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부끄럽지도 슬프지도 않습니다.모든 사물의 뒤, 詩集과 커피 잔 뒤에도
막막히 누워 있는 그것만 바라봅니다.
정처 없던 것이 자리 잡고
머릿골 속에서 쓸쓸함이 중력을 갖고
쓸쓸함이 눈을 갖게 되고
그래서 볼 수 있습니다
꽃의 웃음이 한없이 무너지는 것을
밤의 달빛이 무섭게 식은땀 흘리는 것을
굴뚝과 벽, 사람의 그림자 속에도
몰래몰래 내리는 누우런 황폐의 비
그것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발바닥까지
어떻게 내 목구멍까지 적시는지를
눈 꼭 감아 뒤로 눈이 트일 때까지,
죽음을 향해 시야가 파고들 때까지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내 속에서 커가는 이 치명적인 꿈을.
그러면서 나의 늑골도 하염없이 깊어지구요.
<편지> 中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분(鬱憤; indignation) (0) 2022.01.20 열왕기상・하 (0) 2022.01.11 김약국의 딸들 (0) 2022.01.08 달과 불(la luna e i falò) (0) 2022.01.01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0) 202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