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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깟디마(al-Muqaddimah)일상/book 2020. 7. 16. 00:07
4월부터 끌어왔던 독서이고 근래에 와서는 이 책을 아예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읽은 부분까지라도 갈무리를 해둬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완역판이라고 해서 눈길을 끌었는데, 아랍어로 된 수많은 인명(人名)과 지명(地名) 그리고 인용문들을 옮기는 것부터 굉장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완역판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까치'에서 출간한 동명의 책 『역사서설』―아랍어로 '무깟디마(al-Muqaddimah)'가 된다―보다 분량이 훨씬 많고 두껍다.
오늘날 통상 헤게모니(Hegemony)라고 하는 개념을 '아싸비야'라는 표현을 통해 어렴풋하게 인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더불어 이슬람 문명이 발흥했던 지리적인 환경이 드넓은 사막을 아우르고 있다보니, 유목문명과 도시문명을 대조하고 분석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이런 글들을 읽다보면 옛사람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나 매우 닮아 있고, 때로는 예전 사람들이 더 지혜롭다는 생각도 든다.
……거짓이 극한에 달하면 역사적 정보는 왜곡된다.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특정 견해와 학파만을 추구하는 당파성이다. 만약 인간의 영혼이 정보를 수용할 때 공평하다면 그 정보에 비판적 검증을 가해서 진실인지 허구인지를 분명히 밝힐 것이다. 그러나 편견과 특정 파벌에 치우쳐 있다면 그는 만족스러운 것만 받아들일 것이다. 편견이나 당파성은 비판적인 능력을 흐리게 하고 결과적으로 거짓을 수용하고 전달하게 만든다. 역사적인 정보에 거짓이 불가피하게 섞이는 두 번째 이유는 정보 전달자에 대한 신뢰에 있다. 이것은 전달자의 됨됨이를 통해서 검증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이유는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이가 그 목적을 알지 못하는 것에 있다. 많은 전달자들은 그가 보거나 들은 것의 진정한 의도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나 추정한 것을 전달한다. 그러므로 거짓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네 번째 이유는 진실에 대한 망상이다. 이러한 경우는 많다. 그 까닭은 대부분 전달자를 맹신하기 때문에 생긴다. 다섯 번째 이유는 상황이 현실에 얼마나 적용되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것에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은 왜곡되거나 조작되기 때문에 비록 전달자가 자신이 본대로 상황을 전달해도 그것은 진실이 아닌 것이다. 여섯 번째 이유는 많은 경우, 사람들이 권세가나 지위가 높은 사람들을 칭송하고, 찬양하며 상황들을 미화시켜 그들의 명성을 퍼뜨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방식으로 유포된 정보는 진실이 아니다. 인간의 영혼은 칭송을 갈구하고, 인간은 현세의 지위와 부를 탐닉한다. 거짓이 불가피하게 개입되는 일곱 번째 이유는 앞서 언급한 이유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데, 바로 문명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의 성질에 대한 무지함에 있다. 각각의 사건들이 본질인지 파생된 결과인지를 불문하고 사건 자체는 상황이 반영하는 나름대로의 고유한 성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러한 정보를 전해들은 이들이 어떠한 사건과 상황들의 고유한 성질과 그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다면 정보를 면밀히 조사할 때에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비판적인 검토를 할 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p. 75~76
우리가 언급했듯이 인류가 사회조직을 만들고, 이 세상에 문명을 세우면 사람들은 인간의 동물적 본성인 ‘공격성’과 ‘불의’를 제어하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특정한 방해물을 반드시 필요로 하게 된다. 인간을 야수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는 인간의 공격을 막아내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두 그러한 무기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상호간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와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인간의 지각과 영감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그러한 방해물은 인간들 가운데 한 사람이어야만 하며 사람들을 제압하는 힘과 권위를 지녀야만 한다. 그래야 누구든 서로를 공격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왕권’의 의미다. 여러분에게 왕권이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이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다. 철학자들이 언급한 대로 이것은 벌이나 메뚜기와 같은 동물 일부에게도 존재할 수도 있다. 그들 사이에서도 통치자와 우두머리에 대한 복종이 있다. 그들의 지도자는 본능적으로 일반의 무리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인간이 아니라면 이러한 것은 본능적인 성향과 알라의 인도에 따른 결과로써 존재할 뿐 사고와 정치의 결과로서 생긴 것은 아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각각에게 기능을 주신 분이시라.’
―p. 89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는 습관에 있다. 사람의 영혼이 어떤 것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영혼의 성질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은 다양한 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진적인 훈련으로 인간의 영혼이 배고픔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영혼의 자연적인 성질이 되는 것이다.
―p. 158
무타칼리문은 ‘인간의 자발적 행위’라는 주장에 근거하여 “기적은 예언자의 행동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의 능력으로 발생한다”고 말한다. 무으타질라 학파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이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지만, 기적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행동을 넘어선 것이다. 무타칼리문 대부분은 예언자가 행하는 기적은 알라의 뜻으로 사람들에게 보내는 경고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예언자가 자신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방편이다. 따라서 기적이 발생하고 그가 진실한 자라는 알라의 계시가 내려오면 그런 기적이 표시하는 것은 예언자의 진실성을 확고하게 한다.
―p. 164
......육체적 물질 가운데 가장 희박한 것이 동물적 정신이다. 따라서 그것은 육체성과는 명백히 구분되는 본질이고 이성적 영혼이 미치는 영향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성적 영혼은 이렇게 동물적 정신을 매개체로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성적 영혼을 지각하는 방식에 두 가지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오감을 통한 외적 지각과 뇌의 힘을 통한 내적 지각이다. 이런 지각은 모두 이성적인 영혼으로 하여금 선천적으로 준비된 정신세계보다 높은 단계의 것을 인지하는 일을 멀리하게 한다. 외적 감각은 육체적인 것이므로 피로로 인한 침체, 절망 혹은 많은 활동으로 인한 정신적 고갈 등에 영향을 받는다. 알라는 인간이 감각적으로 휴식에 대한 욕구를 느끼게 창조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완벽한 형상을 지각하도록 했다. 이는 동물적 정신이 모든 외적 감각에서 나와 내적 감각으로 들어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p. 181
만약 법률이 처벌만 앞세워 강제로 시행된다면 그것은 용기를 완전히 파괴한다. 왜냐하면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사람에게 벌을 내리면 그는 치욕을 느끼게 되고 치욕감은 용기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만약 법이 인성과 지식을 교육할 목적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그런 법을 적용한다면 백성들은 두려움과 복종에 길들여진다. 이렇게 성장한 사람은 약간씩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신의 용기에 의지하지도 않고 자신을 신뢰하지도 않게 된다. 야만적인 아랍 베두인들이 법의 제약을 받는 이들보다 훨씬 용감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법과 그 지배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기술, 학문, 종교적인 면에서 인성 교육과 지식 교육을 받을 때 용기를 상실한다는 것도 발견한다. 그들은 적대적인 행위에 대해서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 이런 이들 중에는 스승이나 셰이크에게 배우고 연구하는 학생들, 장엄한 집회에서 인성 교육과 지식 교육을 열망하는 이맘 등이 있다. 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저항력과 용기를 잃게 된다.
―p. 216~217
이스라엘인들은 이런 환상을 가장 많이 지닌 자들이다. 그들은 원래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문에 속했다.
첫째,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그들에게 종교와 종교법을 가져온 모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에언자와 사도들이 그들의 조상이었다. 둘째, 그들은 알라가 그들에게 약속했으며 아싸비야를 통해 제시한 왕권을 가지고 있었따.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잃었고 치욕과 고난을 겪으며 지상에서 유배의 생활을 하는 운명을 이어갔다. 수천 년 동안 그들은 불신자의 노예가 되어 흩어져 살았다. 가문에 대한 그들의 환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당신은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그는 아론의 집안 출신이다.”, “그는 여호수아의 후손이다.” ,”그는 갈렙의 후손이다.”, “그는 유다 지파에 속하는 자다.” 그들의 아싸비야는 이미 소멸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치욕을 당했음에도 말이다. 도시에 흩어져 거주하는 이들 중 다수는 이와 비슷한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p. 230
한 가문의 명망이 4대까지만 유지된다는 이론은 대부분의 경우에 해당되고 가끔은 4대도 채 못 미치는 때도 있다. 물론 어떤 가문은 쇠락한 상태로 5, 6대까지 유지되는 경우도 있다. 가문의 영광을 직접 획득한 세대, 그다음은 창설자와 개인적인 접촉을 한 세대, 전승에 의존하는 세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문의 영광을 파괴하는 세대로 나뉜다.
―p. 235
우리는 이미 앞에서 한 왕조의 수명이 삼 세대를 넘지는 않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제1세대는 여전히 베두인의 생활의 특징인 거침, 어려운 상황에서 비롯된 야만성, 용맹함, 약탈적인 기질 그리고 영광을 공유하는 것 등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싸비야의 힘을 보존했고 날카로우며 다른 이를 두렵게 만드는 존재이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복종했다.
왕권의 배경과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제2세대는 베두인의 환경이 아닌 도시문명을 누리게 되었고 가난하고 힘든 삶이 아닌 사치와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으며, 모든 사람이 왕조의 영광을 공유하던 상황이 아닌 한 사람이 영광을 독점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 결과로 나머지 사람들은 나태함과 나약함의 포로가 되어 영광을 추구하려는 정신을 잃게 되었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자부심을 망각하고 겸손한 복종자로 길들여진다.
……제3세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베두인의 생활이나 그 강인했던 시절을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망각한다. 그들은 굴욕적인 소질을 지닌 채 지내므로 명예나 아싸비야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그들은 그저 안락한 삶에 물들고 사치는 절정에 달한다. 그들은 항상 보호해 줄 누군가를 원하는 부녀자처럼 왕조에 의지하고 아싸비야를 완전히 잃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도 잊어버린다.
―p. 287~288
결론적으로 군주의 지나친 명민함은 정치 지도자로서는 결함이다. 이는 지나치게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마치 우둔한 자가 지나치게 완고하다는 것과 같다. 인간의 모든 품성 중에서 극단은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며 중용이야말로 칭찬받을 것이다. 낭비와 인색함의 중간인 관대함 혹은 만용과 비겁함 사이의 용기도 이와 같으니 인간의 다른 품성도 그렇다. 이런 까닭에 지나치게 영리함은 악마의 자질로 묘사되고 그런 자는 ‘악마’나 ‘악마 같은 자’로 불린다. 알라께서는 원하는 대로 창조하고 그분은 강력한 능력을 지니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p. 316
……자연적 왕권이란 대중들이 자신의 목표와 욕망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고, 정치적 왕권이란 현세의 이익을 획득하고 피해를 막아내는 이성적 통찰력에 근거하여 대중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한 칼리파위는 대중이 현세와 내세에서 조화롭고 이득을 얻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고려하고 종교적 통찰에 따라 행동하도록 한다. 입법자는 현세의 모든 조건은 내세의 이익을 고려한다고 보고 있다. 사실상 칼리파는 입법자를 대리하여 종교를 보호하고 현세의 정치를 행한다. 그러므로 이를 잘 이해하고 앞으로 논의할 때 명심하라. 알라는 박학한 현인이시다.
―p. 318~319
‘시아’는 ‘교우’고 ‘추종자’라는 말임을 기억하라. 또한 이는 고대와 현대의 이슬람 법학자들과 무타칼리문의 지식에 근거하여 ‘알리와 그의 자손들을 추종하는 자’라는 의미기도 하다. 그들의 이론은 이맘직위는 이슬람 공동체(움마)의 전망을 책임지는 대중의 이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 동의한다. 이맘위를 수행하는 자는 이슬람 법학자들의 임명에 의해 이루어지고 더욱이 이맘위는 이슬람의 기둥이고 이슬람의 근간에 해당되는 것이다. 예언자는 이맘의 임명을 부정하거나 이슬람 공동체에 그의 임명을 위임하지 않고 이슬람 공동체를 위해 직접 이맘을 임명해야 한다. 이맘은 크든 작든 어떤 죄도 짓지 않는 무결점의 사람이어야 한다. 시아파의 이론에 따라 그들이 인용하고 해석한 텍스트를 기준으로 알리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임명한 이맘이다.
―p. 329이슬람의 다섯 기둥으로는 샤하다(신조 암송), 쌀라트(1일 5회 기도), 자카트(구휼세), 싸움(라마단 금식), 핫지(성지순례)가 있고 이 외에도 권장하고 지향할 만한 여러 기둥이 있다.
―p. 358
압둘 말리크는 수문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네가 세 가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내 집 문에 장막을 치도록 명하겠다. 첫째는 음식을 지닌 자다. 음식을 가져오다 지체하면 부패하기 때문이다. 둘째, 예배 시간을 알리는 ‘아잔’을 하러 가는 자다. 이는 알라를 부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우편 배달원이다. 소식이 늦으면 일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p. 372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판관의 직위는 명확히 규정된 종교의 의무이고 대중의 순나다. 그러므로 그대에게 제출된 탄원서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하라. 왜냐하면 효력이 없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의 법정에서는 만민을 평등하게 대우하라. 귀족이 그대에게 편파적인 판결을 기대하지 않도록 하고 약자들도 그대의 공정함에 희망을 품도록 하라. 원고는 반드시 증거를 제시해야 하고 피고는 반드시 서약을 해야 한다. 무슬림끼리 합의는 가능하지만 그 합의가 금지된 것을 용인하거나 허용된 것을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만약 이미 잘못된 판결을 내렸으나 오늘이라도 그 잘못을 깨달으면 이성적으로 처음 판결을 철회하라. 왜냐하면 정의가 가장 우선이고 무가치한 것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철회가 낫기 때문이다. 코란이나 순나를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그대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각하라. 유사한 사건들에 관해서 연구하고 유추를 통해 상황을 판단하라. 어떤 이가 증명 여부조차 불확실한 문제로 고소하면 우선 그에게 시간을 주도록 하라. 만약 그가 그 시간 내에 증거를 제출하면 그의 주장을 수용해야 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그에게 반대되는 결정을 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하면 그대에게 있는 한 떨기 의심을 털어내고 어두움을 밝혀주는 첩경이 될 것이다. 무슬림은 서로 증인이 될 수 있으나 편파적인 자, 위증을 했던 자, 혹은 가문이나 주종관계로 의심을 받는 자는 안 된다. 알라께서는 서약을 한 증언을 수용하고 증거를 제시한 자가 위험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소송을 다룰 때는 절대로 피곤하거나 짜증내는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하라. 정의의 장소에서 정의를 세우는 일을 통해 알라께서는 그대에게 큰 보상을 주시고 그대의 명성 또한 높아질 것이다.”
―p. 373~374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들은 자신들의 명칭에 특별하고 고유한 별칭을 붙여 시장에서 쉽게 들리는 이름들과는 구분하였다. 그들은 별칭을 삽파흐(관용을 베푸는 자), 만쑤르(승리자), 마흐디(바른 길로 인도하는 자), 하디(지도자), 라시드(영도자)라고 불렀다.
―p. 384
이슬람에서 성전(聖戰)은 합법적인 것인데, 무슬림은 대중에게 이슬람을 포교해야 하며, 자발적이던 강제적이던 간에 사람들을 무슬림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리파와 왕권은 이슬람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p. 388
……메시아는 유태인에게 토라의 일부 종교법을 폐지하고 종교를 가지고 왔다. 그는 미친 사람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놀라운 기적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모여들었고 그를 믿기 시작했다. 그의 추종자들 중에 가장 큰 집단이 ‘사도’라고 불리는 12명의 제자였다. 그는 이중 몇 사람을 여러 지역으로 파견했고 그곳에서 그들은 그의 종교를 선전했다. 그 당시는 로마제국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시대였고 하스몬 가문과 혼인관계였지만 결국 그들로부터 왕권을 탈취한 유태인의 왕 헤롯이 시대였다. 유태인들은 예수를 시기하고 그를 거짓말 하는 자로 치부했고 헤롯왕은 예수를 비방하는 내용의 서한을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보냈다. 결국 로마 황제는 예수의 사형을 허락했고 코란에 명기된 사건들이 발생했다. 사도들은 여러 무리로 분리되었다. 대다수의 사도들은 로마지역에 입성해 기독교를 전파했는데 그들 중 가장 큰 인물은 베드로였다. 그는 로마 황제의 수도인 로마를 거처로 삼았다. 사도들은 예수에게 계시된 복음을 기록했고 그들의 전승에 의해 서로 다른 네 종류가 생겼다. 마태는 예루살렘에서 히브리어로 복음을 썼는데 세베대의 아들인 요한이 이를 라틴어로 번역했다. 누가는 로마의 몇몇 귀족을 위해서 라틴어로 복음서를 썼고 세배대의 아들 요한은 로마에서 복음서를 썼다. 베드로는 라틴어로 복음서를 썼는데 자신의 제자인 마가도 이 일에 관계시켰다. 이 네 종류의 복음서는 서로 다르다. 그것들은 모두 계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의 말과 사도들의 말이 섞여 있고 전체가 설교와 일화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종교법에 관한 것은 매우 적었다. 그 당시 사도들은 로마에 모여 기독교 공동체의 규율을 제정했다. 그들은 그것을 베드로의 제자인 클레멘트에게 맡기고 마땅히 지침이 될 만한 서적들의 명단을 함께 주었다.
―p. 390~391
재상제도: 이는 정부 정책과 왕권계급의 어머니다. 왜냐하면 그 명칭이 ‘도움’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재상제도라는 어휘가 ‘원조(援助)’에서 기인되었다면 그것은 ‘도움’이고, ‘책임’에서 기인되었다면 이는 무거운 짐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어느 쪽에서 나왔건 간에 이 어휘는 절대적인 도움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장의 도입부에서 군주의 여건과 그 행동이 네 분야를 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첫째, 공동체의 보호에 관한 사항이다. 이는 군대, 무기, 전쟁, 방위와 침공에 관한 제반사항에 대한 감독에 관한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자는 재상으로, 마슈리끄의 옛 왕조가 그랬고 마그립에서는 현재까지도 그러하다. 둘째, 시공간적으로 군주와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군주의 서신을 전하는 일, 그리고 군주와 접촉이 없는 사람들에게 명령을 전달하고 감독하는 일,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서기의 임무다. 셋째, 세금의 징수와 지출, 이런 업무에 관련된 제반사항을 점검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을 책임지는 징세 재무 담당관을 오늘날 마슈리끄에서는 재상이라고 부른다. 넷째, 군주의 일을 방해할 정도로 다수의 탄원자들이 오는 것을 방지하는 일이 있다. 이 일의 책임자는 문을 지키는 시종(하집al-Hajib)이다. 군주의 정무는 이 네 가지를 초과하지 않는다.
―p. 397
사람들이 재산을 빼앗기면 재물을 모으려는 희망을 잃게 된다는 것을 인지하라!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재물을 모으려는 목적과 궁극적인 목표가 자신들의 손에서 떠났다고 생각한다. 만약 사람들이 재물의 획득이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그렇게 하고자 하는 노력도 없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재산을 빼앗기는 정도에 따라 재산을 획득하려는 노력도 약해지는 법이다. 만약 재산을 빼앗기는 정도가 생계 다방면에 걸쳐 심하고 광범위하면 재산을 축적하려는 의지도 급속히 약해질 것이다. 하지만 빼앗기는 정도가 약하다면 재산 축적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줄어드는 정도도 경미해질 것이다. 문명과 그 번영 그리고 시장의 활성화는 노동 생산에 의존하고 이익과 이윤을 위해 사람들이 벌이는 노력에 의존하므로 이 모든 것은 사라지게 된다. 사람들은 생계를 잇기 위해 정부의 관할 지역에서 벗어난다.
―p. 475
“왕이시여! 왕권의 명성은 오로지 종교법, 알라에 대한 복종, 알라의 명령과 금지를 준수하는 것을 통해서만 완성될 수 있습니다. 왕이 없이는 종교법을 수행할 수 없고 왕의 명성은 백성 없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재화가 없이는 백성을 다스릴 수 없고 노동이 없으면 재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의가 없으면 노동을 할 방법이 없습니다. 정의는 이 세상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있는 저울입니다. 알라께서는 그 저울을 세우시고 감독자를 두셨으니 그가 바로 군주입니다. 왕이시여!......”
―p. 476
불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소유주에게 아무런 이유나 보상도 없이 금전이나 소유권을 취하는 것만이 아니다. 사실 불의는 이보다 더 일반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소유권을 강탈하는 자, 강제로 노역을 시키거나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종교법이 부과하지 않는 의무를 부과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미 불의를 행하는 자이다. 부당한 세금을 징수하는 것도 불의를 행하는 것이다. 남을 적대하는 것도 불의이고, 재산을 빼앗는 자, 남의 권리를 막는 자도 불의를 행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고스란히 문명의 파괴로 왕조에게 돌아가고, 백성들의 희망이 상실되어 왕조의 기본 요소인 문명의 파괴가 오는 것이다.
이것이 무함마드가 불의를 금지했을 때 의도했던 지혜라는 것을 인지하라! 불의가 초래한 문명의 부패와 파괴가 바로 그 결과이다. 결국 이는 인간이 종으로써 단절됨을 알리는 소리였고, 샤리아에 그의 의도를 모아 다섯 가지 사항을 필수적이라고 한 것은 주의 깊고 포괄적인 지혜이다. 그 다섯 가지는 종교의 보존, 영혼의 보존, 지성의 보존, 자손의 보존, 재산의 보존이다.
―p. 478
“……우리 중에 삽파흐가 있고 문디르가 있고 만쑤르가 있고 마흐디가 있다.” 이븐 압바스는 말했다. “삽파흐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죽이고 자신의 적을 용서하였다. 문디르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큰 재물을 나누어 주며 자신을 과시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 최소한 권력만을 취했다. 만쑤르는 적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는데 이는 마치 알라의 사도께서 늘 베풀곤 했던 것과 같고 적들이 이동하는 두 달 내내 알라를 두려워하며 공포에 떨곤 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만쑤르의 적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이동하는 한 달 동안 공포에 떨 것이다. 마흐다에 대해 말하자면 그는 이 땅이 불의로 가득했던 것처럼 이 땅을 정의로 가득 채울 것이다. 가축들은 사자에게서 안전하게 되고 이 땅은 숨겨진 땅의 보물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나는 물었다. ‘무엇이 숨겨진 땅의 보물입니까?’” 그는 말했다, “금과 은으로 만들어진 기둥과 같은 것이다.” 끝.
―p. 536
두 싸히흐에 의하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 개의 모스크는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의 모스크이다. 메카는 아브라함의 집으로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집의 건설을 명하셨고 사람들에게 그곳으로 순례하도록 권유하였다. 메카를 건설한 자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일이다. 이는 코란에 기록된 그대로다. 그는 알라의 명을 그대로 실행했다. 이스마일은 하갈과 그곳에서 거주했고, 주르흠 부족도 그곳에 함께 거주하다가 그 두 사람의 죽음까지 수습했다. 예루살렘은 다윗과 솔로몬의 집이다. 알라께서 두 사람에게 그곳에 모스크를 건설하라고 명했고 기념물을 세우라 하셨다. 다수의 예언자들과 이삭의 후손들이 그 주변에 묻혔다. 메디나는 알라께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그곳으로 이주하여 이슬람을 전파하라고 명하자 그가 이주를 감행한 곳이다. 그는 메디나에 성스러운 모스크를 건설했고 그의 고귀한 무덤은 메디나에 있다. 이 세 모스크는 무슬림의 영광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무슬림에게 동경의 대상이고 또한 모든 무슬림의 종교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p. 584~585'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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