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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1. 힐로(Hilo)여행/2024 미국 하와이 2024. 9. 1. 11:40
8월 힐로의 날씨는 고요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하와이 행은 순탄치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5월에 갔어야 할 여행이었지만 회사에서 예정에 없던 신규 프로젝트에 착수하면서 예매해 둔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게 되었다. 1년 전, 그러니까 작년 5월 무렵에 예약해 놓은 티켓이었다. 하와이로 출국하는 당일에는 우리나라에 태풍이 올라왔다. 기상 상황이 불안정해서 비행편의 이륙시간이 두어 차례 순연되었다. 인천에서의 이륙이 늦어지면서 덩달아 하와이 안에서 한 번 더 이동하는 국내선 비행편으로의 환승 또한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때문에 일찍부터 준비에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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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매미울음을 들으며주제 없는 글/Miscellaneous 2024. 8. 20. 17:55
올해 들어 날씨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무더위도 아니고 기습적인 호우도 아니고 바로 매미의 변화 때문이다. 이번 여름 유난히 길바닥 위로 죽은 매미가 심심찮게 보였던 것. 날아다니는 매미를 땅에서 발견한다는 것도 기이한데, 작년까지만 해도 보지 못한 광경이라 생경하기까지 하다. 뙤약볕을 받아 바싹 메마른 매미를 보며 안타까움이 들었던 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5~6년의 시간을 어둠 속에서 지낸 시간이 덧없을 뿐만 아니라, 표독스런 햇살이 그런 무상함을 더욱 적나라하게 들춰보였기 때문이다. 한때는 도심지역의 밝은 불빛으로 인해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매미울음이 소음공해로 인식되어 사회적으로 문제시된 적이 있다. 원인 제공을 한 건 바로 우리 자신일 텐데 책임주체를 뒤바꾸는 건 참으로 손쉬운 일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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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망: 미니멀리즘 탐구일상/book 2024. 8. 17. 02:30
심오한 미니멀리즘과 피상적 미니멀리즘의 차이는 개념이 전도되는 차원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니까 더 효과적으로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줄이는 과정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자신을 줄이는 과정 뒤에 따라오는 보상을 받기 위해 의지를 관철하느냐 둘 중 하나다. 이것은 사상으로서의 미니멀리즘이 사물로서의 미니멀리즘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후자는 소유물을 멀리한다는 것은 온갖 문제와 어려움을 멀리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자는 과잉을 멀리하는 행위의 최종 목적은 결국 세상은 엉망이고 불편할 뿐 아니라 보기보다 경이롭고,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암시한다.―p. 20 미니멀리즘은 전 세계의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반복되는 감각에 가깝다. 우리를 둘러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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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일기일상/book 2024. 8. 8. 02:54
내가 시간 속에서 점하는 위치를 이해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변화하는 내 자아를 가능한 한 완전히, 가능한 한 쓸모 있게 활용하고 싶었다. 비틀ㄹ비틀 서성이면서, 비몽사몽간에, 내가 세상에 진 빚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아 있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르는 채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p.9 나는 내가 맹렬한 기세로 다음 사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이전 사람에게서 달아나고 있을 뿐이었다.―p.27 한 친구는 이렇게 썼다. 금이 헬륨과 비슷하면서도 헬륨 이상의 무언가이듯, 결혼은 남자 친구나 여자 친구가 생기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그 이상의 무언가다. 전자(電子)의 내부 껍질이 꽉 차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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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일상/book 2024. 8. 6. 03:43
"다스 부인, 당신이 느끼는 건 정말 고통입니까, 아니면 죄책감입니까?" (p.111 中) "부리 마의 입은 거짓으로 가득해. 하지만 그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지. 새로운 사실은 이 건물의 표정이 바뀌고 있다는 거야. 이 같은 건물이 필요로 하는 건 진짜 경비원이라네." (p.136 中) "그건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이에요." (p.173 中) "모든 사람이, 이 사람들이, 세상에 세상에, 너무 많아." (p.195 中) 사실 산지브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하지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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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비사물일상/book 2024. 8. 5. 12:07
내가 그것을 홀대하고 그것이 내게 쓸데없더라도, 혹은 이런 것을 가치 있는 것이라고 부르는 것도 터무니 없을 것이다. 공기나 물처럼, 내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할 때면 나는 무언가를 위반한다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뭉뚱그려서 말하면, 내가 위반하는 이유는 "자연"과 "문화"의 경계를 무단으로 넘나들기 때문이다. 가령 자연에 시시한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엄하므로 자연을 위반하는 것이다. 가령 문화 바깥에서 가치를 논하는 것은 반인간주의이고 따라서 무엄함 이상이므로 문화를 위반하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과연 자연과 문화의 경계는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이들 사이에는 도처에 무인지대가 있고 도처에서 은밀한 월경(越境)이 일어나지 않는가?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