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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즉부(饑則附)하며, 포즉양(飽則颺)하며, 욱즉추(燠則趨)하며, 한즉기(寒則棄)는 인정통환야(人情通患也)라 하나 땅이야 어디 그런가? 사시장철 변함없이 하늘의 뜻과 사람의 심덕을 기다리고 있네.”—p. 178
“몽매한 백성이란 저승이든 이승이든 그 대가가 확실해야 움직이는 무리들이고 제 이익과 관계가 없으면 관여치 않는 꾀가 있는 놈들이오. 말하자면 그들에겐 지조가 없단 말이오. 존엄이 없단 말이오. 존엄이나 지조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무리들은 아니란 말이오. ……상놈들한테 아첨하는 개 같은 양반 놈이나 자비를 베푸는 늑대 같은 양반 놈이나 그게 다 한 무리가 아니겠소? 그놈들은 또 제 목숨만 보전된다면 의관이고 족보고 다 싸질러서, 백정이라도 해먹을 놈들이지.”
—p. 206
어느 해, 마을에는 가뭄이 들었다고 했다. 들판은 누우렇게 타버리고 강물은 말라서 고기들이 말라 죽는 무서운 가뭄이었다고 한다. 나라에서는 기민 쌀을 내었으나 그것도 한도가 있는 일, 길거리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나동그라지고 그것을 파먹는 짐승조차 얼씬거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 최씨네 고방에 쌓인 곡식은 그네들, 굶주린 농부들의 전답문서하고 바꾸어졌으며, 석 섬 나는 논 한 마지기는 몇 말의 곡식으로 둔갑을 했어도 조상 전래의 땅이 없어지는 설움보다 당장 목숨 부지하기에 급급했다는 것이다.
—p. 286
……그것은 모두 헛것이었다. 여자에게 가던 그때의 정은 참말 헛것이었다. 육신이 합쳐져서 처음으로 사는 뜻을 깨달으며 설움가 즐거움이 그의 것이 되고 말았던지. 게으르고 무기력했던 용이는 부지런해졌으며 강청댁이 어떤 수라장을 꾸미든 눈을 가린 나귀가 연자매를 돌리듯 사랑이 회생(回生)을 낳고 헌신을 낳고 고통을 낳고 다시 사랑을 낳는, 그같이 둥근 제 생활의 터전을 묵묵히 돌고 있었다.
—p. 294
“진나라의 진시황은 임금의 자식이 아니고 장사꾼의 자식이었다더구먼.”
……”한마디로 말해서 씨를 속았다. 그 말씸이구머요.”
—p. 323
“울타리 안에 무진세계(無盡世界)가 있을 수 있고 울타리 밖이라 할지라도 한 치 땅이 없을 수도 있네.”
—p.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