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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데리다의 글을 읽고일상/book 2020. 9. 5. 17:52
자크 데리다의 글을 읽고 느낀 점을 남기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길고 어려운 글이었기 때문에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차일피일 글쓰는 것을 미뤄왔다. 이전에 미셸 푸코와 들뢰즈, 과타리의 글도 일부 읽어봤지만, 프랑스 철학은 참 난해하다. 바로 그 난해하다는 매력(?) 때문에 계속 글을 찾아서 읽는데, 『그라마톨로지』는 그에 비하면 난해한 편도 아닌 것 같다. 프랑스어로 된 원본이더라도 읽기 까다로웠을 것 같은 글이다. 역자도 이전에 한 번 번역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정리정돈을 했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작업이었을 것 같다.
이 책에는 매우 다양한 인물과 철학이 소개된다. 소쉬르, 프로이트, 레비스트로스, 하이데거, 후설, 헤겔, 루소까지. 이밖에도 생소한 언어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이름이 쉴새없이 등장한다. 문학작품에 여러 유명인사와 작품이 인용되는 경우는 많이 봤지만, 철학도 원래 이런 것인지 문학만큼 철학을 접하지 않다보니 잘 모르겠다. 또 예외적인 부분은, 이 책에서 자크 데리다가 문제시하는 텍스트들이 그리 일반적인 또는 잘 알려진 텍스트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와 같은 대표작도 다뤄지지만, 루소에 관한 대목에서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보다 음악의 성질에 관한 철학적 갑론을박이 주된 관심사가 되는가 하면, 소쉬르의 언어학을 다룰 때에도 흩어져 있는 몇 가지 텍스트들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에서 루소의 텍스트가 가장 비중이 큰 것을 보면, 비록 저자 자신이 하이데거와 후설 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이 글 안에서는 루소에게서 얻은 영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추측한다.
그라마톨로지. 에크리튀르. ‘문자(文字)’라는 것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탄생했지만, 이와 별개로 인간의 의지와 다르게 작동한다. 어떤 면에서 문자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땅바닥에 아무 형상을 그리던 중 ‘발견’한 규칙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종이 귀퉁이에 엉성하게 쓰인 낙서가 대개 별것 아닌 의미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표현양식인 것처럼. 요는 문자라는 도구에 의해 인간의 정념은 끊임없이 굴절을 겪는다. 기초가 되는 ‘정념’이 내부분열로 붕괴에 이를 수도 있고, 반면에 외부분열로 의미를 증식할 수도 있다. 사실 이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범람하는 오늘 같은 시대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는 현실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표현수단은 성대의 떨림으로 울려나오는 목소리다. 폴리스가 국가를 이루던 시대에는 목소리만으로도 공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크 데리다가 사악한 문자의 본성을 까발리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형이상학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할 것을 역설한다는 점이다. 소쉬르가 열어놓은 언어학의 지평, 레비스트로스가 고찰한 문화인류학적 관점을 차례차례 논리적으로 명중시키면서 (또는 그러한 로고스를 비판하면서) 형이상학이라는 틀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 때부터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서양 형이상학의 전통 안에 적체된 모순과 난제들은 바로 형이상학으로써 풀어내야 한다는 게 자크 데리다의 생각이고, 그러한 관념이 집약된 것이 그라마톨로지라는 개념이다. 거꾸로 말하면, 기성 철학을 비판하기 위해 아예 전복적인 방식으로 회의주의적인 시각을 갖는다면, 철학적인 논의는 그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없다. 이러한 철학은 하나의 소동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했을지라도, 비건설적이고 비생산적이다.
그럼에도 어려운 점은 남는다. 단단히 뿌리박힌 기존의 관념을 해체―역자도 몇 번 강조하지만 자크 데리다는 해체라는 말을 결코 즐겨 쓰지 않았다고 하니 굳이 해체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하는 이 현대철학이 어떤 형태로 형이상학이라는 연못에 동심원을 띄울까 하는 물음. 자크 데리다의 말대로 에크리튀르가 재현전(représente)를 내포하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당연시돼 오던 생각과 느낌에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면, 이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일까. 그저 다기망양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서 그친다면 이 철학의 효력은 거기까지인가? 어느 선(線)까지 논의를 밀어붙였을 때, 자크 데리다가 흡족해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기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하나의 방법론을 수렴할 만큼 우리 사회는 성숙해 있을까? 순진한 질문들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러한 궁금증들이 꼬리를 문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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