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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 [갈무리]일상/book 2021. 7. 15. 00:36
국민소득을 계산하려면, 먼저 GDP에서 이 생산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본의 소모분을 빼야 한다. 다시 말해 해당 연도에 소모되는 건물, 사회기반시설, 기계, 운송수단, 컴퓨터 및 기타 품목을 빼야 한다. 이 소모분은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GDP의 약 1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소득과는 관련이 없다. 노동자와 주주에게 각각 임금이나 배당금이 지불되기 전에 그리고 순수하게 새로운 투자가 이뤄지기 전에 소모된 자본은 대체되거나 보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안 될 경우 부는 사라지고, 부의 소유자들은 마이너스 소득을 올리게 된다. GDP에서 자본 소모를 뺀 것이 ‘국내순생산Net Domestic Product’이다. 나는 이것을 좀더 간단히 ‘국내산출’ 또는 ‘국내생산’이라고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GDP의 90 퍼센트를 차지한다.
—p. 58
국민소득=국내생산+해외순소득
전 세계 소득=전 세계 생산
국민소득=자본소득+노동소득
—p. 60~61
……몇몇 정의에 따르면 ‘자본’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축적해온 여러 형태의 부(건물, 기계, 사회기반시설 등)를 지칭하는 용도로 쓰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때 인간이 축적해야 할 필요 없이 그저 소유하고 있는 토지와 천연자원은 제외된다. 따라서 토지는 부의 구성 요소가 되기는 해도 자본이 되지는 못한다. 다만 문제는 건물의 가치와 그 건물이 지어져 있는 토지의 가치를 구분하기가 항상 쉽지만은 않다는 데 있다. 더욱이 하수와 배수시설, 토양 개량처럼 인간의 개입에 의해 개선된 부분을 제외하고 처녀지의 가치를 평가하기는 훨씬 더 어렵다. 석유, 가스, 희토류 등 천연자원의 경우도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천연자원의 순수 가치와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고 개발을 준비하기 위해 투자한 결과 생겨난 부가가치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나는 따라서 이런 모든 형태의 부를 자본에 포함시켰다. 물론 이런 선택을 했다고 해서 부의 기원, 특히 축적과 전용 사이의 경계선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p. 63
자본/소득 비율 β는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을 지칭하는 α, 즉 자본소득 분배율과 간단한 방식으로 관련되어 있다.
α=r×β
여기서 r은 자본수익률rate of return on capital을 말한다.
……자본수익률은 법적 형태(이윤, 임대료, 배당금, 이자, 로열티, 자본이득 등)와 상관없이 해당 연도에 자본이 거둬들인 수익을 측정하며, 투자된 자본가치에 대한 백분율로 나타낸다. 따라서 자본수익률은 ‘이윤율’과 ‘이자율’을 통합한 개념이지만, 전자보다 더 포괄적이며 후자에 비해서는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p.69
……인구가 정체되거나 감소하면 이전 세대에 축적된 자본의 영향력이 늘어난다. 경제가 정체될 때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저성장 체제에서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크게 웃돌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서장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상황은 장기적으로는 부의 분배를 심각한 불평등올 몰고 가는 중요한 요인이다. 대체로 상속된 부에 따라 결정되는 계층 구조를 지닌, 자본이 지배하는 과거와 같은 사회는 낮은 성장 체제에서만 생겨나고 존속될 수 있다. ......세습된 부의 시대가 귀환할 것이라는 점을 살펴야 한다. 이는 장기적인 현상으로 유럽에서는 이미 그 영향이 감지되고 있으며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인구와 경제성장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p. 106~107
상품과 서비스는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 것이 표준화된 방법이다. 공산품의 경우 생산성 증가가 전체적인 경제성장보다 빨랐다. 그러므로 이 부문의 가격은 모든 가격의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떨어졌다. 식품류의 생산성은 장기간에 걸쳐 꾸준하게 상당한 폭으로 증가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소수의 사람이 크게 증가한 인구를 먹일 수 있게 되고 많은 일손이 여유시간을 갖게 되어 다른 일에 종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비록 농업 분야의 생산성 증가는 산업 분야에 비해 더디게 진행되어서, 농산품 가격 또한 모든 제품의 평균 가격과 거의 같은 속도로 움직였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 향상은 일반적을 낮아서 서비스 부문의 가격은 모든 가격의 평균보다 빠르게 상승했다.
—p. 111
……성장은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을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재산은 새로운 경제활동 영역에서 매우 빠르게 축적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성장은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부의 불평등을 퇴색시킴으로써 상속된 부가 결정적인 요인이 될 가능성을 줄여준다. 확실히 연간 1퍼센트의 성장률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연간 3~4퍼센트의 성장률이 이끌어내는 변화에 비해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사람들이 환멸을 느낄 위험성이 상당히 큰데, 이는 특히 계몽주의 시대 이후 나타난 더욱 공정한 사회질서에 대한 희망을 감안할 때 그렇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와 능력주의를 바라는 희망은 경제성장으로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특별한 제도를 고안해내야 하고 시장의 힘이나 기술 진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p. 121
통화가치가 안정된 세계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영원히 무너졌다.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강도 높은 전쟁의 비용을 대느라 그리고 군인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갈수록 더 비싸고 복잡해지는 무기의 비용을 조달하느라 정부는 빚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1914년 8월에 이미 주요 참전국들은 자국 통화의 금태환을 끝냈다. 전쟁 후 각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엄청난 공공부채를 처리하기 위해 지폐를 찍어내는 인쇄기에 의존하게 되었다. 1920년대에 금본위제를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1930년대에 경제위기로 무산되었다. 영국은 1931년, 미국은 1933년, 프랑스는 1936년에 금본위제를 포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금본위제 역시 조금도 더 강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체제는 1946년에 시작되어 금태환이 중지된 1971년에 끝났다.
—p. 133~134
여기서는 20세기의 안정적인 통화가치의 상실이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문학 분야에서도 과거 세기와 뚜렷한 단절을 보여준다는 사실만 강조하고자 한다. 돈, 적어도 특정 금액으로 표시된 돈 이야기가 1914~1945년의 충격 이후 문학 속에서 사실상 사라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부와 소득을 특정 금액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경향은 1914년까지 거의 모든 나라의 문학작품에 등장했다가 1914~1945년에 점차 사라졌고 이네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는 발자크와 오스틴의 작품에서 보여준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확실히 두 사회의 구조는 매우 다르지만 화폐라는 기준으로 인식과 기대 및 계층 구조를 설정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반면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든지 오래 지속되었던 1970년대의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집필된 오르한 파묵의 소설에서는 특정 금액에 대한 어떤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눈snow』이라는 소설에서 파묵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소설가인 주인공의 입을 빌려 돈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이전 해의 물가와 소득에 대해 논한다는 것은 그저 피곤한 일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19세기 이후 세상은 분명 엄청나게 변했다.
—p. 133
자본은 결코 조용한 법이 없다. 자본은 적어도 형성기에는 언제나 위험추구적이고 기업가적이다. 그러나 충분히 축적되면 자본은 늘 지대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자본의 사명이자 논리적 귀결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오늘날의 사회적 불평등과 발자크 및 오스틴 시대의 사회적 불평등이 아주 다르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될까? 이는 단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할까? 아니면 우리는, 현대의 자본이 더 ‘역동적’이며 ‘지대 추구’의 속성은 약해졌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설명할 만한 객관적인 요인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p. 141~142
……공공부문 자산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비금융자산(기본적으로 정부의 사무실로 쓰이거나 주로 의료와 교육 분야의 공공서비스에 이용되는 공공건물로 학교, 대학, 병원 등)과 금융자산이 그것이다. 정부는 지배적인 지분 또는 소수 지분을 갖고 기업을 소유할 수 있다. 이들 기업은 국경 안에 있을 수도 있고 그 바깥에 있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예컨대 국가가 취득한 대규모 해외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기 위한 이른바 국부펀드들이 부상했다.
실제로 금융자산과 비금융자산의 경계는 유동적일 수 있다. 예를 들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텔레콤과 프랑스 우체국을 주식회사로 전환했을 때 이 두 회사가 쓰던 정부 소유 건물들이 예전에는 비금융자산으로 분류되었지만 이후 금융자산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p. 151
인플레이션을 통한 재분배 매커니즘은 매우 강력했고,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영국과 프랑스 양국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 인플레이션 매커니즘은 목표를 선택하는 데 그다지 정밀하지 않다. 어느 정도 재산을 보유한 사람들 가운데 국채를 가진 이들이 반드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아니다.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둘째, 인플레이션 매커니즘은 무기한 작동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일단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 채권자들은 좀더 높은 명목이자율을 요구하고, 따라서 물가 상승이 기대만큼의 효과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높은 인플레이션은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고, 일단 그런 과정이 진행되면 그 결과를 통제하기가 어렵다. 어떤 사회집단은 소득이 크게 늘어난 반면 다른 집단은 그렇지 않았다. 낮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생각에 대해 합의가 이뤄진 것은 인플레이션과 실업 증가, 상대적인 경기침체(‘스태그플레이션’)가 겹쳐져 발생한 1970년대 후반에 가서였다.
—p. 162~163
다음 공식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자본/소득 비율 β와 저축률 s, 성장률 g의 관계는 단순하고 명백하다.
β=s/g
—p. 201
……제1장에서 자본주의의 제1기본법칙이라고 부른 α=r×β 법칙과 β=s/g 법칙간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α=r×β 법칙에 따르면, 국민소득에서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 α는 평균 자본수익률 r과 자본/소득 비율 β를 곱한 값과 같다. 사실 α=r×β 법칙은 구조상 모든 장소와 모든 시기에 유효한, 순수한 회계 항등식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α=r×β는 법칙이라기보다 국민소득에서 자본이 차지하는 몫의 정의로 볼 수 있다. 반면 β=s/g 법칙은 동태적인 과정의 결과다. 왜냐하면 이 법칙은 저축률이 s, 성장률이 g라고 할 때 경제가 도달하려는 경향이 있는 균형 상태를 나타내지만, 실제로 이러한 균형 상태는 결코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β=s/g 법칙은 인간이 축적할 수 있는 형태의 자본에 초점을 맞출 때에만 유효하다. 국민총자본의 상당 부분이 순수한 천연자원, 즉 그 가치가 인간이 개발하거나 과거에 투자한 것과 관련이 없는 천연자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β는 저축의 기여 없이도 매우 높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β=s/g 법칙은 자산 가격이 평균적으로 소비자물가와 같은 수준으로 변화하는 경우에만 유효하다. 부동산이나 주식의 가격이 다른 가격들보다 빨리 오르면 국민총자본의 시장가치와 연간 국민소득의 비율 β는 추가적인 새로운 저축 없이도 다시 매우 높게 유지될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상대적 자산 가격이 종종 물량효과보다 상당히 더 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그러한 가격 변동이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균형을 이루게 된다고 가정하면 해당 국가가 국민소득의 일정 부분 s를 저축하기로 결정한 이유에 상관없이 β=s/g 법칙은 반드시 성립한다.
—p. 204~205
……민간저축은 두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바로 개인이 직접 하는 저축(이는 가계가처분소득 중 즉시 소비되지 않는 부분이다)과 기업들이 그 기업을 소유한 개인들을 대신하여 하는 저축이 그것이다. 후자는 개별 기업들이 직접적으로 하는 저축과 금융투자를 통한 간접저축으로 이루어진다. 이 두 번째 요소는 기업들이 재투자한 이윤(‘유보이익’이라고도 불린다)으로 이루어지며 어떤 국가에서는 전체 민간저축의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p. 213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을 모두 ‘순수하고 완전한’ 경쟁 시장이라고 가정하는 가장 단순한 경제모형을 따를 경우 자본수익률은 자본의 ‘한계생산성’, 즉 자본을 한 단위 추가적으로 투입할 때 나오는 추가적인 생산과 정확히 일치해야 한다. 하지만 좀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모형 속에서 자본수익률은 다양한 관련 집단의 상대적인 협상력에 달려 있다. 상황에 따라 자본수익률은 자본의 한계생산성보다 더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다.
어쨌든 자본수익률은 두 가지 힘에 의해 결정된다. 첫째는 기술(자본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는가?)이고 둘째는 자본총량의 규모다.(너무 많은 자본은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린다.)
기술은 당연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만약 자본이 생산요소로서 전혀 유용하지 않다면 정의상 자본의 한계생산성은 제로가 된다. 추상적으로는 자본이 생산과정에서 전혀 유용하지 않은 사회를 쉽게 상상해볼 수 있다. 즉 어떤 투자도 농경지의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거나, 도구나 기계가 생산량을 증대시키지 못하고, 지붕 아래에서 자는 것이 야외에서 자는 것보다 특별히 더 안락한 삶이 되지 않는 상황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서조차 자본은 여전히 순수한 가치저장 수단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장차 기근의 가능성에 대비해 혹은 순전히 미적 추구를 위해 음식물을 수북히 쌓아두려고 할 것이다.
……모든 문명사회에서 자본은 두 가지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자본은 주택을 제공한다. 좀더 엄밀히 말해서 자본은 ‘주거 서비스’를 창출한다. 이것의 가치는 동등한 주택의 임대가치에 의해 측정되며, 밖에서 자는 것에 비해 집안에서 잠자고 생활함으로써 발생하는 안락함의 증가분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둘째, 자본은 다른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산요소(생산과정에 필요한 토지, 도구, 건물, 사무실, 기계, 사회기반시설, 특허 등)의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초기 자본축적의 형태는 도구(부싯돌 등)와 토지의 개선(울타리, 관개시설, 배수시설 등) 그리고 초보적 형태의 주거시설(동굴, 천막, 오두막 등)과 관련이 있었다. 이후 주거 형태가 꾸준히 발달해온 것처럼 산업과 사업자본의 형태도 점점 더 복잡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p. 256~257
……경제학자들은 흔히 ‘생산함수’의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해당 사회에 존재하는 기술적 가능성들을 반영한 수학 공식이다. 생산함수의 특징 중 하나는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체탄력성을 정의하는 것이다. 즉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을 자본으로, 자본을 노동으로 대체하는 것이 얼마나 수월한지, 그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장기적인 변화 추이를 연구하기 위해 코브-더글러스 모델의 불완전함을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자. 아주 장기적으로 볼 때, 자본과 노동 간의 대체탄력성은 1보다 컸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자본/소득 비율 β의 증가는 국민소득 가운데 자본소득이 차지하는 몫인 α를 약간 증가시켰던 것으로 보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직관적으로도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크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자본에 다양한 용도가 있다는 현실의 상황과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관찰된 역사적 변화들은—적어도 어느 선까지는—자본으로 할 수 있는 새롭고 유용한 것들을 찾아내는 일이 언제든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과 시설이 완비된 주택(지붕 위에 설치된 태양전지판, 디지털 조명장치 등), 훨씬 더 정교해진 로봇과 다른 전자장비들 그리고 점차 더 큰 규모의 자본투자를 요하는 의학기술을 떠올려보라. 대체탄력성이 1보다 큰 다각화된 선진경제에서 자본의 많은 용도를 이해하기 위해 자본이 그 자체로 재생산되는 완전히 자동화된 경제(대체탄력성이 무한대가 되는)를 상상할 필요는 없다.
—p. 261, 266~267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을 향한 진보가 반드시 민주적이고 능력주의적인 합리성을 향한 진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주된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과 마찬가지로 기술에는 제한이 없고 도덕성도 없다. 물론 기술의 발달은 또한 인간의 능력과 지식을 점점 더 많이 필요로 했다. 동시에 건물, 집, 사무실, 모든 형태의 설비, 특허권 등도 더 많이 필요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결국 이와 같은 모든 비인적자본(부동산, 사업자본, 산업자본, 금융자본)의 총가지초 대부분 노동을 통한 총소득만큼 빠르게 증가했다. 만약 진정으로 공익에 기초한 더욱 정의롭고 합리적인 사회질서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변덕스러운 기술에 의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p. 282~283
노동으로 얻은 소득이 항상 공평하게 분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상속받은 재산에서 얻는 소득에 비해 노동소득이 얼마나 중요한가의 문제로 사회정의에 관한 논의를 축소시키는 것도 불공평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적 근대성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른 불평등이 다른 불평등보다는 정당하다는 믿음을 토대로 하고 있다. 혹은, 어쨌든 우리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희망한다.
실제로 소득불평등을 측정하려 할 때 관찰되는 첫 번째 규칙적인 패턴은 자본과 관련된 불평등이 항상 노동과 관련된 불평등보다 크다는 것이다. 자본 소유와 자본소득의 분배는 항상 노동소득의 분배보다 더 집중되어 있다.
—p. 291~292, 294
……하나는 ‘초세습사회’(혹은 ‘자본소득자의 사회’), 즉 물려받은 부가 매우 중요하고 부의 집중이 극심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상위 10퍼센트가 일반적으로 전체 부의 90퍼센트를, 상위 1퍼센트가 전체 부의 50퍼센트를 소유한다. 이때 총소득의 계층 구조를 지배하는 최상위층은 자본소득, 특히 상속받은 자본에서 얻는 소득이 매우 높은 사람들이다. 전체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앙시앵레짐 하의 프랑스와 벨 에포크 시대의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높은 수준의 불평등이 생겨나는 두 번째 방식은 비교적 새로운 것으로, 주로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에서 나타났다. 이 경우 매우 높은 수준의 총소득 불평등은 ‘초능력주의 사회’의 결과일 수 있다. 이런 사회를 ‘슈퍼스타의 사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사회는 매우 불평등하긴 하지만 물려받은 부보다는 노동소득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 소득계층의 정상을 지배한다.
—p. 318
상당한 정도로 우리는 자본소득자의 사회에서 경영자의 사회로, 즉 상위 1퍼센트가 대부분 자본소득자들이었던 사회에서 상위 1퍼센트에 해당되는 소득계층의 최상위층이 주로 높은 보수의 노동소득으로 생활하는 개인들로 구성되는 사회로 바뀌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초자본소득자 사회에서 일에 의한 성공과 자본에 의한 성공이 좀더 균형잡힌 덜 극단적인 형태의 자본소득자 사회로 이행했다고도 할 수 있ㄷ. 그러나 이러한 중요한 격변이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임금계층 구조의 큰 변동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전적으로 높은 자본소득의 감소로 인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의 집중을 제한하고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존재했던 초자본소득자 사회의 부활을 지금까지 막아온 요인의 하나로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누진적인 소득세와 상속세의 도입이다.
—p. 334~335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에는 고등학교 교사, 심지어 경력이 많은 초등학교 교사도 ‘9퍼센트’에 속했던 반면 오늘날에는 이 집단에 속하려면 대학교수나 연구원은 되어야 하고 정부의 고위공무원이면 더 나을 것이다. 과거에는 현장감독이나 숙련기술자도 이 집단에 들어갈 수준에 거의 근접했다. 하지만 오늘날 이 집단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중간급 경영자는 되어야 하고 명문대나 경영대학원 학위를 소지한 고위경영자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급여 체계의 아래쪽으로 가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보수를 가장 적게 받는 노동자들이 농장 일꾼과 하인들이었다. 시간이 좀더 흐른 뒤에는 기술력이 낮은 산업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그중 많은 사람이 직물과 식품가공 산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이었다. 이 집단은 오늘날에도 존재하지만, 현재 가장 적은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은 식당의 웨이터나 웨이트리스 혹은 상점 점원 등 서비스부문에 고용된 사람들이다. (역시 이중 많은 사람이 여성이다.) 따라서 지난 세기에 노동시장은 완전히 변화했지만 시장에서 임금불평등의 구조는 오랫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즉 최상위층 바로 아래의 ‘9퍼센트’와 하위 50퍼센트가 노동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상당히 오랜 기간 거의 변함이 없었다.
—p. 336
……저임금과 중간 수준의 임금이 더 높은 임금보다 물가 상승에 더 잘 연동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노동자들이 특정한 사회정의와 공정한 규범이라는 개념을 공유하기 때문에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구매력이 지나치게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는 반면 부유한 노동자들에게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요구를 유보하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분명 공공부문의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데 한 몫했고 민간부문에서도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젊고 상대적으로 숙련도가 낮은 노동자들이 군대에 많이 동원되었다는 사실 역시 노동시장에서 저임금과 중간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상대적 지위를 향상시켰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불평등은 ‘경기순행적procyclinical’으로 전개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국민소득에서 기업 이윤이 차지하는 몫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고 임금 체계의 최상위층이 받는 보수가 흔히 하위층과 중간층의 임금보다 더 많이 증가한다. 거꾸로 말하면 경기가 후퇴하거나 불황일 때는 다양한 비경제적 요인, 특히 정치적인 요인으로 인해 이러한 움직임들은 오로지 경기 변동에 의해서만 좌우되지 않는다.
—p. 345, 347
미국에서 불평등의 증가가 미국의 금융 불안정에 기여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유는 간단하다. 불평등 증가의 한 결과로 미국의 하류층과 중산층의 구매력이 거의 정체되었고 그리하여 평범한 가구가 밎을 질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특히 규제에서 자유로워진, 그리고 부유층이 금융시스템에 투입한 거대한 저축으로부터 높은 수익률을 얻고자 갈망했던 비양심적인 은행과 금융기관들이 점점 더 관대한 조건으로 신용을 제공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사회집단 간에 내부적으로 이전된 규모가 2000년대에 미국이 겪은 놀라운 무역적자의 거의 4배에 이른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거대한 무역적자와 무역 상대국인 중국, 일본, 독일의 무역흑자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의 몇 년 동안 미국과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든 ‘글로벌 불균형’을 일으킨 핵심 요인들 중 하나로 설명되곤 했기 때문에 이러한 비교는 흥미를 자아낸다. 이것도 경제위기에 대한 가능한 설명이긴 하지만, 미국의 내부적 불균형이 글로벌 불균형보다 4배 더 크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위기와 관련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할 곳은 중국이나 다른 국가들이 아니라 미국 내부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p. 357~359
……임금을 인상하고 궁극적으로 임금불평등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과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최저임금과 임금제도가 임금을 5배나 10배로 높이진 못한다. 그러한 수준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과 기술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러나 교육과 기술의 상대적인 발전이 정해주는 기간 내에서는 노동시장의 규칙들이 임금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제로 그러한 기간은 꽤 길 수 있는데, 이는 개인별 한계생산성을 확실히 측정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기업특수적 투자와 불완전경쟁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p. 375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의 최상위 소득의 폭발적인 증가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고소득자 중 대다수는 대기업의 고위경영자다. 이들이 받는 높은 급여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개인적인 ‘생산성’에서 찾는 것은 상당히 순진한 생각이다. 조립라인의 노동자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을 하는 직원처럼 반복 가능한 직무에 대해서는 노동자나 직원 한 명을 더 투입했을 때 실현된 ‘한계생산량’을 대략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개인이 맡은 직무의 기능이 그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이거나 그와 비슷할 경우 오차는 커질 것이다. 사실 불완전한 정보의 가설을 표준 경제모델에 도입하면 ‘개인의 한계생산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의하기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이것은 순전히 관념적으로 구성한 것에 가까운 개념이 되며,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상위층을 교묘하게 옹호할 수 있다.
—p. 396~397
……자본수익률이 성장률보다 체계적으로 더 높아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까?
……오랜 기간 r이 g보다 실제로 더 높았다는 것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인류 역사의 오랜 기간에서 경제성장률은 사실상 제로였다.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을 결합시켜보면, 고대에서 17세기까지 연간 성장률은 오랫동안 0.1~0.2퍼센트를 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불확실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자본수익률이 항상 이보다는 상당히 더 높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장기적으로 관찰되는 대푯값은 1년에 4~5퍼센트다.
—p. 423
요약하자면 부득식 r>g는 특정한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만, 다른 시기와 정치 환경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불확정적인 역사적 명제다. 엄격히 논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개입이 없어도 성장률이 자본수익률보다 높은 사회를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모든 것은 한편으로는 기술(자본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다른 한편으로는 저축과 번영을 추구하는 태도(사람들이 왜 자본을 소유하려고 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평균 수익률은 일반적으로 (세전) 4~5퍼센트에 가깝다. ……이렇게 자본수익률이 약 4~5퍼센트로 비교적 고정되는 현상, 그리고 2~3퍼센트 아래로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경제모형은 현재를 선호하는 ‘시간선호time preference’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달리 말하면, 경제 주체들은 얼마나 인내심이 있는지와 얼마나 미래를 고려하는지를 측정하는 시간선효율(Θ)에 따라 특징지어진다.
……정리하면, 저축 행위와 미래를 향한 태도를 하나의 매개변수로 요약할 수는 없다. 이런 선택은 시간성호율뿐만 아니라 예비 저축, 생애주기 효과, 부 자체를 중시하는 정도와 그 외 많은 요인이 포함된 더욱더 복잡한 모형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 선택은 개인의 심리적 문화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 환경(공적 연금제도의 존재 등), 가족의 전략과 압력, 사회집단들이 가하는 제약에도 영향을 받는다.
—p. 428, 431
……국부의 10분의 1이나 20분의 1이 아닌 4분의 1이나 3분의 1을 소유한 ‘세습중산층’의 등장은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나타낸다.
1914년에서 1945년 사이, 더 전반적으로 말하자면 20세기에 과연 어떤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 변화들은 오늘날 민간의 부가 전반적으로 과거만큼 거의 성공적으로 번창하고 있는데도 부의 집중이 예전의 최고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가장 자연스럽고 중요한 설명은 20세기의 정부들이 자본과 자본소득에 상당한 세율로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1900~1910년에 관찰된 매우 높은 부의 집중은 장기가 큰 전쟁이나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금이 없었거나 거의 없었던 결과다.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는 자본소득이나 기업 이윤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다. 드물게 세금이 부과된 경우라도 세율이 아주 낮았다. 따라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해 물려주고, 그런 재산에서 얻은 소득으로 생활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20세기에는 지대, 이자, 이윤, 임대료에 다양한 세금이 부과되었고, 그리하여 상황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p. 446
……1950~1960년에는 유산과 증여가 국민 소득의 몇 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상속은 거의 사라졌고 비록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덜 중요했지만 자본은 이제 개인이 일생의 수고로움과 저축을 통해 저축했던 부에 기초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했다. 비록 인식이 현실보다 약간 과장되었지만 몇몇 세대가 이런 상황에서 자랐다. 특히 지금도 생존해 있는 경우가 많은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이런 현실을 새롭게 부상한 표준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반대로 젊은 사람들,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상속이 그들의 삶과 친척 및 친구들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이미 어느 정도 경험했다. 예를 들어 이 집단에게는 자녀가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느냐 아니냐가 몇 살에 누가 재산을 소유할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 재산이 얼마나 많을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p. 455~456
일반적으로 by으로 표시되는,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과 증여액의 비율은 세 가지 힘을 곱한 값과 같다.
by=μ×m×β
여기서 β는 자본/소득 비율, m은 사망률, μ는 사망자의 평균 자산과 살아 있는 개인들의 평균 자산의 비율이다.
나는 자본/소득 비율 β가 실제로 U자 곡선으로 나타났음을 살펴보았다. 이 첫 번째 힘과 관련된 낙관적인 믿음은 매우 분명하고 언뜻 보기에 충분히 그럴듯하다. 단순히 부의 중요성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상속자산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중요성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낙관적인 믿음이 틀렸다고 할 논리적인 이유는 없으며, 이러한 믿음은 비록 언제나 명확하게 공식화되지는 않는다 해도 모든 현대적인 인적자본 이론에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상황은 이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혹은 적어도 사람들이 이따금 상상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토지자본이 금융자본, 산업자본, 부동산이 되었지만 그 전반적인 중요성은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이는 자본/소득 비율이 벨 에포크 시대와 그 이전 시기에 달성했던 수준을 머지 않아 회복할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p. 458, 460~461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표현의 (이러한) 커다란 변화는 어느 정도는 당연하지만 많은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분명 오늘날에는 18세기보다 교육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가 더욱 능력 본위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특히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실제로 증가했다고 할 수 없으며,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현상이 대단한 규모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분명 모든 사람에게 갖가지 기술을 습득할 기회가 동일하게 주어진다고도 말할 수 없다. 사실 교육 불평등은 상당 부분 그저 상향 이동했을 뿐이며 교육으로 세대 간의 이동성이 높아졌다는 증거도 없다. 그렇긴 하지만 계승자가 얼마간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인적자본의 이전은 항상 금융자본이나 부동산의 이전보다 더 복잡하다. 이런 점 때문에 상속자산이 사라져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왔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고 부분적으로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오해가 있다. 첫째, 상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상속자본의 분배가 변화했을 뿐으로, 이것은 전적으로 다른 문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소수로 이루어진 아주 부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에서 훨씬 더 많은 수의 덜 부유한 자본소득자의 사회로 옮겨왔다. 말하자면 소자본소득자pefits rentiers들의 사회인 샘이다.
……성장률이 둔화되고, 가령 국가 간 조세경쟁이 치열해지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으로서 자본수익률이 높아지면 부가 더욱 집중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중요한 정치적 격변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 사회는 능력 중심의 세계관, 혹은 적어도 능력주의에 대한 희망에 의지하고 있다. 혈연이나 임대료보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불평등이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믿음과 희망은 현대사회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가 있다고 공언하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현실의 생활 상태는 매우 불평등한데,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임의적인 우연성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적어도 담론의 영역에서 그리고 현실에서도 가능한 한 불평등은 모두에게 공정하고 유익해야 한다. 1893년에 에밀 뒤르켐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가 상속받은 부의 존재를 오래 용인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죽음과 동시에 재산 소유가 끝나도록 만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p. 501~503
……자본이 자본소득을 낳는다는, 즉 자본소유자의 노동 없는 소득을 낳는다는 개념에는 분명 믿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 개념은 상식을 모욕하고 실제로 많은 문명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무언가를 내포한다. 문명은 항상 이 문제에 자비롭지는 않았으며 고리대금 금지부터 소련식 공산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해 왔다. 그럼에도 지대는 자본이 사적으로 소유되는 어떤 시장경제에나 실제로 존재한다. 토지자본이 산업자본 및 금융자본, 부동산이 되었다는 사실로 이러한 더욱 뿌리 깊은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 개발 논리가 노동과 자본 간의 구분을 약화시켰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정반대다. 자본시장과 금융중개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소유자들과 경영자들이 더욱더 분리되고 그리하여 순수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간의 구분이 분명해지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은 때로는 민주주의적 합리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은 계몽주의에서 유래했고, 사람들은 흔히 민주주의적 합리성이 경제적, 기술적 합리성에서 마치 마술처럼 저절로 파생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적 정의를 이루려면 시장의 제도, 단지 의회나 그 외의 형식적인 민주주의적 제도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스스로의 특정한 제도들이 필요하다.
—p. 505~506
또 다른 중요한 점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새롭고 더 정교한 법적 장치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신탁기금, 재단 등은 흔히 세금을 회피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 세대가 관련 자산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잘못을 저지르기 쉬운 개인과 영속적인 재단 간의 경계는 때때로 생각처럼 뚜렷하지 않다. 미래 세대의 권리에 대한 제한은 이론적으로는 2세기도 훨씬 더 전에 상속권자 지정상속제가 폐지되면서 급속히 감소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규정은 이권이 개입되면 종종 왜곡될 수도 있다. 특히 순전히 사적인 가족 재단과 진정한 자선 재단을 구별하기란 어렵다. 사실 여기에 관련된 가족들은 재단을 사적인 이익과 자선적인 목적 양쪽 모두에 이용하며, 자선 재단인 경우에도 그들의 자산에 대한 통제권은 주로 유지하고자 한다.
—p. 538
2008년의 금융위기가 대공황만큼 심각한 붕괴를 초래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부유한 국가들의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허용하지 않았고 1930년대에 전 세계를 대혼란의 나락에 빠뜨렸던 은행의 줄도산을 막기 위해 필수적인 유동성 공급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에 대응했던 실용주의적 개입 정책은 또한 중앙은행이 가만히 앉아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인플레이션만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전 세계에 상기시켜주었다. 총체적인 금융공황 상태에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긴급 자금을 공급하는 최종대부자로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사실상 이 두 기관은 비상시에 경제 및 사회체제의 총체적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공공기관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채택된 실용주의적 정책으로 최악의 상황을 피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정책은 사실 극심한 금융 투명성의 부족과 불평등의 심화를 포함해,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영속성 있는 대응책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는 21세기의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 최초의 위기다. 그리고 마지막 위기도 아닐 것이다.
—p. 562
……때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로 반대로,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인구고령화, 의료기술의 발달,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교육 수요에 직면한 상황에서 단순히 국민소득 가운데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안정화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다. 왜냐하면 정부 예산을 감축하겠다는 약속은 확실히 집권 여당보다는 야당에게 항상 더 쉬운 공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세금이 국민소득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재건 이후에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사회적 지출을 필요한 만큼 최대한 늘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합당했다. 하지만 오늘날의 선택은 확실히 더 복잡해졌다.
—p. 567
……현대적 재분배는 부자로부터 빈자에게로 소득이 이전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렇게 노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현대적 재분배는 그보다는 의료, 교육, 연금을 비롯해 대체로 모두에게 동등한 혜택이 돌아가는 공공서비스와 대체소득을 위한 재원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체소득의 경우, 형평성 원칙은 종종 평생소득에 대략 비례하는 대체소득을 지급하는 형태를 띤다. 교육 및 의료와 관련해서는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게 실제로 동등한 혜택이 주어진다. 현대적 재분배는 기본권의 논리 그리고 기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일정한 상품에 대한 평등한 접근이라는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관한 선언 제1조 또한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고 살아갈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뒤에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는 선언이 따른다. 이 두 번째 문장이 중요한 부가문이다. 왜냐하면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이 절대적인 평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불평등이 존재함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이 두 번째 문장이 거증 책임을 뒤바꾸기 때문…… 평등이 정상적인 것이며 불평등은 오직 ‘공익’에 바탕을 둘 때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공익’이라는 용어를 정의하는 일이 남는다. ……한 가지 합리적인 해석은 사회적 불평등이 오직 모두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특히 가장 불리한 입장에 처한 사회적 집단의 이익에 공헌할 때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p. 570~572
20세기에 네 번째 범주의 세금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정부가 후원하는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기여금이었다. 이는 특별한 유형의 소득세인데, 보통 노동소득(임금과 비임금노동자의 보수)에만 과세된다. 그 수입은 사회보장기금이 되고, 이는 퇴직노동자의 연금이 실업자의 실업수당 등의 대체소득의 재원을 조달한다. 이런 방식의 세금 징수는 세금이 사용되는 목적을 납세자가 알 수 있도록 해준다. 또한 프랑스와 같은 일부 국가는 이러한 사회보장기여금을 이용해 의료보험이나 가족수당과 같은 사회적 지출의 비용을 지불하며, 따라서 총 사회보장기여금이 정부 총수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런 복잡한 제도는 세금 징수의 목적을 분명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모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에 반해 덴마크 같은 다른 국가들은 높은 소득세로 모든 사회적 지출의 비용을 충당하는데, 소득세 세수는 연금, 실업보험 및 의료보험, 기타 많은 목적을 위해 배분된다.
—p. 591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열정적으로 평등을 추구했던 영국과 미국은 최근 10년간 열심히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 결과 과거 30년 동안 프랑스와 독일보다 훨씬 더 높았던 영국과 미국의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은 프랑스와 독일 수준보다 훨씬 낮게 떨어졌다. ……한마디로 부유층에 대한 영미권 국가들의 대우는 1930년대 이후 엄청난 변화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유럽 대륙(특히 독일과 프랑스)과 일본의 경우 고소득층을 대하는 태도에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이런 차이점은 부분적으로 1970년대에 미국과 영국이 다른 나라들에게 추월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제1장에서 이미 밝혔다. 다른 나라들이 그들을 따라잡고 있다는 생각이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를 부상하게 만든 한 원인이었다.
—p. 608
모든 문명에서 자본소유자들이 노동을 하지 않고도 국민소득에서 상당한 몫을 얻는다는 사실과 자본수익률이 일반적으로 연 4~5퍼센트에 이른다는 사실은 다양한 정치적 대응과 함께 종종 격렬하고 분개에 찬 반응을 일으켜왔다. 정치적 대응 중 가장 일반적인 한 가지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기독교 및 이슬람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종교 전통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시간은 결코 멈추는 법이 없으므로 이자는 기본적으로 부를 한없이 증대시킬 수 있는데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런 이자에 대해 두 가지 견해를 갖고 잇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자’에 해당되는 그리스어(tocos)가 ‘어린아이’를 의미한다는 점을 주목하면서 지적한 것은 무한한 부가 초래하는 위험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이 더 많은 돈을 “낳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성장률이 낮거나 심지어 제로에 가까운 세계에서 인구 및 생산량이 대대로 거의 동일할 때에 이 ‘무제한성’은 특히 더 위험해 보였다.
—p. 636
정부가 국가재정을 마련하는 주된 방식은 세금과 부채 두 가지다. 일반적으로 공정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부채보다 과세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 부채는 상환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채권을 통한 자금 조달은 정부에 빌려줄 자산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된다는 문제가 있다. 공익적 관점에서는 부자들에게 자금을 빌리는 것보다 부자들에게 과세를 하는 것이 보통 더 바람직하다.
—p. 649
……인플레이션은 누진세에 비해 매우 불완전한 대체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바람직하지 못한 몇몇 2차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첫 번째 문제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한번 시작된 인플레이션을 1년에 5퍼센트에서 멈출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의 악순환 속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임금과 지불해야 할 가격들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변동하기를 원하며, 이러한 악순환은 쉽게 멈출 수 없다. ……인플레이션의 두 번째 문제는 일단 인플레이션이 고착되고 예측 가능해지면 대부분의 수많은 바람직한 효과는 사라진다는 데 있다. 특히 정부에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들은 더 높은 이자율을 요구할 것이다.
분명 인플레이션을 지지하는 하나의 주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른 세금과 마찬가지로 자본세가 사람들이 유용하게 사용할 재원을 빼앗아버리는 것과 비교하면, 인플레이션은 주로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준다는 것이다. 즉 은행계좌에 아주 많은 돈을 예치하고 있거나 침대 밑에 돈을 쌓아두고 있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모은 돈을 이미 소비했거나 실질자산(부동산이나 사업자본)에 투자한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부채가 줄어듦으로써 부채에서 좀 더 빨리 벗어나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상적인 경우에 인플레이션은 어떤 면에서는 유휴자본에 세금을 물리고 역동적인 자본을 활성화시키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상대적으로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수단이다. 그것은 때로는 올바른 방향으로 부를 재분배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다.
—p. 657~658
물론 중앙은행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속하게, 그리고 이론상으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광범위하게 부를 재분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중앙은행은 몇 초 안에 원하는 만큼 수십억 달러를 만들어낸 뒤 도움이 필요한 기업이나 정부의 계좌에 그 현금을 모두 빌려줄 수도 있다. 또한 금융공황, 전쟁, 혹은 자연재해와 같은 긴급사태 때 무제한적인 규모의 자금을 즉각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중앙은행의 매우 귀중한 속성이다. 세무당국은 그렇게 신속하게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선 과세 기반을 확립하고 세율을 설정하며, 법안을 통과시키고, 세금을 징수하고, 조세 저항을 방지하는 등 많은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금 징수가 금융위기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다면 세계 모든 은행은 이미 파산했을 것이다. 신속한 정책 집행은 통화당국의 주요한 강점이다.
중앙은행의 약점은 분명히 통화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금융 포트폴리오의 관리가 어려울 뿐 아니라 누가, 얼마나, 어느 정도의 만기로 대출을 받을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규모는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후 도입된 새로운 형태의 대출과 금융시장 개입으로 중앙은행 대차대조표의 규모는 거의 두 배가 되었다.
……중앙은행은 국가의 모든 기업과 부동산을 매수하고,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에 자금을 대며, 대학에 투자하고 경제 전반을 통제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 분명 문제는 중앙은행이 그런 활동에 적합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에는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중앙은행은 신속하게 대규모로 부를 재분배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이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가 예상과 다르게 잘못 나타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표적의 설정이 아주 잘못될 수도 있다.
—p. 663~665
첫째, 공공적자에 관한 유럽의 논쟁에서 황금률에 관한 상당히 다른 개념이 등장했다.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에 따라 유로화가 만들어졌을 때 회원국의 재정적자는 GDP의 3퍼센트 미만, 공공부채 총액은 GDP의 60퍼센트 미만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약에 명기되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의 배후에 있는 정확한 경제적 논리가 완전하게 설명된 적은 없었다. ……재정에 관해 선험적인 제약을 두거나 더욱이 국가의 헌법 안에 부채나 재정적자의 한계를 명시해야 할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다. 물론 재정동맹의 설립에 관한 논의가 이제 막 시작되었으므로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특별한 규칙들을 제정하는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미래의 정치적 다수의 의지를 좌절시키기 위해, 건드릴 수 없는 부채 액수나 재정적자의 한계를 못박아두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공공부채가 늘어나는 것이 특별히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부 예산에 관한 제한을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다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심각한 위기 상황 아래에서, 경제위기 이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한 막대한 규모의 긴급 예산을 편성해야 할 필요가 대두될 수 있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이런 결정들을 일일이 헌법재판관에게 맡긴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한 걸음 후퇴하는 것이다.
—p. 682~683
불안정을 초래하는 주된 힘은, 민간자본의 수익률 r이 장기간에 걸쳐 소득과 생산의 성장률 g를 크게 웃돈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r>g라는 부등식은 과거에 축적된 부가 생산과 임금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등식은 근본적인 논리적 모순을 드러낸다. 기업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소득자가 되는 경향이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밖에 가진 게 없는 이들에 대해 갈수록 더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자본은 한번 형성되면 생산 증가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과거가 미래를 먹어치우는 것이다.
—p. 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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