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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IV: 희랍 도시국가들의 복속일상/book 2021. 2. 4. 00:02
로마인들은 항상 자신들이 정복 정책을 추구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자신들이 공격받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상투적인 언명이 아니었다. 시킬리아와의 전쟁은 예외로, 모든 위대한 전쟁들, 즉 한니발이나 안티오코스와의 전쟁, 또 중요성에서 덜 하지 않은 필립포스와 페르세우스와의 전쟁 속으로 로마는 사실상—직접적 공격 또는 기존 정치 상황에 대한 전대미문의 교란에 의해—끌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리하여 통장 기습적인 전쟁 발발에 경악했다. 로마가 승전 후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의 자기 이익을 위한 절제를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 예컨대 히스파니아의 보유, 아프리카에 대한 후견 책임의 인수, 특히 전체 희랍인에게 자유를 부여한다는 이상적인 계획 모두가 이탈리아 정책에 반하는 심각한 오류였다는 사실은 명백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원인은 한편으로는 카르타고에 대한 맹목적인 공포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훨씬 더 맹목적인 희랍의 자유를 향한 열정이었다.
로마는 이 시기에 특히 정복욕을 입증해 주지 않고 오히려 매우 합리적인 정복혐오를 보여준다. 어디라도 로마의 정책은 엄청난 유일한 두뇌에 의해 계획되어 전통에 따라 후속 세대에 계승된 것이라기보다는, 카이사르나 나폴레옹적 의미의 계획을 세우기에는 결속력이 너무 없었고, 자기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본능은 정당하긴 하지만 너무 강한, 아주 효과적이기는 하지만 편협하기도 한 평의회의 정책이었다. 로마의 세계지배는 고대의 일반적 국가 발전에 최종적 근거를 가진다. 즉 구세계는 민족들 간의 균형을 알지 못했고 그리하여 내부로 통일된 모든 민족은 희랍 민족들처럼 이웃 민족들을 곧바로 복속시키려 했거나, 또는 로마처럼—물론 결국 복속으로 귀결되곤 했지만—위험하지 않게 무력화만 시키려 했다. 이집트는 아마도 체제의 균형을 진지하게 추구했던 고대 유일의 대국이었다. 대립된 체제에서 셀레우코스와 안티고노스가,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충돌했다. 다른 모든 재능 있고 고도로 발전한 고대 민족들이 그들 중 한 세력만을 이득 보게 하려고 다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모두가 결국 이탈리아 위대성의 수립을 위해—동일한 것이지만—또 그 쇠멸을 위해 생겨난 듯하다는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하지만 역사적 정의는 여기에서 밀집방진에 대한 로마 군단의 군사적 우월함이 아니라 고대 민족들간의 필연적인 사태 발전이 좌지우지했고, 그리하여 순전한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불변의 운명이 실현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p. 150~151
4번째 「몸젠의 로마사」는 다소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이전의 세 권에 비해 번역도 좀 불친절해서 읽기가 꽤 뻑뻑했다. 내용면에서는 두 차례(2~3차)의 마케도니아 전쟁과 아시아 전쟁을 다루는데, 한니발과 스키피오가 벌였던 카르타고 전쟁에 비해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진다. 또 한 가지 기존에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 일부에 국한되었던 역사적 무대가 비로소 발칸반도와 그리스・소아시아로 대폭 넓어진다는 점을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래서 이 파트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 앞쪽에 실려 있는 지도를 꼼꼼히 봐두어야 한다. 하지만 지도를 잘 읽는 편인데도 까다로운 내용이었다. 원래부터 에게해의 해안선이 워낙 복잡하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헤라이클레이아라는 도시는 지도에 같은 이름으로 세 곳에나 등장한다. 발칸 반도에 한 곳, 펠로폰네소스 반도 근처에 한 곳, 그리고 소아시아에 한 곳. 물론 마케도니아 전쟁이라면 발칸 반도, 안티오코스 전쟁이라면 오늘날의 터키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대충 구분할 수 있지만, 이름도 생소하고 지리도 영 복잡해서 유념해 가면서 책을 읽어야 했다.
원래는 한 권이었던 몸젠의 세 번째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되면서 두 권(3~4권)으로 분권됐다. 그래서 제4권에서는 제3권에 빠져 있는 당시의 로마 정치문화와 관습, 문학・예술이 함께 다뤄진다. (보통은 각 권의 말미에서 예술사와 사회사를 서술한다.) 테오도르 몸젠이 제1권에서는 라티움의 문화에 비해 에트루라아나 카푸아의 문명이 열등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데, 제3권(한국판 제4권)에서는 그러한 라티움 문명이 희랍 문명에 비해 열등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자유롭게 아름다움이 꽃핀 희랍 문명과 달리, 제국의 몸집을 갖추게 된 로마는 공화적 가치를 강조한다는 명목으로 시민들이 향유할 예술을 통제했다. 하지만 그런 로마에서 퇴폐적이고 비인륜적인 오락거리가 길거리에 넘쳐났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로마에서 희랍 문명을 본받으려는 시도는 이루어졌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희랍 문명의 장점을 조금이나마 수용하는 결과보다는 기껏해야 희랍 문명을 조악하게 흉내내고 로마 문화를 저열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초래한다. 로마의 건축이나 기술이 빛을 발한 분야는 어디까지나 수도, 도로, 주화와 같은 실용적인 분야에서였다.
아직 전반부이기는 하지만 로마의 역사를 읽다보면 어쩐지 미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물론 미국은 이미 예술과 학문 분야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다. 내가 로마 제국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까닭은, 세계 패권이 걸린 시점에 한 국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하는 부분에 있다. 앞서 발췌한 두 문단에 잘 묘사되어 있듯, 로마는 스스로 장차 제국이 되어 있는 모습을 그렸던 것도 아니고 정복욕이 있었던 것 역시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히려 로마는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관철시키려는 방어적 관점에서 주변 국가를 차례차례 복속시켜 나간다. 당시는 근대국가처럼 세력 균형이라는 개념이 발달하기 전이라는 시간상의 차이가 있지만, 중국이라는 지역 헤게모니의 등장에 잔뜩 경계하고 나선 미국이 떠오른다.
글에는 파울루스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희랍 정복에 투입된 집정관이지만 고대 희랍 문명을 그렇게나 동경하던 인물로도 묘사가 된다. 희랍국가들을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오합지졸로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로마군은, 파울루스의 지휘 아래 군기를 바로잡고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승기를 잡는 데 성공한다. 자유 문명의 최전선에 있던 희랍을 해방시키기 위해, 희랍지역을 로마 아래 두겠다는 발상은 다소 모순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여세를 몰아 로마는 아시아와 이집트까지 아우르는 제국의 용모를 갖추게 된다.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서방 민주국가들과 동맹국들이 합심해야 한다고 하는 미국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로마가 도전하는 헤게모니들을 막아냈던 것처럼, 미국이 자신의 헤게모니를 다시 다진다면 또는 대척되는 헤게모니를 견제한다면 누가 미국의 리더십을 보여줄 것인가? 2008년 금융위기와 근래의 게임스탑 사태를 보면 미국을 지탱해온 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도 도덕적 해이를 밑바닥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 같다. 마치 로마의 귀족과 시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검투사의 창 앞에 흩뿌려진 핏물에 열광해갔던 것처럼 말이다. 벌써 제5권이 기대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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