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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소돔과 고모라 I일상/book 2021. 5. 23. 23:21
부제에서 암시하는 그대로 샤를뤼스 남작과 '나'의 연인 알베르틴의 일탈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알베르틴을 처음 만났던 발베크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가능하다면 마르셀 푸르스트가 소설의 배경으로 썼던 브르타뉴, 노르망디 지방과 파리 시내의 지도를 구해서, 언젠가 프랑스를 제대로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_+
게르망트 댁에서의 저녁 파티 초대를 확신할 수 없었던 나는 파티 참석을 서두르지 않고 밖에서 한가로이 서성거렸다. 여름의 태양도 나와 마찬가지로 움직임을 서두르지 않는 듯 보였다. 밤 9시가 지났는데도 콩코르드 광장의 룩소르 오벨리스크에는 해가 분홍빛 누가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다 해가 그 빛깔을 수정하여 금속 물질로 바꾸자 오벨리스크는 더없이 소중한 모습을 띠면서, 보다 가늘고 유연한 빛을 덧붙였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 보석을 비틀어 놓은 듯, 아니 이미 가볍게 휘어 놓은 듯했다. 이제 하늘에는 정성껏 껍질을 벗겨 사등분한 오렌지 모양의 달이 조금은 손상된 모양으로 떠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면 더없이 단단한 황금으로 만들어진 듯 보일 것이엇다. 그 뒤에 홀로 웅크린 가련한 작은 별은 외로운 달의 동반자로서 유일하게 시중들 것이며, 한편 자신의 친구를 보호하면서도 더 대담하게 앞장서는 달은, 마치 저항하기 힘든 무기나 동양의 상징처럼 그 풍만하고도 경이로운 황금빛 초승달을 휘두를 터였다.
—p. 73~74
이처럼 인간은 여러 종류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참된 즐거움은 그것을 위해 다른 즐거움을 포기하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이 다른 즐거움이 눈에 보이고 오로지 그것만이 눈에 보일 때면 참된 즐거움인 양 믿게 하고, 그리하여 질투하는 이를 안심시키거나 속이면서 타인에 대한 판단을 잘못된 길로 이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다른 즐거움을 위해 참된 즐거움을 희생할 때에는 약간의 행복이나 괴로움만 느껴도 충분하다. 때로는 보다 진지하지만 본질적인 제삼의 즐거움이 있는데, 이 즐거움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잠재적 성격이 회한이나 절망을 일깨우면서 나타난다. 그렇지만 우리가 나중에 전념할 즐거움은 바로 이런 종류의 즐거움이다. 완전히 부차적인 즐거움의 예를 하나 들어 본다면, 군인은 평화 시에는 사랑을 위해 사교 생활을 희생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선포되면(애국적인 의무라는 개념은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사랑보다 강력한 전투에 대한 열정 때문에 사랑을 포기할 것이다.
—p. 202~203병이란 우리가 가장 귀 기울이는 의사로서 인간은 선의와 지식에는 약속만 하지만 고통에는 복종하는 법이다.
—p. 257
우리가 어떤 순간에 영혼을 생각하든, 영혼의 풍요로움에 대한 숱한 결산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총체적인 영혼은 허구적인 가치밖에 갖지 못한다. 그 까닭은 그것이 상상 속의 풍요로움이든 아니면 실제적인 풍요로움이든, 이를테면 내게서 게르망트의 옛 이름이 그러했던 것처럼, 혹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할머니에 대한 진짜 추억이든 간에 거기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이런저런 부분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혼란에 마음의 간헐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의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는 그릇과도 비슷한 육체의 실존이, 우리로 하여금 모든 내적 자산이나 지나간 기쁨과 고통 전부가 우리 소유하에 있다고 믿게 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런 기쁨과 고통이 도주한다는 혹은 되돌아온다는 생각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어쨌든 우리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해도 그런 감정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에 있으며, 그중 가장 일상적인 것조차 다른 종류의 추억으로 억압되어 우리의 의식 안에서 그 감정과의 동일시를 배제한다. 그러나 기쁨과 고통이 보존된 감각의 틀을 다시 포착하게 되면, 그 기쁨이나 고통은 그것과 양립할 수 없는 다른 모든 것들을 차례로 쫓아 버리고 유일하게 그 감정을 체험했던 자아만을 우리 몸 안에 놓는 힘을 갖게 된다.
—p. 281~282
잠의 세계에서 우리 신체 기관의 장애 요소에 의해 지배를 받는 내적 지각은 심장이나 호흡의 리듬을 빨라지게 하는데, 같은 양의 공포와 슬픔과 회한도 정맥에 주사하면 그 효과가 백배나 세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지하 도시의 동맥인 지하 도로를 답사하기 위해 마음속에 있는 여섯 굽이의 레테 강을 건너듯 우리 자신의 피라는 검은 물결의 배를 타면, 근엄한 표정의 위대한 얼굴들이 연이어 나타나고 다가오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멀어진다.
—p. 286
추억이란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지만, 허무는 그들이 살아 있다는 모든 관념을 배제하기 때문에 모순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p. 301
햇살에 뒤이어 갑자기 빗줄기가 떨어졌다. 빗줄기는 온 수평선에 줄무늬를 그리면서 사과나무 행렬을 그 잿빛 망 속에 조였다. 하지만 사과나무는 쏟아지는 소나기 아래 차가워진 바람을 맞으면서도 활짝 핀 분홍빛 꽃의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쳐들고 있었다. 어느 봄날이었다.
—p. 322'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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