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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사용법(La vie mode d'emploi)일상/book 2021. 12. 13. 02:26
세 번째 조르주 페렉의 소설이다. 『사물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이어서 『인생사용법』. 배송된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이 책이 꽤나 두껍다는 것을 알았다. 앞의 두 책은 단편소설이었기 때문에 『인생사용법』도 그 정도 길이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다. 책이 생각보다 커서 주문서를 다시 확인해보니 두께만큼 가격이 제법 나간다. 여러 책들을 함께 주문하다보니 가격이며 규격정보를 제대로 체크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읽고 싶었던 책이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은 부차적이기는 해도, 이 두께에 내용이 매우 난해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책의 말미에 작품 해설에서 언급되기는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는 매우 지엽적인 사물들이나 미시적인 대상들에 천착하고 있다. 가령 매 에피소드의 서두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파리 17구 시몽크뤼벨리에 거리에 위치한 단독주택에 들어찬 각 가구의 풍경이다. 식탁보, 바닥재질,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 있는 물건들, 각각의 상표와 색깔,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에 깃든 토막난 이야기들. 물론 인물들간의 관계와 사건이 다뤄지기는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조르주 페렉의 렌즈에서 주변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즉 서사(敍事)는 약하고 묘사(描寫)는 강하다. 그렇다보니 가독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 해야할지 독자에게는 매우 낯선 방식의 글쓰기인데 이전에 읽었던 레몽 루셀의 『아프리카의 인상』이 이와 비슷한 글쓰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인들에게 친근한 집단기억으로 남아 있을 만한 소재들이 묘사대상의 주를 이루기 때문에 외국인 독자가 공감하기는 더 어렵기도 하다.
시선을 뒤집어 사물을 인식하고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것은 조르주 페렉의 작품을 관통하는 철학이다. 조르주 페렉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쉽게 흘려보내고 망각하고 간과하고 무시하는 것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행마법이나 라틴제곱방진 등 치밀한 문학적 장치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조르주 페렉이 '퍼즐'이라는 국소적이면서도 종합적인 상(像)에 투영하여 사람사는 이야기를 써내려가 보려 했다는 것은 잘 알 것 같다. 각 인물의 특성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소품들,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삶을 살아가는 수십 명의 세입자들. 이 개별적인 이야기들은 얼기설기 엮여 하나의 완결된 구조물을 쌓아간다.
퍼즐은 서로 다른 모양을 지닌 조각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반대로 조각 그 자체는 전체적인 상(像) 없이 독립적으로는 의미를 지닐 수 없다. 그리고 퍼즐을 맞춰나가는 작업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동시에 개입되는 일이다. 노련한 눈썰미와 기억으로 다음 퍼즐을 찾아나가기도 하지만, 알맞은 조각이 얻어걸리기도 한다. 퍼즐맞추기에 빠져 지내던 바틀부스는 자신이 그린 수채화를 정성스레 퍼즐로 떠낸 뒤, 일단 어질러진 퍼즐이 완성되고 나면 표백하는 부질없는 작업을 반복한다. 완성된 퍼즐은 나타났다 사라지고, 찾고 있던 의미는 떠올랐다 흩어진다. 파리 17구 시몽크뤼벨리에 거리에 위치한 주택의 구성원은 세대를 거치며 변해가겠지만, 모래를 적신 뒤 어김없이 물러나는 해안가의 물결처럼 결국 이 또한 사소한 희로애락에 울고 웃는 인생 같은 것이 아니겠나 싶다. [fin]
인간의 깊은 본성에 대한 구체적인 하나의 시각을 얻기 위해 민족지학자라는 소명에 육체와 영혼을 바친 자가 맞게 되는 환멸이 아무리 괴로운 것이라 해도, 또 상대적인 진리를 밝혀내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희망할 수 없다고 해도, 제가 부딪쳐야 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전혀 이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미개 상태의 극한까지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제가, 저 이전에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마 저 이후에도 아무도 보지 못할 이 자애로운 토착민 앞에서 절정의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열렬히 추적한 끝에 그 원시부족을 만나게 되었고, 단지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그들의 일상과 그들의 고통, 그들의 제식을 함께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던 겁니다! 아, 하지만 불행히도 그들은 저를 원하지 않았고, 그들의 풍습과 신앙을 저에게 가르쳐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제가 그들 곁에 선물을 놔두도록 내버려두었을 뿐이고 제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일들을 하도록 내버려두었을 뿐입니다! 그들이 마을을 버린 것은 저 때문이었습니다. 오로지 저를 낙심시키기 위해, 제가 그렇게 달려드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사실과 그들이 점점 더 끔찍한 삶의 조건을 감수하며 매번 더 살기 힘든 영토를 택하는 것은 인간보다는 호랑이, 화산, 늪, 질식할 듯한 안개, 코끼리, 독거미와 대면하기를 더 원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저는 신체적인 고통에 대해 꽤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극심한 고통은,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느끼는 것임을…….
—p. 163~164
첫번째 원리는 정신의 영역에 속했다. 문제는 그 구상이 어떤 탐구나 기록, 혹은 올라가야 할 정점이나 다다라야 할 심층과 관계된 것이 아닐 거라는 말이다. 바틀부스가 하는 것은 구경거리가 될 만한 것도, 영웅적인 것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단지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하나의 계획이며, 당연히 어렵지만 그렇다고 실현하지 못할 것도 없는,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하게 통제되는 계획, 대신 거기에 몰두하는 이의 삶의 구석구석을 지배하게 될 계획일 것이다.
두번째 원리는 논리의 영역에 속했다. 말하자면, 그 구상은 절대 우연에 기대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추상적인 좌표처럼 기능하게 할 것이며, 각각의 정해진 날짜와 장소에서 가차없이 일어나는 동일한 성격의 사건들이 불가항력적으로 순환하며 그 좌표 속에 기록될 것이다.
끝으로, 세번째 원리는 미학의 영역에 속했다. 무용하지만, 바로 그 무상성 덕분에 엄정성이 보장되는 이 계획은 결국 완성되어감에 따라 스스로 파괴될 것이고, 그것의 완성은 윤회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일련의 사건들은 연결되는 동시에 사라질 것이다. 무(無)에서 출발한 바틀부스는 이렇게 완성된 사물들의 뚜렷한 변형을 통해 다시 무로 돌아올 것이다.
—p. 170~171
퍼즐의 기술은 일단 하나의 간단한 기술, 즉 형태심리학의 간략한 지침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기술처럼 보인다. 목표대상은 우선 분리하고 분석해야 할 단순한 요소들의 합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 즉 하나의 형태이자 구조이다. 요소는 전체에 앞서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소는 전체보다 더 즉각적인 것도, 더 오래된 것도 아니다. 나아가 전체를 결정짓는 것은 요소가 아니지만, 요소를 결정짓는 것은 전체다. 전체와 그 규칙에 대한 지식, 집합과 그 구조에 대한 지식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에 대한 개별적 지식에서 추론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퍼즐 한 조각을 사흘 동안 쳐다볼 경우, 그것의 외형과 색깔에 대해 완벽하게 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퍼즐 조립이 좀더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퍼즐 조각을 다른 조각에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며, 이 점에서 퍼즐의 기술과 바둑의 기술 사이에는 이 점에서 퍼즐의 기술과 바득의 기술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조각들은 오직 함께 짜맞추어졌을 때만 파악 가능한 어떤 형태와 의미를 얻게 된다. 따로 떼어 관찰하면 퍼즐 조각 하나하나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나의 조각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자 불투명한 도전일 뿐이다.
—p. 269
나는 순간과 동시에 영원을 쫓았노라.
—p.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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