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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들의 종교는 신비라기보다 실질이오. 일찍이 우리 신라 중들이 당나라 불교계를 주름잡았던 일은 오늘 이 시점에서도 납득될 수 있는 일 아니겠소? 그들에게는 신비하거나 황당무계한 것에도 육신의 활동이 따르는 법이오. 중들이 무예를 익히는 것 소위 도술이지요. 살생계를 범하고 드는 게지요. 우리 조선 중, 의상이나 원효에게서 피비린내를 생각할 수 있겠소? 종교의 본질로 봐서는 우리 쪽이 깊다면 깊은 거지요. 우리 조선에선 유교만 해도 그렇지요. 학문으로서만 높이 올라갔고 실생활에서는 도통 쓸모가 없었어요. 그야 실학을 도외시하고 예학만을 숭상하였으니 일반 백성들에겐 조상의 묘 지키는 것과 선영봉사 하는 것 이외 가르친 것이 없구요. 충절까지도 선비들이 독점하였으니, 동학은 또 어떠한가 하면은 천지 자연의 이법을 뜻하는 중국의 천도와는 다른 하나님의 도, 천도란 말씀이오……”
—p. 41~42
메마른 정열, 그렇다, 환이의 정열은 메마른 것이다. 메말랐기 때문에 냉철한 것이다. 목적은 있으나 희미하고 과정만이 뚜렷하다. 대담하고 인내심 깊은 것은 야망을 위한 집념 때문이 아니다. 절망의 정열, 그렇다. 환이는 절망의 밑바닥에서 걷고 있다.
—p. 45
‘뜻대로 안 되는 것을 뜻대로 살아볼려니까 피투성이가 되는 게야. 인간의 인연같이 무서운 거이 어디 있나.’
—p. 59
“나는 가끔 의심 많은 중국인 기질을 생각할 때가 있어. 그것을 나는 결함으로 생각하진 않지. 배신당하고 기만당해온 역사, 왜 중국의 민중들은 기만당한 것을 자각하느냐, 그것은 그들 농민들 스스로가 엎은 정권을 가로채간 패자(覇者), 어제까지 동지였던 그 패자의 칼끝을 농민들은 등줄기에 느껴야 하는 역사, 반복되어온 역사 때문이지. 조선사람들에겐 군왕에 대한 배신감 같은 것은 아주 희박하거든. 중국인은 의심이 많다, 당연하지. 당연할 뿐만 아니라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되는 게야. 의심이란 가장 좋은 상태를 선택하고자 하는 조심성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을 찾는 욕망이 강하다, 그렇게도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p. 82~83
‘어찌 너희들이 넘보았느냐. 어찌 너희들이 강탈하였느냐. 어찌 너희들이 감히 오욕을 끼얹을 수 있었더란 말이냐. 나는 돌아간다! 그이가 돌아가지 않는대도 나는 돌아간다! 그것은 애초부터 말없는 약속이 아니었더냐? 그것은 엄연한 약속이다. 이제 내 원한은 그이의 원한이 아니며 그이의 돌아갈 이유도 아닌 것을 안다. 왜? 왜? 왜 내 원한이 그이 원한이 아니란 말이냐! 남이니까, 내 혈육이 아니니까.’
—p. 141
“어머니! 어머니! 당신은 두 아들을 섬긴 한 며느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내게 진 빚 때문에 그러셨습니까! 아니면 그 강간자를 당신은 사랑했기 때문에 그러셨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양반의 법도를 저주했노라고 말씀해주십시오! 어머님! 당신보다 며느님이 진실했다고 말씀해주십시오. 어머님! 저는 한번 짖어보려고 만주땅에 왔습니다! 짖어보려고 무거운 쇠철갑을 벗어보려구요! 어머님! 만주땅 수천 리 벌판을 달려보려구요! 아버지의 피를 아십니까! 내 아버지는 옳았소! 옳았소이다! 당신을 유린한 것도 옳았고 아귀같이 피를 뿌린 것도 옳았소! 내게 더 많은 피를 뿌리게 하옵시고 더 큰 역도가 되게 하옵시고! 조선 천지를 피로 씻어내게 하옵시고! 방방곡곡 슬픈 울음이 끊기게 하옵시고 죄 아닌 것을 죄 되게 하지 마시옵고!”
—p. 294~295
푸릇푸릇한 들판에 펼쳐진 봄은 화사했다. 들판 위에 떨어지는 새 그림자는 금방 겨울을 잊은 경망한 계집의 웃음 같기도 하고 벌써 낙엽인가 하는 착각에서 당황해지기도 하고, 햇빛은 먼 밖에서 얼쩡얼쩡 서성거린다.
—p. 368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희생자는 천물(賤物)이요 죄인이지. 어쩔 수 없게 몰아넣어 놓고. 하나님은 착하시지. 허허, 허허허…… 누군가 소를 죽여주어야 소고기를 먹을 테고, 누군가 호랑이를 죽여주어야 호환을 면할 테고 누군가 나쁜 놈을 죽여주어야 살인강도, 역적이 없어질 테고, 날이면 날마다 살생은 아니 끊이는데, 죄인은 날로 날로 늘어만 가는데, 성현은 무엇을 했느냐! 살생 아니하고 간음 아니하고 도둑질 아니하고 허언 아니하고 모함 아니하고 그 아니하는 성현을 먹고 마시고 입고 잡들게 한 것은 하나님 아닌 죄인들의 덕분이라, 소의 세상, 호랑이의 세상, 살인강도의 세상에서 어찌 성인인들 연명하여 도를 닦았겠느냐? 살아생전에는 죄인들 덕분에 덕을 높일 수 있었고 죽어서는 또 극락 꽃밭에서 소요하는 신세, 그래 대성(大聖)은 무엇이냐! 대오각성한 자가 대성이라, 무엇을 대오각성하였느냐!”
—p. 371~372
“과연 그렇게만 해석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없다고 가상하더라도 말씀입니다. 죽음이란 처참해도 있는 채 그대로 놔두고 사는 것이니까요. 사람이 사람 아닐 수 없는 이상 죽음은 넘어갈 수도 넘어올 수도 없는 거니까요. 설령 사람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고 짐승을 죽인다 하더라도 죽음은 죽음일 뿐이겠지요. 형벌만이 우리에겐 살아 있는 것일 겁니다.”
—p. 373
‘이 사람아, 석운, 나는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네. 참말로 모르겠네. 이십 년을 방황하였건만 나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고 생각은 호박오가리처럼 쭈그러들었네. 저네들은 싱싱한 호박 넝쿨처럼 사방에다 줄기를 뻗고서 내 앞에 나타났단 말일세. 어떻게 그리 변신할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일세. 철사 같은 그 신경의 줄이 나를 휘감더군, 옴짝할 수 없게시리 나를 휘감더군.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한갓 감상이요, 그네들이 추하다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었네. 내 노여운 음성은 허울만 남은 호랑이 울음이었고, 그네들이 맞서는 음성은 발톱으로 먹이를 찢어발기는 이리떼의 울음이었네. 이 사람, 석운, 늙은 탓이 아닐세 늙은 탓이 아니야. 내 나이 이제 오십을 넘겼을 뿐인데 세월이 달라진 게야. 그리고 우린 이조 오백 년의 무거운 세월을 싫든 좋은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p.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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