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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영화 <벌새>에 은희가 교습소의 선생님에게 건넸던 책이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선과 악을 대립시키는 헤르만 헤세의 서술방식이 조금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헤르만 헤세는 단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읽어보았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을 손으로 꼽아보다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데미안」, 「싯다르타」, 「수레바퀴 아래서」 모두 좋은 책들이지만, 헤르만 헤세의 세계관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작품이 아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을 학교 다닐 때 도서관에서 읽었더랬다. 헤르만 헤세의 서적이 꽂힌 구역에서 뜬금없이 집었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라는 인물이 명징하게 반대항을 이루며 음과 양처럼 서로를 휘감고 도는 글이다. 문득 도서관의 후미진 서가 한쪽에서 이런저런 책을 읽곤 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크눌프」는 그간 뭉개두고 있었다가 최근에 와서야 다시 읽어볼 생각을 했다. 크게 세 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이 서로 다른 시점에 발표되었기 때문에 관찰시점이 조금씩 다르다. 어쨌든 크눌프라는 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집요하게 세상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떠돌아 다니는 사나이, 크눌프. 그에게는 때묻지 않은 천진함이 있고, 세상을 직시할 아량이 있다. 그와 같이 삶을 살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이라도 그와 닮은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렇고 소원이란 건 재미있는 면이 있어. 내가 만일 지금 이 순간 고개 한번 끄덕이는 걸로 멋지고 조그마한 소년이 될 수 있고, 자네는 고개 한번 끄덕이는 걸로 섬세하고 온화한 노인이 될 수 있다면, 우리들 중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걸. 그러고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할 거야.」
―p. 67
「그래. 하지만 난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사람들로 하여금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두려움도 항상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난 밤에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을 제일 좋아해. 파란색과 녹색의 조명탄들이 어둠 속으로 높이 올라가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버리지.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금세 다시 사라져버릴 거라는 두려움도 느끼게 돼. 이 두 감정은 서로에게 연결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것보다 훨신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아?」
―p. 68~69
「이봐, 그건 인정할 수 없는 얘기야, 크눌프. 우린 종종 삶에는 결국 어떤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하고, 또 누군가가 사악하고 적대적이지 않고 선량하고 우호적이라면 그건 가치 있는 일이라고 얘기 나누지 않았었나. 그런데 지금 자네가 이야기하는 건, 결국 모든 것이 똑같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가 도둑질하거나 살인을 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얘기겠군.」
―p. 71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 다른 영혼에게로 갈 수가 없어. 만일 가고자 한다면 자신의 뿌리를 떠나야 하는데 그것 역시 불가능하지.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 가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향기와 씨앗을 보내지. 하지만 씨앗이 적당한 자리에 떨어지도록 꽃이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어.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야. 바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이곳저곳으로 불어댈 뿐이지.」
―p. 79
꽃들은 모두
안개 자욱해지면
시들어야 하는 운명,
인간 또한
죽어야만 하리니,
무덤 속에 눕게 되리.
인간 또한 꽃과 같아,
봄이 오면
그들은 모두 다시 살아나리라,
그때는 더 잇아 아프지 않으리,
또한 모든 것 용서 받으리.
―p. 1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