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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일상/book 2020. 8. 15. 23:30
우리는 유전자와 게놈의 개념을 뭉뚱그려 사용한다. 엄밀하게 말해 게놈을 유전자라고 표현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게놈은 33억 개의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극히 일부를 유전자라고 한다. 게놈 중 약 2퍼센트가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데 관여한다. 쉽게 말해 유전자는 우리 인체의 구성요소인 약 30조 개 세포의 계획도인 셈이다.
놀랍게도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유전자의 수는 약 1만 9,000개밖에 안 된다. 반면 단세포 미생물인 아메바는 약 3만 개의 유전자를, 유럽소나무는 5만 개가 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그런데 생물의 복잡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유전자의 개수가 아니다. 세포핵이 있는 생물인 경우 한 개의 유전자가 다양한 구성요소로 조합될 수 있다. 이 유전자는 한 가지 기능만 담당하지 않는다. 박테리아처럼 원시적인 생물일수록 한 개의 유전자에서 한 개의 구성요소만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구성요소는 대개 한 가지 과제만 담당한다. 인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 유전자는 크기는 아주 작지만 팀플레이가 아주 탁월하다.
―p. 27
……실제로 햇빛에 많이 노출될수록 피부는 더 검게 된다. 적도 아래 중앙아프리카 지역 사람들은 가장 어두운 피부를 갖고 있는 반면, 북쪽 지역 사람들은 가장 밝은 피부를 갖고 있다. 이러한 차이에 담긴 진화론적 의미도 쉽게 설명할 수 있다. 피부에 색소가 강하게 나타날수록 암을 유발하는 자외선이 더 적게 침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가 자외선 차단이 피부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유럽인 조상을 가진 오스트레일리아인은 피부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군을 관찰할 수 있는 대포적인 사례다.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사람들은 대개 영국인 혈통과 아주 밝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며, 이주 역사는 불과 몇백 년밖에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세계에서 피부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인의 3분의 1이 평생에 한 번은 피부암을 앓는다.
―p. 89
……석기시대 사람들은 장치를 제작할 때 원료 부족을 경험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도구나 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나무나 도른 일반적으로 풍부한 편이었다. 초기 농경민들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소비사회에서 살았다. 자신이 만든 물건은 거의 다 자신이 소비했다.
……돌이나 나무와 달리 청동은 가만히 앉아있다가 주워오면 내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애써 가공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먼저 원료를 찾거나 소유하고 있어야 했다. ……본격적인 거래는 이때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유럽에서는 물자 거래가 활성화되었고 무역이 발달했다. 제한된 원료와 전문가의 지식은 사회 간 경쟁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경쟁을 심화시켰다. 물건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건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p. 168~169
……에볼라 바이러스는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다른 개체군으로 이동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먼 지역으로 확산될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 거의 매년 동남아시아에서 변종이 발생하는 독감 바이러스는 이동을 한다. 독감 바이러스는 쉽게 죽지 않고 매우 멀리 퍼진다. 매년 독감이 유행하는 것이 그 증거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더 치명적이기 때문에 독감 바이러스와 비교할 때 진화의 측면에서 불리하다.
―p. 182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인간과 동물을 병들게 한다. 사실 다양한 병원균의 공통점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언급된 것이나 다름없다. 박테리아는 영양분을 많이 찾고 증식하기 가장 좋은 조건에서 활동하는 반면, 바이러스는 신진대사를 하지 않는 분자막에 불과하다. 바이러스는 병원균들 사이에 있는 좀비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생명 활동을 하지 않고 다른 생명체에 접촉해 엄청난 피해를 일으킨다. 바이러스는 자신의 활동을 위해 다른 생명체의 신체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는 인간뿐만 아니라 박테리아도 감염시킬 수 있다. 반면 인간이나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를 감염시킬 수는 없다.
―p. 184
유전자 데이터는 정반대의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실제로 원사시대에 있었던 두 차례의 대변혁, 이른바 이주민이 기존의 정착민을 몰아냈던 이주의 물결은 분리시킬 수 없다. 나치는 8000년 전 아나톨리아 농경민과 5000년 전 동유럽 스텝지대 유목민의 이주가 유럽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사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이들이 새로 제시한 견해는 20세기 전반에 고고학 이론의 일부를 재활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역시 성급한 결론이다. 유전자 데이터를 철저히 살펴보면 이주와 문화교류 간의 복잡한 상관관계가 드러나고, 여기에서 개체군에 따른 경계는 확인할 수 없다.
―p. 246~247
……오래전부터 인류는 유전적으로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 반면 이전 수천년 동안은 정반대였다. 인류는 전 세계로 이동했고, 유전적 차이는 물론이고 개체군 간의 분열과 차이고 점점 커졌다. 지난 수천 년간 인간 계통도들의 줄기들이 다시 합쳐지고 있다. 이 현상은 이동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 현재 전 세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거의 없고 정착민들과 결혼해 자녀를 낳는다. 유럽과 서아시아 사람들 간의 유전적 차이는 지난 1만 년 동안 절반 이상 감소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전적 차이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동이 점점 많아지는 사회에서 이러한 추세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p. 253~254
……질병이 아니라 지능, 인체 사이즈, 개인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과 관련된 유전적 요인이 확인된다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킬 날이 멀지 않았다. 현재 유전자 진단 기술을 이용해 다운증후군 발생 위험이 있는 아기는 태어나기 전에 낙태시킨다. 심지어 이런 부분과 관련해 유전자 가위 프로세스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한 생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생명 자체가 탄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더 높은 지능의 유전자를 주는 것이 모든 부모의 바람 아닌가? 이를테면 하얀 피부나 푸른 눈처럼 다수 사회에서 선호하는 외모를 갖게 해주는 유전자? 어느새 건강한 사회에서 틀에 맞춰 찍는 사회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다.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이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윤리 및 법적 제재를 받고 있다. 아직까지 인간의 유전자 개입으로 발생할 기회와 위험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수년 아닌 수십 년이 될지 모르지만 이 기술을 다루는 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다.
―p. 262~263
아주 오랜만에 읽었던 자연과학 분야의 서적. 자연과학 안에서는 특히 지구과학과 생물학에 관심이 있어서 가끔씩 자연과학 서적을 읽을 때는 이쪽 분야를 찾아보는 편이다. 특히나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질병이나 의학에 관한 서적이 매대에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 이 책이 그냥 DNA에 관한 유기화학 또는 생물학을 소개하는 수준의 책이었다면 굳이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인데 한 명은 고고유전학의 전문가이고 다른 한 명은 이들 연구결과를 ‘여행’이라는 키워드 아래 서사적으로 풀어나가는 정치면 기자다. 이 책은 유전학 연구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접근법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 책이다.
과학자와 기자의 공저라는 독특한 시도는 (책을 읽다보면 자연히 알게 되지만) 우생학 논리에 근거해 반인륜적인 제노사이드를 합리화했던 나치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있다. 뛰어난 조직이나 사회는 자생적으로 발생할 수 없으며, 뜻밖의 접촉과 교류 속에서 호혜적인 자극을 주고받을 때 한 사회가 ‘발전’으 모멘텀을 얻는다는 것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난민과 코로나로 인해 제노포비아가 퍼지고 있는 유럽 각국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기획된 책이라 할 수도 있다.
서너 시간 정도 카페에 앉아 완독을 했는데, 심층적으로 분석한 아주 긴 컬럼을 읽은 느낌이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시의성이 있다. 그새 자크 데리다의 또 다른 책을 집어 들었는데, <무깟디마>만큼 두꺼운 책이어서 꽤 공들여 독서를 해야 할 것 같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나니 이제는 혹서가 찾아온다는데, 가을의 선선한 저녁공기를 떠올리니 벌써 시간의 흐름이 무섭게 느껴진다. 어느덧 입추를 넘기고 말복도 저무는 무더운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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