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세기 말 화학을 혁신했던 라부아지에의 업적 중 하나는 홑원소물질로서의 원소, 즉 분리된 형태의 원소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었다. 이것은 화학이 짊어졌던 과도한 형이상학적 짐을 덜어냄으로써 화학을 발전시키려는 의도였고 실제 위대한 진전이었다. 라부아지에에 따르면 원소란 어떤 화합물의 구성 성분을 낱낱이 분리했을 때 맨 마지막에 남는 물질이었다. 라부아지에가 정말로 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원소 개념을 없애려고 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그 덕분에 실제로 분리할 수 있는 원소보다 추상적 의미의 원소가 덜 중요하게 여겨지게 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추상적 의미의 원소 개념이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었으니, 그 개념의 지위를 격상시키자고 제안했던 화학자 중 하나가 바로 멘델레예프였다. 그는 주기율표란 1차적으로 추상적 의미의 원소들을 분류하는 체계이지 실제로 분리가 가능한 구체적 원소들을 분류하는 체계는 아닐지도 모른다고 거듭 주장했다.
이런 견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멘델레예프는 실제로 분리할 수 있는 구체적 원소에게만 집중하는 화학자들보다 원소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깊은 철학적 시각으로 원소들의 외관을 넘어선 것이다. 어떤 원소가 특정 집단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멘델레예프는 더 깊은 차원의 원소 개념에 의지함으로써 분리된 형태 혹은 홑원소물질 형태의 원소가 드러내는 성질을 어느 정도 무시할 수 있었다.
―p. 82~83
가능한 원소의 가짓수는 가능한 영구 전하의 가짓수에 달려 있다.
판덴브룩은 원자의 핵전하가 원자량의 절반이고 연속된 원소들의 원자량은 두 단위씩 증가하므로 주기율표에서 원소의 위치는 핵전하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주기율표에서 모든 원소들은 각자 바로 앞 원소보다 핵전하가 하나씩 더 많을 터였다.
―p. 104
핵물리학의 여명기에 등장한 발견 가운데 역시 주기율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계로 작용한 것은 동위원소의 발견이었다. 동위원소(isotopes)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같다(iso)를 뜻하는 단어와 장소(topos)를 뜻하는 단어에서 온 말로, 원자량이 다른데도 주기율표에서 같은 장소를 차지하는 원자들을 가리킨다. 동위원소의 발견은 일면 필요에 따른 것이었다. 핵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새롭게 발견된 원소들 중에는 라듐, 폴로늄, 악티늄처럼 주기율표에서 쉽게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는 원소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역시 새로운 원소로 보이는 물질 약 서른 가지가 짧은 기간 동안 줄줄이 발견되었다. 이런 물질들에는 토륨 에마네이션, 라듐 에마네이션, 악티늄 X, 우라늄 X, 토륨 X 하는 식으로 해당 물질의 모체로 추정되는 원소의 이름을 포함한 임시명이 붙었다.
―p. 107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고전물리학의 발견들은 대체로 양자 이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내용이었다. 엑스선도 그랬고 방사능도 그랬다. 훗날 이런 현상들의 특정 측면을 밝히는 데 양자 이론이 이용되긴 하지만, 양자 개념 없이도 이런 현상들은 그럭저럭 연구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물리학은 또 주로 핵에서 기인하는 과정들을 다루었다. 방사능은 기본적으로 핵이 쪼개지는 과정이고, 원소 변화도 핵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원자번호는 핵의 속성이고, 동위원소는 한 원소에서 질량이 서로 다른 여러 원자들을 말하는데 그 질량이란 거의 전적으로 핵의 질량이다.
이와 달리 지금부터 우리는 핵이 아니라 전자에 관한 발견들을 살펴볼 텐데, 이 분야를 연구할 때는 반드시 태동기의 양자 이론이 사용되어야만 했다. 먼저 양자 이론 자체의 기원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양자 이론은 20세기에 들어설 무렵 독일에서 시작되었다. 그곳 물리학자들은 사방이 까만 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동(空洞)에서 복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흑체복사’라고 불리는 이 현상의 복사 스펙트럼을 여러 온도에서 자세히 기록한 뒤 그 결과로 얻은 그래프를 설명할 수학모형을 구축하려고 했다. 이 문제는 상당히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는데, 그러던 중 1900년 막스 플랑크가 이 복사에너지는 이산적인 덩어리, 즉 ‘양자’로 구성된다는 대담한 가설을 제기함으로써 문제를 풀었다. 그러나 막상 플랑크 자신은 스스로 제안한 양자 이론의 의미를 흔쾌히 받아들이기를 주저했고, 그저 남들이 그 이론을 새롭게 응용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양자 이론은 에너지가 이산적인 꾸러미로만 존재하며 기본 양자 에너지의 정수배만 가능할 뿐 그 사이의 값은 취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1905년 이 이론을 적용하여 광전효과를 멋지게 설명해낸 사람은 다른 아닌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빛을 양자화된 것으로, 달리 말해 입자화된 것으로 간주해도 좋다고 결론지었다.
―p. 110~111
1913년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양자 이론을 수소 원자에 적용했다. 러더퍼드처럼 보어도 수소 원자는 중심에 핵이 있고 전자 하나가 그 주변을 도는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이때 전자가 취할 수 있는 에너지는 이산적인 특정 값들에만 국한된다고 가정했다. 시각적으로 표현하자면 전자가 핵을 둘러싼 특정 껍질 혹은 궤도에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모형은 수소 원자에서, 나아가 모든 원소들의 원자에서 드러나는 두어 가지 속성을 어느 정도 설명해주었다. 첫째로 이 모형은 우리가 수소 원자에 전기에너지를 가했을 때 수소로부터 방출되는 에너지가 비교적 일정한 몇몇 진동수로만 나타나서 불연속 스펙트럼을 이루는 현상을 설명해주었다. 이 현상에 대한 보어의 가설은 전자가 허용된 한 에너지준위로부터 다른 허용된 에너지준위로 이행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다. 전자가 정말 그렇게 이동한다면, 이 과정에서는 두 에너지준위의 에너지 차이에 해당하는 특정 크기의 에너지만이 방출되거나 흡수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설명이 약간 부족하기는 했지만, 이 모형은 왜 전자가 에너지를 모두 잃고 핵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도 어느 정도 설명해주었다. 과학자들이 원운동을 하는 하전입자에 고전역학을 적용하여 그 미래를 예측해보면 그런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전자가 실제로는 그러지 않는다는 사실은 수수께끼였다. 이에 대한 보어의 가설은 전자가 고정된 궤도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또 전자가 취할 수 있는 에너지준위에는 최저값이 있기 때문에 전자가 그보다 더 낮은 에너지로 이동할 수는 없다고 가정했다.
―p. 111~112
제일 중요한 발견은 알파붕괴와 베타붕괴의 패턴이 일부 밝혀진 것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일하던 폴란드 출신 방사화학자 카지미에시 파얀스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방사화학자 프레더릭 소디가 변위 법칙을 발표했다. 이 법칙은 범람하는 새로운 원소들과 붕괴 생성물들을 정리하는 데 긴요한 통찰을 제공하면서도 대단히 간결했다.
변위 법칙에 따르면, 어떤 원소가 알파붕괴를 겪으면 전하가 그보다 두 단위 작은 다른 원소로 바뀐다. 반면에 베타붕괴를 겪으면 약간 놀랍게도 전화가 그보다 한 단위 큰 다른 원소로 바뀐다. 이 새로운 법칙에 비춰볼 때 주기율표에서 원소의 위치는 원자랴잉 아니라 핵전하와 관계되는 것 같았지만, 아직 이 점은 불확실했다.
―p. 134
현대 산업계에는 단단한 재료에 대한 수요가 많다. 연마재, 절삭도구, 긁힘 방지 코팅으로 쓰이는 이른바 초경질 재료에 대한 수요도 많다. 전통적으로 초경질 재료의 역할을 맡아온 것은 절삭 도구로서의 능력이 잘 알려져 있는 다이아몬드였다. 그 밖에도 입장 질화붕소, 즉 BN을 비롯하여 여러 초경질 재료가 대체물로 개발되었다. 그런데 그런 다이아몬드 대체물은 제조 과정에서 엄청난 고압을 사용한다. 보통 5기가파스칼이 넘는 고압이 필요하고, 온도도 1,500도가 넘어 제조 비용이 비싼 편이다.
……레늄은 안정적인 원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진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레늄에는 흥미롭고 유용한 성질이 많다. 이를테면 여느 금속과는 달리 녹는점에 다가가도 연성-취성 파괴를 겪지 않는다는 점이 그렇다. 레늄은 온도가 올라가도 높은 강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연성도 유지하기 때문에 고온에서 사용할 재료로 이상적이다. 항공기 터빈 날개가 그 응용 사례의 하나다. 니켈 합금에 레늄을 1~3퍼센트만 섞어도 고온에서 강도가 개선되고 피로 파괴도 방지된다.
―p. 190~192
1972년 6월 오클로 천연 원자로가 발견된 것은 우라늄의 주요한 두 동위원소인 ²³⁵U와 ²³⁸U의 비에 유의미한 이상이 감지된 사건 덕분이었다. 자연 상태의 우라늄에서 ²³⁵U의 정상적인 비는 0.7202±0.0010퍼센트인데 비해, 오클로 광물에는 그 동위원소가 0.440퍼센트 들어 있었다. 프랑스 핵과학자들은 구로다가 예측했던 과거 그 시점에 그곳에서 자급적 핵연쇄반응이 벌어졌던 것이라고 결론지었고, 천연 원자로가 존속했던 기간은 60만 년에서 150만 년 사이로 추정했다. 과학자들은 또 대기 중 산소가 우라늄 광물 속에서 진행된 분별 과정에 관여했으리라고 추론했는데, 이것은 과거 광합성을 할 줄 아는 생물체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대기에 산소가 극적으로 많아졌던 시점이 지금으로부터 약 2×10⁹년 전이라는 별도의 추정치와도 일치했다.
―p. 236
프랑슘은 자연 상태에서 발견된 최후의 원소로, 지각 전체에 겨우 30그램쯤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업적 용도가 전혀 없는 극소수의 원소들 중 하나이기도 한데, 수명이 가장 긴 동위원소조차 반감기가 21분밖에 안 된다는 점이 주된 까닭이다. 그러나 프랑슘은 원자 지름이 2.7옹스트롬으로 모든 원소들은 통틀어 가장 크다는 점과 최외각전자가 하나뿐이라는 점 때문에 현대 핵물리학 이론의 한 가지 세부 측면을 탐구하는 연구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p. 248
1950년대 컬럼비아 대학의 리정다오와 양전닝은 일부 기본 입자들의 반전성을 위반할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이것은 달리 말해 입자들이 오른쪽과 왼쪽을 구분한다는 뜻이었는데, 당시에는 이것이 기묘한 이야기로만 들렸다. 그러나 1957년 역시 컬럼비아 대학에서 그들과 함께 연구하던 우젠슝은 방사성 ⁶⁰Co으로 실험하다가 반전성 위반이 실재하는 현상임을 발견하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⁶⁰Co 원자들에 자기장을 걸어 편극을 일으킨 뒤 베타붕괴를 겪게 하면, 원자들은 북끅보다 남극에서 전자를 더 많이 방출되는 경향을 뚜렷이 드러냈다. 반전성 위반 개념은 1970년대에 안정된 원자, 즉 방사성이 없는 원자로도 확장되었으며 세슘을 비롯한 여러 원자에서, 가장 최근에는 이터븀에서 관찰되었다.
―p. 269
전자기장에서 극성은 쌍극, 4중극, 8중극……하는 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 데 비해, 약전자기력과 연관되는 아나폴은 그렇지 않다. 대신 아나폴은 이른바 트로이드류에 동반되는 자기 성분으로 이때 트로이드 바깥에서는 자기장이 전혀 검출되지 않는다.
―p. 270
이런 초중량 원소들은 주기율표에서 흥미로운 문제를 제기했을 뿐 아니라 중요한 과제도로 작용했다. 또한 이 원소들은 이론적 예측과 실험 결과의 대조라는 흥미로운 작업이 가능한 새로운 영역을 열어주었다. 이론적 계산에 따르면, 원자의 핵전하가 증가함에 따라 상재성 이론의 효과가 점점 더 중요해진다. 가령 금은 원자번호가 79로 그다지 크지 않지만 그 독특한 색깔은 이제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된다. 원자의 핵전하가 클수록 안쪽 껍질의 전자들이 더 빨리 움직인다. 상대성 이론의 범위에 해당하는 속도로 획득한 전자들이 더 빨리 움직인다. 상대성 이론의 범위에 해당하는 속도를 획득한 전자들은 핵에 더 가깝게 끌림으로써 최외각전자들은 보다 많이 가리게 되는데, 알다시피 어떤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결정하는 것은 최외각전자들이다. 이 때문에 일부 원자들은 주기율표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추정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화학적 성질을 가질 것으로 예측된다.
―p.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