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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The Conquest of Happiness)일상/book 2021. 3. 3. 11:07
One of the great drawbacks to self-centered passions is that they afford so little variety in life. The man who loves only himself cannot, it is true, be accused of promiscuity in his affection, but he is bound in the end to suffer intolerable boredom from the invariable sameness of the object of his devotion. The man who suffers from a sense of sin is suffering from a particular kind of self-love. In all this vast universe the thing that appears to him of most importance is that he himself should be virtuous. It is a grave defect in certain forms of traditional religion that they have encouraged this particular kind of self-absorption.
The happy man is the man who lives objectively, who has free affections and wide interests, who secures his happiness through these interests and affections and through the fact that they, in turn, make him an object of interest and affections to many others. To be the recipient of affection is a potent cause of happiness, but the man who demands affections is not the man upon whom it is bestowed. The man who receives affection is, speaking broadly, the man who gives it. But it is useless to attempt to give it as a calculation, in the way in which one might lend money at interest, for a calculated affection is not genuine and is not felt to be so by the recipient.
—p.219<행복의 정복>을 처음 읽었던 건 8년 전쯤 대학 졸업을 앞둔 시점의 일이다. 원래 자기계발 서적이나 심리학 서적을 잘 찾아보는 편이 아니고, 그 무렵 자기계발 서적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좋은 책을 고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도 자기계발 서적을 찾아보지 않지만,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행복의 정복>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던 몇 주 전, 서점의 해외서적 코너를 둘러보다가 노란 표지의 이 책을 서가 위에서 발견하곤, 이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을 헤아려보려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이 책을 손에 들고 곧장 계산대로 향했다.(^^;;)
원서에는 한국어판에는 실리지 않은 영어판 편집자의 서문이 있는데, 꽤 공감 가는 대목이 있다. 예를 들어 버트런드 러셀은 20세기까지 활동한 철학자이지만, 귀족 출신이었고 집사나 하녀에 대한 언급이 종종 등장할 만큼 평균적인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젠더나 인종, 출산 문제에서 동시대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력적인 까닭은 삶의 방향에 대해 기본적인 틀을 잘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행복의 정복>이라는 제목은 언뜻 보아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행복’과 ‘정복’이라니. 버트런드 러셀이 이 책의 후반부에서 말하듯, 그가 굳이 ‘정복’이라는 강한 표현을 ‘행복’에 갖다붙인 건 행복이라는 것이 단순히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폭식(gormandizer)과 건강한 식습관(healthy appetite)의 차이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버트런드 러셀은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욕구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은, 사실 자신을 괴롭히는 망령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The man whom one desire runs to excess at the expense of all others is usually a man with some deep-seated trouble, who is seeking escape from a specter. —p.153) <열정(Zest)> 챕터에 담긴 문장이다. 사람은 무언가에 몰두할 때—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빠져들 때—행복감을 느끼고 좋은 삶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깊은 몰입이라는 것은 단순한 망각과는 다르다. 몰입에 이르는 과정은 여러 갈래이지만 몰입 가운데에서도 양질의 몰입이 있다. 버트런드 러셀은 이를 폭식과 적절한 식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행복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는 그의 이야기 방식은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아서, ‘애정’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 연인간의 사랑. 어떤 철학자들은 사랑을 전적으로 이타적인 감정—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주체적인 선택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버트런드 러셀은 말한다. 우리는 때로 상대에게 희생하고 내어줄 수록 부메랑처럼 더 큰 보상이 뒤따르기를 바란다. 내가 이만큼 애정을 주었으니 어느만큼 내게 해주겠지, 하는 기대 말이다. 하지만 이타적인 사랑에 어느 순간 조건이 따라붙는다면 이 관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버트런드 러셀은 아이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설명에서 이 부분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함께 상세하게 다룬다.
끝으로 이 책의 초반부에 깊이 생각을 해보게 하는 한 문장이 있었다. 버트런드 러셀이 말하길,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하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성공하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 로 불평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What people fear when they engage in the struggle is not that they will fail to get their breakfast next morning, but that they will fail to outshine their neighbors. —p.48)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살기 참 팍팍하다고 할 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당장 굶게 될 것을 걱정하며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요새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고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사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다고 하니 굶주림을 걱정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기는 하다.) 여하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쟁에서 낙오될까봐, 그러니까 실패를 한탄하며 푸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버트런드 러셀의 진단과 지적은 절반은 정답이고 절반은 오답이다. 악셀 호네트나 마사 누스바움, 마이클 샌델 같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듯, 사람이 사회에서 바라고 찾는 것에는 기초적인 생존도구뿐만 아니라 존중감이라는 것이 있다. 따라서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고 말할 때는, 열심히 하는데도 그에 비례하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불만감이 포함된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대로 남들보다 잘나가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서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 푸념, 대단한 대접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존중받고 있지 못해서 힘들다고 하는 푸념, 이 둘 사이의 어딘가에 ‘사는 게 힘들다’라는 말의 진실이 있을 것이다.
한국어판에서는 챕터별로 소제목을 풀어서 번역을 해놓았는데, 영문판에는 ‘지루함과 흥미(Boredom and Excitement)’, ‘피로감(Fatigue)’, ‘질투(Envy)’, ‘죄책감(The Sense of Sin)’, ‘여론에 대한 공포(Fear of Public Opinion)’, ‘열정(Zest)’, ‘가족(Family)’, ‘일(Work)’처럼 아주 직관적으로 제목을 달아 놓았고, 그만큼 내용을 챕터 안의 내용이 더 명료하게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행복의 정복>을 영문판으로 곱씹으면서 다시 읽는 일은 도전적이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좋은 철학 서적들은 영문판이 훨씬 다양해서, 이번 계기로 영문서적들도 종종 찾아 읽어야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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