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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불(la luna e i falò)일상/book 2022. 1. 1. 12:56
일전에 읽은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에 언급된 작가의 이름을 보고 즉흥적으로 읽기 시작한 책이다. 파베세의 글은 동시대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의 전후 문학과 비슷하다. (정확히는 칼비노는 파베세보다 이후에 활동하는 작가다.) 붉은 여단(공산주의)와 검은 여단(파시스트)의 혈투, 종교(가톨릭교)의 악취 나는 정치적 행위, 언덕과 언덕을 가득 뒤덮은 비참한 가난, 세대와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폭력적인 전통은 파베세와 칼비노가 소설 속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소재다.
다만 칼비노는 어린 아이를 화자로 빌려 좀 더 동화적인 서사를 통해 전후 시대를 서술한다면, 파베세는 주변부적 존재—안귈라라는 화자—을 통해 전후 이탈리아 사회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전자(칼비노의 소설)에서는 어린 아이의 때묻지 않은 시선으로 부조리한 시대상황이 우화적으로 다뤄지기 때문에 문제시되는 시대 상황이 비로소 명료해진다. 반면 후자(파베세의 소설)에서는 소설 속 무대와 일정하게 거리를 둔 어른을 배경에 둠으로써, 시선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파괴된 전후 이탈리아 사회를 여과 없이 서술한다. (전후 우리나라 문학에서 이처럼 극명한 이념 대립과 빈곤, 사회의 몰락을 다룬 소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글을 읽다 보면 이탈리아 남부야말로 만성적인 빈곤의 대명사로 다뤄지고, 이탈리아 근현대사 책 또한 이탈리아 남부의 뿌리깊은 가난과 가족주의, 폭력을 조명하곤 한다. 때문에 알량한 이념 대립으로 언덕이 불에 타오르고 황폐해져가는 체사레 파베세의 글 속 무대가 북이탈리아의 피에몬테라는 것은 약간 충격이었다. 특히나 피에몬테의 제노바는 지역은 이탈리아 안에서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적 결사 활동이나 특유의 공동체 문화로 역사책을 읽으며 눈여겨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전후 이탈리아를 장악하고 있던 빈곤과 폭력은 남과 북을 가릴 것 없이 만연했던 것이 아니겠나 싶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달과 불은 글 안에 여러 가지 의미로 다뤄진다. 먼저 '달(la luna)'은 변함없이 차고 기우는 존재인 동시에 어떤 염원의 대상이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어릴 적 친구 누토와는 다르게 달에 의미부여를 하지 않는다. 비록 그 자신은 찢어지는 가난을 피해 아메리카로 건너갔지만, 그리하여 고향사람들이 성공했다고 할 만한 지위에 올랐지만, 그가 뿌리를 두고 있던 카넬리 언덕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뀐 것이 없음을 발견한다. 노동은 아무것도 낳지 못하고, 폭력이 새로운 폭력을 불러온다. 마을의 부조리를 개탄하며 목청을 높이는 것은 마을의 경계를 한 번도 벗어나 본적이 없는 토박이들이지만, 바로 그들이 속한 세상에서 그들은 너무나 무력하다.
한바탕 '불(il falò)'을 지르는 행위를 통해 단말마와도 같은 비명을 내질러 보지만, 마치 진공 속에 내뱉어진 비명인 양 금새 봉인되는 듯하다. 쥐불놀이와 같은 축제적 요소, 풍요로은 토양을 바라는 기원적 요소는 그리 보이지 않는 듯하다. 우발적인 방화와 분노가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불씨가 된다. 물론 좀 더 너그러운 시각에서 본다면, 불이 지나간 언덕은 맛좋은 포도를 기르는 데 적합한 점토질 많은 토양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전후 이탈리아의 산업화 과정에서 피에몬테 지역 일대는 실제로 혁혁한 성장을 이루기도 한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사실 그리 집중해 가면서 읽지를 못했다. 활자를 따라가고 다음 문장으로 시선을 옮기기는 하지만 활자가 머릿속에 각인되기 전에 훌훌 튕겨나가는 느낌이었다. 번역이 좋았음에도 좀처럼 책을 잡고 있을 마음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은근히 이탈리아 소설들을 읽을 일이 있는데,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소설과 다른 묘한 매력이 있다. 모르고 있었을 뿐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된 이탈리아 책이 많다는 사실에 반갑기도 하다. 언젠가는 단눈치오의 글도 읽어보아야 할 텐데, 하며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친다. [Fine]
이제 알 것 같았다. 왜 이따금 도로의 자동차 안, 어느 빈 방구석, 골목 구석에서 목을 맨 아가씨가 발견되는지를. 그들도, 그 사람들도 풀밭에 몸을 던지고 싶고, 두꺼비들과 어울리고 싶고, 여자를 눕힐 땅 한 뙈기를 갖고 싶고, 거기서 두려움 없이 잠들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 나라는 컸고 모두를 위한 것이 전부 다 있었다. 여자가 있고, 땅이 있고, 돈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충분히 갖지 못했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누구도 멈추지 않았으며……
—p. 27
여기서 누토는 말했다. 내가 틀렸다고, 저항했어야 한다고. 그 언덕에서 사람들은 아직도 짐승 같은 비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으며, 전쟁은 아무 소용도 없었고, 죽은 자들을 제외하면 모든 게 예전과 똑같다고.
—p. 67
하지만 나는 달을 믿지 않고, 요컨대 계절만이 중요하다는 것을, 계절이 뼈를 만들며 어린 시절 먹던 것들을 만들었음을 알고 있다. 카넬리는 세상 전부이고, 언덕 위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p. 70
불그스레한 불빛이 보였기 때문에 나는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밖으로 나왔다. 나지막한 구름들 사이로 조각달이 솟아올라 있었고, 그것은 꼭 칼로 벤 상처가 들판으로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 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너무 무서웠다.
—p. 74
나는 돌아왔고, 그 길로부터 빠져나왔고, 성공하여 안젤로 여관에서 잠을 자고, 기사와 이야기를 나누지만, 나를 알아보고 나를 만져야 할 손들이, 얼굴들이, 목소리들이 이제 사라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남아 있지 않았다. 축제가 끝난 이튿날의 광장, 수확을 끝낸 포도밭처럼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홀로 술집으로 되돌아가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p. 91~92
“금요일에는 죄가 되지.” 누토는 입가를 훔치며 대답했다. “하지만, 나머지 여섯 날이 있잖아.”
—p. 114
어두워지면 길에서 사람들이 노래하고 웃고 서로를 부르는 소리가, 벨보 강을 가로질러 밤새도록 들려왔다. 그런 날 밤에는 먼 언덕에서 보이는 불빛 한 점, 타오르는 불꽃 한 뭉치에도 나는 고함을 지르고 땅바닥을 굴렀다. 나는 왜 가난한지, 왜 소년인지, 왜 아무것도 아닌지 소리쳤다. 그런 여름날에는 세상이 뒤집힐 듯 폭풍우가 몰려와 축제를 망칠 때면, 차라리 즐거울 지경이었다. 이제 나는 그 시절이 그리웠고 되돌아가고 싶었다.
—p. 124
배에서 내려 전쟁으로 파괴된 제노바의 집들 한가운데서 내가 처음으로 되뇌었던 말은, 모든 집과 모든 마당, 모든 테라스는 누군가에게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었고, 물질적 피해나 세상을 떠난 사람들보다는 그렇게 하룻밤 사이에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것들이, 살아온 수많은 세월과 수많은 기억을 떠올려주는 것들이 더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렇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게 더 나을지 모르지. 모든 것이 마른 풀로 피운 불 속에서 사라지고,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편이 나을지 모르지.
—p.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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