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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 [갈무리]일상/book 2021. 8. 9. 18:05
꿈의 기억 방법은 일반적으로 모든 기억 이론에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일단 소유한 것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p. 50
꿈-요소들은 결코 단순한 표상이 아니라, 깨어 있는 감각의 중개를 통해 경험하는 것과 같은 <현실적이고 진실한 정신 체험>이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낱말 형상과 언어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반면, 꿈에서는 현실적인 감각 형상으로 생각하고 사고한다. 게다가 꿈에서는 깨어 있을 때처럼 감각과 형상들이 외부 공간에 자리함으로써 공간 역시 의식된다. 그러므로 꿈속에서 지각 및 형상에 대한 정신의 관계는 깨어 있을 때와 같은 상황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신이 착각을 일으킨다면, 그 이유는 수면 상태에서는 지각되는 감각이 외부에서 오는지 내부에서 오는지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은 객관적 실재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형상들을 검증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정신은 <임의로> 교환 가능한 형상들과 그렇지 않은 다른 형상들 사이를 거의 구분짓지 않는다. 또한 인과율의 법칙을 꿈-내용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에 혼동을 일으킨다. 간단히 말해 정신이 외부 세계에 등을 돌리기 때문에 주관적 꿈의 세계를 쉽게 믿어 버리는 것이다.
—p. 90
현실에서 기대 이상의 일이 생길 때, 사람들은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고 기쁨에 넘쳐 소리친다.
—p. 198
<네가 알고 있는 최상의 것을 사내아이들에게 말하지 말라.> 권력자에게 듣기 싫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정치적 문인(文人)의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 그가 진실을 솔직하게 말하면, 권력자는 그의 발언을 억압할 것이다. 구두(口頭)에 의한 의사 표명이면 추후에, 인쇄 매체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억압하려고 할 것이다. 문인은 검열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자신의 견해 표현을 완화하고 왜곡한다. 그는 검열의 강도와 민감성에 따라 공격의 일부 형식만을 제한하거나 직접적인 표현 대신 암시로 말하기도 한다. 아니면 불쾌한 이야기를 악의 없이 보이도록 위장하고 은폐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기 나라의 관리를 의중에 두고서, 중국의 고관 대작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이야기할 수 있다. 검열이 엄격할수록 위장의 범위가 넓어지고, 원래의 의미를 추적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끌어 주는 수단은 종종 기지를 더한다.
—p. 210
우리는 꿈-형성의 장본인으로서 개개인의 두 가지 심리적 힘(경향, 체계)을 가정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꿈을 통해 표현되는 소원을 형성하고, 다른 하나는 꿈-소망을 검열하고 검열을 통해 소원의 표현을 왜곡하도록 강요한다. 문제는 검열을 행사하는 두 번째 심급의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잠재적 꿈-사고는 분석이 수행되기 전에는 의식되지 않는 반면에, 외형적 꿈-내용은 의식적으로 기억디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두 번째 심급이 누리는 특권은 사고가 의식에 진입하는 것을 허락하는 데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두 번째 심급이 사전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첫 번째 심급의 어떤 것도 의식에 이를 수 없다. 두 번째 심급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 의식에 들어오고자 하는 것을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변화시키기 전에는 어떤 것도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의식의 <본질>에 대한 분명한 견해를 형성할 수 있다. 의식된다는 것은 표상 또는 개념의 형성 과정과 무관한 별개의 특이한 심리적 활동이다. 의식은 다른 곳에서 주어지는 내용을 지각하는 감각 기관으로 나타난다.
—p. 211~212
꿈은 자주 <다의적으로> 보인다. 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꿈 하나에 소원 성취가 여러 개 나란히 결합해 있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한 의미나 소원 성취가 다른 것을 은폐하고 있어 맨 밑에서 유년 시절 최초의 소원 성취에 부딪히게 될 수도 있다. 여기 이 명제에서도 <자주> 대신 <규칙적으로>라고 말하는 편이 더 올바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p. 306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매일 8시간 내지 10시간 동안 정신요법을 하는 것도 곡예였다. 그러나 나는 신체적으로 충분히 건강하지 않고서는 내 어려운 연구를 좀처럼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꿈은 그렇게 되는 경우 처하게 될 상황을 여러 가지로 우울하게 암시하고 있다. 해석을 계속하면 꿈-작업이 말 타고 싶어하는 소원에서 지금 영국에 살고 있는 한 살 위 조카와 나 사이에 있었던 어린 시절 사건으로 거슬러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꿈에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겪은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 꿈속의 도로는 베로나와 시에나에서 받은 인상들로 합성되어 있다. 좀 더 깊이 해석하면 성적인 꿈-사고에 이른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보지 못한 어느 여성 환자의 꿈에서 그 아름다운 나라에 대한 암시가 무엇을 의미했는지 잘 기억하고 있다(<이탈리아를 향해gen Italien>—<생식기(Genitalien)>). 또한 친구 P에 앞서 내가 진료했던 집과 내 부스럼의 위치도 관계없지 않다.
—p. 321~322
<(꿈-검열 및 나중에 논하게 될 《2차 가공》과 더불어, 의식적인 자아가 지향하고 있으며, 의식적인 자아가 꿈꾸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보여 주는) 자고 싶다는 소원은 꿈 형성의 동기 중 하나로 항상 고려되어야 한다. 성공한 꿈은 모두 그 소원의 성취이다.>
—p. 325
그 성취를 방해받는 <억압된> 소원이 정신생활에 존재한다. 그런 소원이 존재한다는 말은 그런 소원이 한때 있었지만 나중에 사라졌다는 역사적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억제된 소원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심리적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억제된 소원이 성취되는 일이 일어나면 두 번째 (의식할 수 있는) 체계의 방해를 극복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불쾌감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사태는 일련의 불안-꿈을 가능하게 한다.
—p. 327
요점만 말하면 성적으로 어느 한쪽을 좋아하는 경향이 일찍부터 눈을 떠, 소년은 아버지를, 소녀는 어머니를 사랑의 경쟁자로 보고 이 경쟁자를 제거하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 자식 관계에는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한 가지 이상 숨어 있다. 검열을 통과할 수 없는 소원을 품게 하는 조건은 아주 많다. 먼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보자. 나는 신성시되는 모세의 십계명이 현실을 인지하는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류의 대부분이 다섯 번째 계명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을 감히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른 이해 관계 앞에서 부모에 대한 효성심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태곳적부터 신화와 전설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어두운 이야기들은 아버지의 전권과 그것을 휘두를 때의 냉혹함에 대해 유쾌하지 않은 표상을 심어 준다. 어미 돼지가 낳은 새끼들을 수퇘지가 먹어치우듯이 크로노스는 자신의 자식들을 삼키고, 제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거세한 다음 스스로 지배자가 되어 아버지 자리를 차지한다.
—p. 352~353
『오이디푸스 왕』에서는 우리 내면의 목소리가 운명의 강요하는 힘을 인정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는 실제로 그럴 만한 계기가 내포되어 있다. 그의 운명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 될 수도 있고, 출생 전의 신탁이 우리에게도 똑같은 저주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 최초의 성적 자극을, 아버지에게 최초의 증오심과 폭력적 희망을 품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꿈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왕은 우리 어린 시절의 소원 성취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경 정신증 환자가 되지 않는 한, 오이디푸스보다 행복하게 우리의 성적 자극을 어머니에게서 분리시키고 아버지에 대한 질투심을 잊을 숭 ㅣㅆ다. 우리는 유년기의 원시적 소원을 성취한 인물 앞에서 마음속의 소원을 억압한 만큼 경악한다.
—p. 361
꿈-사고와 꿈-내용은 하나의 내용을 두 개의 다른 언어로 묘사하는 것과 같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꿈-내용이 꿈-사고를 다른 표현 방식으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원본과 비교하고 번역하여 다른 표현 방식의 기호와 결합 법칙을 알아내야 한다. 꿈-사고는 알아내기만 하면 즉시 이해할 수 있다. 꿈-내용은 마치 상형 문자로 씌어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기호 하나 하나를 꿈-사고의 언어로 옮겨 놓아야 한다. 이 기호들을 기호 관계 대신 상형 가치에 따라 읽는다면, 분명 길을 잘못 들게 될 것이다.
—p. 378~379
꿈-내용과 꿈-사고를 비교해 보면, 여기에서 대규모 <압축Verdichtungsarbeit>이 일어난다는 것을 맨 먼저 깨닫게 된다. 꿈-사고의 크기와 풍부한 내용에 비해 꿈은 짧고 간결하며 빈약하다. 꿈을 글로 쓰면 채 반쪽을 넘지 않는다. 꿈-사고를 포괄하는 분석을 글로 쓰기 위해서는 그것의 여섯이나 여덟 배, 열두 배가 필요하다.
—p. 380
꿈-사고에서 분명히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것이 반드시 꿈에 표현될 필요는 없다. 꿈은 꿈-사고의 <중심>과 <다르며>, 내용 역시 중심점과 다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꿈-작업에서 심리적 힘이 표출된다는 생각이 쉽게 떠오를 수 있다. 이 힘은 심리적으로 가치가 높은 성부들의 강도를 박탈하는 한편, <중복 결정을 통해> 가치가 적은 성분들에게는 꿈-내용에 이를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준다. 사실이 그렇다면 꿈-형성에서 각 요소들의 <심리적 강도의 전이와 전위>가 일어난 것이며, 그 결과는 꿈-내용 텍스트와 꿈-사고 텍스트의 차이로 나타난다.
—p. 413, 416
동일시나 혼합 인물 형성은 꿈에서 여러 가지 목적에 기여한다. 그것은 첫째 두 인물의 공통점 묘사, 둘째 <전위>된 공통성 묘사, 셋째 단순히 <소원하는> 공통성의 표현을 도와준다. 두 인물에 공통성이 있기를 바라는 것과 두 인물의 <교환Vertauschen>이 자주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 역시 꿈에서 동일시를 통해 표현된다.
—p. 433
나는 자궁 속의 삶에 대한 공상과 무의식적 사고의 의미를 나중에 가서야 제대로 평가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산 채로 매장될지 모른다는 많은 사람들의 특이한 불안을 설명해 줄 뿐 아니라, 사후의 삶에 대한 믿음을 무의식적으로 깊이 증명한다. 이 믿음은 출생 전의 무서운 삶을 미래에 투사시켜 묘사한다. <출생 행위는 최초의 두려움 체험이며, 따라서 두려운 감정의 원천이고 본보기이다>
—p. 534
요컨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판단이 내용의 한 요소로 꿈-사고에 나타나고, 일반적으로 비판과 조롱이 꿈꾸는 사람의 무의식적인 사고 흐름을 자극하면, 꿈은 부조리해진다. 따라서 꿈-사고와 꿈-내용 사이에서 재료 관계의 전도나 운동장애 감각의 활용처럼, 부조리는 꿈-작업이 반대를 묘사하는 수단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꿈의 부조리는 단순한 <부정(否定)>으로 번역할 수 없다. 그것은 반대와 동시에 조롱하거나 비웃는 꿈-사고의 성향을 묘사해야 한다. 오로지 이런 의도로만 꿈-작업은 우스꽝스러운 것을 제공한다. 꿈-작업은 여기에서 다시 <잠재적 내용의 일부를 외현적 형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p. 575~576
꿈은 지극히 황당무계한 듯 보이는 곳에서 가장 함축적인 경우가 종종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위험을 각오하면서 할 말을 해야 했던 사람들은 기꺼이 광대 모자를 쓰곤 했다. 금지된 말이 겨냥하고 있는 관객들은 그 달갑지 않은 말이 바보 같은 소리라고 판단해 웃어넘길 수 있으면 그 말을 쉽게 참았다. 연극에서 바보인 척 굴어야 하는 왕자는 사실 꿈과 같은 방법을 이용한다. 그 때문에 햄릿이 원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익살스러운 것으로 대체하면서 자신에 대해 주장하는 말은 꿈에도 적용할 수 있다. <나는 북북서풍이 불 때만 제정신이 아니다.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오면, 왜가리와 매를 구분할 수 있다.>
—p. 588
정서를 유발시킨 표상 무리와 정서의 분리는 정서가 꿈-형성에서 겪는 가장 뚜렷한 것이지만, 꿈-사고에서 외현적 꿈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유일하거나 본질적인 변화는 아니다. 꿈-사고에서 느끼는 감정을 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한 가지 사실이 즉시 명백해진다. 즉 꿈에 감정이 나타나는 경우에는 꿈-사고에도 감정이 존재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꿈은 가공의 토대가 된 심리적 재료보다 흥분의 정도에서 빈약하다. 꿈-사고를 재구성해 보면, 그 내부에서 강렬한 영혼의 충동들이 대부분 날카롭게 대립되는 충동들과 싸우면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다음 꿈을 돌아보면, 꿈은 보통 무미건조하며 강렬한 감정의 색채를 찾아보기 어렵다.
—p. 618
나는 아이들의 이름을 지으면서 유행에 따르지 않고, 존경하는 인물을 기념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러한 이름들이 아이들을 <망령>으로 만드는 것이다.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불멸>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가 아닐까?
—p. 643
여기에서 꿈-내용의 이러한 이차 가공과 꿈-작업 요인들 사이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압축 경향, 검열을 피해야 하는 압박, 꿈이 가진 심리적 수단들의 묘사 가능성에 대한 고려라는 꿈-형성 요인들이 먼저 재료에서 잠정적인 꿈-내용을 형성하고, 그런 다음 나중에 이 내용이 제2 심급의 요구를 가능한 한 충족시킬 때까지 변형되는 것일까? 이것은 거의 신빙성 없는 이야기이다. 그보다는 제2 심급이 꿈이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 가운데 하나를 처음부터 제시하며, 이 조건은 압축, 저항 검열, 묘사 가능성의 조건들처럼 많은 꿈-사고 재료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선택에 개입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꿈-형성의 네 가지 조건 가운데 마지막으로 고찰한 조건의 요구가 어쨌든 꿈에 가장 적은 강제력을 행사하는 듯이 보인다.
—p. 658
꿈-형성에서 정신 활동은 꿈-사고를 만들어 내는 것과 꿈-사고를 꿈-내용으로 변환시키는 것, 두 가지 기능으로 나뉜다.
……근본적으로 꿈은 수면 상태의 조건에 의해 가능해진 우리 사고의 특별한 <형식>일 뿐이다. 이러한 형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꿈-작업>이다. 꿈-작업만이 꿈의 본질적인 것이며 꿈의 특수성을 설명해 준다. 나는 이것을 꿈의 그 유명한 <미래 지향적 경향>을 높이 평가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한다. 꿈이 우리의 영혼 생활에 부여되는 과제들을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깨어 있는 동안의 의식적인 삶이 그러한 시도를 하는 것처럼 이상할 것이 없다. 다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이러한 작업이 전의식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덧붙여야 한다.
—p. 667~668
소원으로 인식하기 어려운 특성, 많은 기이한 것들과 부조리는 꿈-형성에서 겪는 심리적 검열의 영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검열에서 벗어나야 하는 압박 이외에 심리적 재료를 압축해야 하는 압박, 감각적 형상으로의 묘사 가능성에 대한 고려, 그리고 꿈형성물의 합리적이고 이해 가능한 외양을 위한 고려가 꿈-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p. 700
우리는 운동성 말초 조직의 마지막 조직을 <전의식das Vorbewußt 조직>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흥분 과정들이 예를 들어 어느 정도의 강도에 이르고 주의력이라 부를 수 있는 기능이 배분되는 등 특정 조건들이 충족되는 경우 지체없이 의식에 이를 수 있음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전의식은 동시에 자의적인 운동성에 이르는 열쇠를 쥐고 있는 조직이다. 그 뒤의 조직은 <전의식을 통하는 것 외에는> 의식으로 접근하는 통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das Unbewußt 조직>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환각적인 꿈에서 일어나는 것을 묘사하는 방법은 감정이 <퇴행하는> 길을 간다고 말하는 것밖에 없다. 감정은 정신 기관의 운동성 말초 조직 대신 감각적 말초 조직을 향해 나아가며, 결국 지각 조직에 도달한다. 깨어 있을 때 무의식에서 출발한 심리적 과정이 진행하는 방향을 <전진하는progredient> 방향이라 부른다면, 꿈은 <퇴행하는regredient> 특성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p. 710~711
우리는 이미 소원 성취를 계기로 꿈을 두 부류로 분류하였다. 명백히 소원 성취로 드러나는 꿈들과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알아볼 수 없도록 소원 성취를 은폐한 꿈들이 있었다. 우리는 후자의 경우에서 꿈-검열의 기능을 인식했다. 왜곡되지 않은 소원-꿈은 주로 아동들에게서 나타났지만, 성인들 역시 <짧고> 솔직한 소원-꿈을 꾸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 유보적인 판단을 강조한다.
……억압된 이러한 소원들은 직접 유아적인 것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나는 앞에서 진술한 논제, 즉 꿈-소원의 유래가 사소한 것이라는 논제를 삭제하고, <꿈에서 묘사되는 소원은 유아적인 것이 분명하다>는 논제로 대체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경우에 소원은 무의식에서 비롯된다. 전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분리와 검열이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점차 형성되는 중인 아동의 경우에는 깨어 있는 동안의 생활에서 성취되지 못했지만 억압되지도 않은 소원이 문제된다.
—p. 722, 726
꿈을 근거로 무의식과 전의식 사이에 존재한다고 추정해야 하는 검열이야말로 우리 정신 건강의 파수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 파수꾼이 밤에 활동을 축소하여 무의식의 억압된 충동을 표출시키고 환각적 퇴행을 다시 가능케 한다면, 근무 태만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비판적인 파수꾼은 휴식에 들어가면 운동성에 이르는 문 역시 폐쇄하기 때문이다. 평소 제어된 무의식에서 어떤 충동들이 무대로 뛰쳐나오든지 간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다. 그것들은 외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운동성 기관을 가동할 수 없는 까닭에, 내버려 두어도 해가 없는 것이다. 수면 상태는 지켜야 할 요새의 안전을 보장한다. 비판적 검열의 활동력이 밤에 이완되기 때문이 아니라, 활동력이 병적으로 약화되거나 무의식적 충동이 병적으로 강화되기 때문에 힘의 전위가 일어나는 경우, 전의식이 점령되고 운동성에 이르는 문이 열려 있으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그렇게 되면 파수꾼은 맥을 못추고, 무의식적 충동들이 전의식을 장악하게 된다. 그것들은 전의식으로부터 우리의 언행을 지배하거나 환각적 퇴행을 강요하고, 지각이 심리적 에너지 배분에 발휘하는 흡인력에 의지해 자신들에게 해당되지 않는 기관을 조종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태를 정신병이라 부른다.
—p. 742~743
에너지를 완전히 빼앗기지 않은 낮의 잔재가 깨어 있는 동안의 활동에서 남아 있거나, 낮 동안 깨어 있을 때의 활동에 의해 무의식적 소원 가운데 하나가 활성화된다. 아니면 두 가지가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다. ……무의식적 소원은 낮 동안이나 아니면 비로소 수면 상태에 돌입할 때 낮의 잔재에 이르는 길을 마련하고, 자신을 그것에 전이시킨다. 그러면 최근의 재료에 전이된 소원이 생겨나거나, 억압된 최근의 소원이 무의식에서 지원을 받아 새로이 활기를 띤다. 이 소원은 한 구성 성분에 의해 전의식에 속해 있으며, 이제 정상적인 사고 과정의 길을 밟아 전의식을 지나 의식으로 뚫고 나가려 한다. 그러나 소원은 여전히 존재하는 검열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그 영향에 굴복한다. 그리고 최근의 것으로 전이되면서 이미 시작한 왜곡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꿈-과정은 수면 상태의 속성 때문에 열려 있는 퇴행의 길로 접어들게 되고 이 과정에서, 다음 조직들의 기호로 바뀌지 않고 다만 부분적으로 시각적인 에너지 리비도 집중으로서만 존재하는 기억 집단이 발휘하는 흡인력에 이끌린다. 꿈-과정은 퇴행하는 도중 묘사 가능성을 획득한다. ……이제 꿈-과정은 여러 번 굴절하는 도정의 두 번째 부분을 통과했다. 첫 번째 부분은 무의식적인 사건이나 공상들에서 전의식에 이르는 전진하는 길이었으며, 두 번째 부분은 검열의 관문에서 다시 지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꿈-과정이 일단 지각 내용이 되기만 하면, 전의식의 검열이나 수면 상태가 부과한 장애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것은 주의를 끌어 의식이 자신을 인지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
—p. 749~750
꿈은 자유롭게 방임된 무의식의 흥분을 다시 전의식의 지배하게 끌어들어는 임무를 떠맡는다. 또한 꿈은 무의식의 흥분을 배출시키고 무의식의 밸브 역할을 하는 동시에, 약간의 각성 활동을 통해 전의식의 수면을 보장한다. 따라서 꿈은 같은 계열의 다른 심리적 형성물들과 마찬가지로 타협으로 나타나며, 두 조직의 소원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 한 양측을 동시엥 성취시키면서 양측 모두에 기여한다.
—p. 756
여러분에게 유명한 동화를 하나 들려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동화 속에서 이와 똑같은 관계를 발견하실 것입니다. 착한 요정이 어느 가난한 부부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 세 가지 소원을 신중하게 선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옆집에서 풍겨 오는 구운 소시지 냄새에 이끌려, 저런 소시지 두 개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습니다. 그러자 즉시 소시지가 그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소원 성취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화가 났고, 격분한 나머지 소시지가 아내의 코에 붙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소원 역시 곧 이루어졌으며, 아내의 코에 붙어 버린 소시지는 아무리 해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소원 성취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남편의 소원이었고, 아내에게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소원 성취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동화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이 근본적으로 한 존재이기 때문에, 세 번째 소원은 아내의 코에서 소시지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p. 758~759
천상의 힘들을 꺾을 수 없다면, 저승을 움직이련다.
Flectere sinequeo Superos, Acheronta movebo.
—p. 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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