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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일상/book 2020. 12. 19. 15:39
두 번째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이라고 해도 국내에 잘 번역된 것이 그리 많지는 않아 선택권은 많지 않지만.. 사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읽어보고 싶은 것은 그의 천부적인 재능이 집약되어 있다고도 하는 <율리시스>이지만 국내에 잘 번역된 글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문학적 유희가 대단한 작품이라고 하니 반드시 원전으로 읽어야 참맛을 알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더블린 사람들Dubliners>는 옴니버스 형식으로 된 더블린 사람들의 길지 않은 이야기를 모아놓은 글이어서 분량 면에서는 그리 부담스럽지가 않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지만, 하나의 관통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역자는 이를 ‘마비’라는 문학적인 표현으로 부연하는데, 구교와 신교의 갈등, 지리멸렬한 독립 운동, 낙오된 산업・경제적 환경 속에서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심리의 밑바닥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읽는 동안 크게 의식하지는 못했는데, 역자의 설명대로 ‘소년기-청년기-장년기-공적인 삶’의 순서로 글을 엮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조이스가 활용하는 주요 주제들은 낯설다. 아일랜드 내에서 19세기에 벌어졌던 구교(가톨릭)와 신교(프로테스탄트)의 갈등, 찰스 스튜어트 파넬의 주도로 이루어졌던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의 독립운동은 세계사적으로도 그리 조명받는 내용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맨처음 <어느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글을 읽을 때는 이런 주제들에 익숙해지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는데, 사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이해하기 어렵기만한 맥락은 아니기도 하다. 전통사상(유교)과 개화사상(서양학)의 충돌, 일본에 대항한 독립운동은 아일랜드의 근대사와 똑같이 맞닿아 있다. 다만 아일랜드의 뿌리를 이루는 두 축—종교와 켈트족으로서의 정체성—은, 고대(古代)로부터 아일랜드가 오랜 기간 가톨릭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점이나 영국의 지배를 무려 600년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겪었던 사회적인 혼돈보다 더욱 격렬하고 여파가 컸다고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제임스 조이스는 ‘마비’라는 모티브에 천착해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부딪치며 그 소용돌이 속에 점점 타락해가는 아일랜드 사회를 향해 일갈을 가했던 것이다.
15개의 토막글 모두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에피소드는 열한 번째 에피소드인 ‘가슴 아픈 사건’과 마지막 에피소드 ‘망자’이다. <가슴 아픈 사건>에서 주인공 ‘더피’는 스스로 지성인 사회에 속한다고 하는 교양 있는 사람이지만, 시니코 부인과의 만남에서 끝까지 마음을 열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그에게 더 가까워지려고 하는 시니코 부인을 모멸하고 조소하는 듯한 비겁한 태도를 취한다. 심지어 그 자신도 그 떳떳치 못한 관계의 당사자였음에도 말이다. 한편 <망자>에서 게이브리얼 씨는 세련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레타와의 대화 속에서 순간의 욕정에 사로잡혔던 자기 자신에 대해 허탈함을 느끼면서도 삶과 죽음을 초탈하는 자세를 보인다.
제임스 조이스가 길지 않은 글 안에서 그려낸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은 때로는 천박하고, 우둔하고, 위선적이고, 부화뇌동하면서도 전혀 앞으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하지만 이 역시 역자가 풀이하듯, 글 안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체(停滯)된 삶의 수렁에 빠져 있기만 한 것은 아니며, 이 안에서 삶이 단단히 옥죄는 사슬을 뿌리치려는 움직임과 열망도 함께 엿보인다. 결국 <더블린 사람들>을 읽으면 100년 전 삶의 모습이 지금과 전혀 다르지 않구나 하고 자조적인 생각을 하면서도,삶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절박함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fin]
걸음을 뗄 때마다 초라하고 비예술적인 자신의 생활 터전에서 점점 멀어져 런던에 점점 가까워져 갔다. 한 줄기 빛이 마음의 지평 위에서 떨리기 시작했다. 이제 서른 둘,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니었다. 기질적으로는 이제 막 성숙의 절정에 올라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운문으로 표현하고 싶은 상이한 기분과 인상이 너무나 많았다. 마음속으로 그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영혼이 시인의 영혼인지를 가늠해 보고 싶었다.
—p. 98
자신의 삶과 친구의 삶이 보이는 대조가 뼈저리게 사무치자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갤러허는 태생으로나 학벌로나 자기보다 처지는 친구였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친구가 이미 이루었거나 이룰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무엇, 허울 좋은 언론 활동보다 더 나은 무엇인가를 해낼 자신이 있었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게 무엇이란 말인가? 한탄스러울 만큼 소심하기는!
—p. 106
눈길이 비탈 아래를 따라가다 기슭에 머무르자, 공원 담의 그림자 속에 웬 사람 형체들이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사람들의 타락하고 은밀한 연애 행각에 절망감이 엄습했다. 자기 삶의 엄정성을 갉아 냈다. 삶의 향연으로부터 추방당한 신세라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한 인간이 나를 사랑해 주는가 보다 싶어지자 그 여인에게 생명과 행복 주기를 거부해 버린 것이다. 그 여인에게 치욕의 선고를, 그리고 수치스러운 죽음의 선고를 내려 버린 것이다.
—p. 157
“우리 사이에는 새 세대, 즉 새 사상과 새 원칙에 자극을 받는 세대가 자라고 있습니다. 이 세대는 진지하고 새 사상에 대해 열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열성은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조차도 제가 믿기로는 대체로 순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회의적이고, 이런 구절을 써도 좋다면, 사상에 시달리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이 새 세대가 아무리 교육, 아니, 교육의 할아버지를 받았다 하더라도, 전 시대의 자산인 인간애, 환대, 다정다감 등의 특질은 결여되고 있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그 모든 유명 가수들 이름을 오늘 밤 듣고 있자니, 고백하거니와, 우리는 그보다 편협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시대는, 과장 없이 말해서, 관대한 시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가 불러도 다시 오지 않을 이름이 되었다면, 우리는 하다못해 이런 모임을 통해서라도 여전히 긍지와 애정을 가지고 그 시대를 이야기하고 세상 사람들이 기꺼이 그 명성을 영원히 기리고 싶어하는, 이제는 가고 없는 그 위대한 이름들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에 간직할 것이라는 소망이라도 품어 봅시다.”
—p. 288
게이브리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어떤 여자에 대해서도 몸소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으나, 이런 감정이야말로 바로 사랑이려니 싶었다. 눈물이 눈에 더욱 가득 고였고 어두운 한쪽에서 빗물 듣는 나무 밑에 선 젊은이의 모습이 보이는 듯한 상상이 들었다. 그 옆에 다른 형상들도 있었다. 자신의 영혼이 수많은 망자들이 사는 영역에 다가간 것이다. 종잡을 수 없이 가물거리는 망자들의 존재를 의식은 하면서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마저 뿌옇게 잘 보이지 않는 세계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고, 이 망자들이 한때 세우고 살았던 단단한 이승 자체가 용해되어 줄어들고 있었다.
—p.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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