성에 의한 변형, 이차 가공의 네 요인에 의해 혼합된 형태로 굴절된다. 이 네 가지 요인은 각각 챕터를 할애해 가면서 풍부한 사례와 함께 상세히 설명된다. 그리고 요인들이 작용되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표상과 언어 유추가 동원된다. 결국 의식 상태로 발현되지 못한 꿈의 기제는 다시 무의식을 향해 퇴행(여기서 '퇴행'은 단지 부정적인 의미만을 지니지 않으며 전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거슬러 움직인다는 의미를 지닌다)하며 이러한 진자 운동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꿈이다. 즉, 꿈은 다른 의미에서 각성 상태에 이르지 않고 수면 상태에 머무르겠다는 ‘소원 성취’의 일종이기도 하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하고 유용한 것은 꿈의 최초 발화점이 되는 리비도다. 리비도는 전위와 압축이 발생하는 내용물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프로이트 본인은 신경증을 성(性) 문제로 일반화한다는 비판이 부당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리비도를 다룰 때 수시로 거론하는 거세 콤플렉스(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자체가 이미 금기시되는 성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적 본능과 리비도 개념은 동의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서로 필수불가결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아직 성 개념이 확립되지 않고 성징(性徵)이 뚜렷하지 않은 유아들이 부친과 모친에 대해서 오이디푸스 신화만큼이나 폭력적인 상상을 품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일상적인 삶을 영위함에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콤플렉스가 히스테리로 발현되지 않도록 전의식 이전 단계에서 무의식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무의식의 충동적인 도약을 ‘검열’해야 할 문지기 또는 파수꾼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사람은 꿈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즉 정신병에 걸린다. 그렇게 되면 유아기에 뿌리를 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가신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논지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인간이 천성적으로 파괴적이라는 성악설에 근거한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공중에 띄우는 놀이, 민감한 신체적 접촉 등 여러 사례들이 유아기에 축적되는 리비도에 관한 생생한 경험으로 언급되는데, 과연 이러한 사례들이 개념적 추론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 의문이다.
또 한 가지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대목은 아무래도 ‘언어’에 대한 부분이다. 프로이트는 꿈-내용에 등장하는 여러 표상(Vorstellung)들을 언어적으로 꿈-사고와 연결짓는 작업을 한다. 예를 들면, 책에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꿈 속에서 ‘말(馬)을 타는’ 장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각주가 달려 있다. 1. 거들먹거리다(sich aufs hohe Roßsetzen); <말 위에 높이 앉다>, 2. 위치가 공고하다(fest im Sattel sitzen); <안장에 단단히 앉다>. 이러한 언어적인 연상작용은 일반적으로 유럽 언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게 아니더라도 발음의 유사성이나 동어 반복이 꿈-해석에 활용되는 경우가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꿈-해석 방법이 한국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령 ‘구름’이 가득 껴 있던 하늘이 맑게 개는 꿈을 통해서 ‘고름’이 가득 낀 상처가 나을 것이라는 ‘소원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이처럼 유아기적 퇴행을 개념화하는 문제와 언어 차이 문제는 프로이트의 글을 읽는 동안 주의 깊게 읽었던 부분들이다. 앞서 말했듯 쉽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의 글은 대단히 논리적이다. 꿈에 대한 기존 통념의 한계를 명확히 밝히고, 그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개념을 제시한 뒤, 왜 그러한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모든 문장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질서정연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그러한 논리적 전개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며, 더불어 논리적으로 반론할 만한 여지도 남겨 놓는다. 꿈-내용과 꿈-사고의 관계를 제1심급, 제2심급과 같이 법률 심사에 빗댄 부분도 재미있다.
책의 후반부는 정신분석학을 심리학에 연계시키기 위한 이론적인 시도로 작성되었으며, 실험적인 개념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기 때문에 내용이 다소 까다롭다. 하지만 꿈-사고의 정서가 꿈-내용에 외현적으로 나타날 수는 있어도 그 반대가 진행될 수 없다는 꿈 속 정서에 대한 견지, 그리고 불안-꿈을 자신의 이론적 틀(억압과 저항 기제) 안에서 설명하는 방식도 납득할 만했다. 언젠가는 읽었어야 할 책을 뒤늦게 읽은 느낌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P [E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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