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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鬱憤; indignation)일상/book 2022. 1. 20. 18:38
최근 서가에서 시선을 사로잡은 신간이 필립 로스의 『울분(indignation)』이라는 작품이다. 이전에 그의 『에브리맨』이나 『죽어가는 짐승』을 읽을 때에도 그의 작품세계가 잘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울분』에서는 공감하는 대목이 많아 그의 세계관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소설 속 주인공인 마커스와 나와 닮았다는 점이 큰 것 같다.
마커스는 자신의 삶을 바꿔보기 위해 집을 나와 먼 곳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뛰어난 두뇌와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와 바라던 인생의 노선에서 점점 멀어져간다. 여기에는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사람 또는 상황을 경멸하는 그의 비타협적인 기질과, 한 여인에 대한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의 순수함이 큰 역할을 한다.
소설에는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곳곳에 등장하며 이는 소설에 시대적 나아가 역사적 배경을 제공한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고지(高地) 위의 땅 한 뙈기를 두고 수 천명이 죽고 죽이는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다른 반대편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뇌와 번민으로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 그리고 마커스의 내면을 잠식해가던 울분은 마침내 그를 정복하고 사지로 내몬다. '울분'이라는 정서를 다룬 소설은 드문데, 이 소설에는 그러한 정서가 매우 잘 그러져 있다. [end]
삶에서처럼 나는 오직 있는 것만 알 뿐이고, 죽음에서는 있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바뀔 뿐이다. 살아 있는 동안에만 삶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사라진 뒤에도 계속 그 삶에 붙어 있게 된다. 아니면, 역시 이것도, 어쩌면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 누가 내게 말해줄 수 있었을까? 사실 죽음이 끝없는 무(無)가 아니라 영원히 자기 자신에 관해 숙고하는 기억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았다 한들 죽음이 덜 무서웠을까? 어쩌면 이렇게 영원히 기억하는 과정은 그저 망각으로 가는 대기실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신자로서 나는 내세가 시계, 몸, 뇌, 영혼, 신이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모양이나 형태, 내용을 가진 것이 없는 곳이라고. 절대적 해체라고. 하지만 내세는 기억이 없는 곳이 아니었다. 아니, 기억이 전부인 곳이었다.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 내 평생을 돌이켜본 것이 세 시간 동안 계속된 일인지 아니면 백만 년 동안 계속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망각되는 것은 기억이 아니다. 시간이다. 휴지(休止)도 없다. 내세에는 잠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로지 잠뿐인지도. 그래서 영원히 사라진 과거에 대한 꿈이 죽은 사람과 영원히 함께 있는 것인지도.
—p. 64~65
그게 자네가 자네의 모든 곤경에 대처하는 방법이니까, 마커스. 떠나는 것 말일세.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나?
—p. 122
어떤 사람들은 일을 갈망한다. 어떤 일이든. 가혹하든 고약하든 상관없다. 자기 삶의 가혹함을 쏟아내고, 마음에서 자신을 죽일 것 같은 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p. 175
“너한테 이런 요구를 하는 건 내가 아니야. 인생이 요구하는 거야. 안 그러면 너는 네 감정에 쓸려가버릴 거야. 바다로 쓸려나가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을 거야. 감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어. 감정은 가장 무시무시한 속임수를 쓸 수 있거든.”
—p. 185
“결국은 역사가 너희를 따라잡을 것이다. 역사는 배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그 무대 위에 있다! 아, 그렇게 지독하게도 자기 시대를 모르고 살다니 정말 역겹다!”
—p. 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