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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일상/book 2020. 12. 20. 15:38
중고등학교 때 사회계약설이 나오면 로크, 홉스, 루소의 이론을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채 두세 문장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는데, (정작 부끄럽게도) 이 세 인물 가운데 원전을 직접 읽어본 것이 하나도 없다=_= 과연 고전은 고전이라 불리는 까닭이 있는 모양이다.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누구나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프랑스어나 독일어의 경우 번역이 잘못 되면 읽기가 까다로운데, 이 책의 경우는 읽기가 어렵지도 않고 한국어 분량도 채 150페이지가 되지 않으므로 부담스럽지도 않다. 왜 여태껏 이 책을 집어들 생각을 못했는지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싶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나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못지 않게 ‘사람’에 대해 통찰력 있는 분석을 담고 있다. 비록 지금은 장 자크 루소가 17세기 유명 철학자의 대명사이지만, 당대 기득권으로부터는 사유재산을 비판한 이단아로 받아들여졌는데, 오늘날 독자로서 읽기에도 그의 시각은 상당히 파격적이지만 동시에 신선하다.
이 글을 읽기 위해서 독자에게는 약간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루소는 문명 이전의 원초적 시대를 ‘상정’하는데 이는 선사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아담과 이브의 신화에 필적할 만큼 오래된 때의 가공된 이야기이다. 이때 인간의 본성을 이루는 것은 ‘자기애’와 ‘연민’이다. 이는 ‘이기심’이나 ‘동정’과는 다르다. 원초적 상태의 이른바 ‘미개인’의 본성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가까이에 있는 반려동물을 떠올려 보아도 될 것이다. 나는 실제 루소가 문명에 때묻지 않은 인간을 설명할 때 집에 있는 강아지를 떠올렸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자신이 사냥한 먹이가 빼앗길 것 같으면 공격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를 넘어서서 잔혹하고 맹목적인 행위—가령 대규모 전쟁이나 학살—를 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 정도로 분별없는 행동을 한다면 이는 병에 걸린 상태이다.
문명의 부패와 타락은, 루소에 따르면 ‘소유권’과 ‘법’에 대한 인정으로부터 시작된다. 더불어 루소는 ‘말(parole)’의 역할에 대해서도 꾸준히 논의한다. 본디 자기를 보전하고 타인을 아픔을 인지하며, 쾌락도 고통도 느낄 줄 모르던—아니 그러한 개념조차 갖고 있지 않던—최초의 인간은 우연적 요소로 인해 자연(땅)에 경계를 긋고 소유를 주장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이제 법률은 자연법의 단계에서 실정법의 단계로 들어선다. 이어서 법이 존재하기 때문에야말로 범죄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루소의 반문을 접하면서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과연 인간은 ‘정의’라는 추상적 개념을 증진하기 위해 법의 기틀을 세웠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의 방종과 무질서를 통제하기 위해 필요악으로 도입된 것이 법과 제도가 아니던가?
사회가 생겨나기 이전의 인간을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묘사했던 홉스를 비판하는 루소는 상대적으로 원시 상태의 인간에 대해서 낙관적인 전망을 가졌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명과 도구라는 경험과 기억은 인간을 되돌이킬 수 없는 악의 상태로 빠뜨렸다. 주체할 줄 모르는 사치와 이로부터 파생된 학문과 예술은 더욱 더 흥청망청함과 광폭함을 부추긴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생활고에 시달렸던 루소의 사회계급으로 보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주장인 동시에, 사회를 지배하던 식자층에게는 대단히 귀에 거슬리는 주장이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인간이 어떤 연유에서 불평등 상태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부분은 상세히 다루고 있지만, 이러한 불평등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는 것이 많지 않다. 이는 아마도 이후에 저술되는 <에밀> 같은 저서를 통해 보다 깊이 다뤄지는 것 같다. 한 사람이 평생 소비하지도 못할 사유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비판한 루소의 사상은 마르크스의 사상과도 맥락이 닿아 있고, 역자가 말하듯 엥겔스 또한 루소의 사상에 크게 공감을 했다고 한다. 이처럼 루소가 제기했던 철학적 물음이 면면이 이어져 오늘날까지 유효하다는 것은, 인간이 떠올리는 물음표가 지금이나 예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단, 국가를 하나의 합의체라기보다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 철학은 공동체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근대 철학과 다른 관점을 지닌다는 것! [終]
인류의 모든 진보가 인간을 끊임없이 원시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수록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연구했기 때문에 인간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p. 38
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작용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기에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원리이다. 사회성의 원리를 끌어들이지 안허라도 자연법의 모든 규칙들은 우리의 정신이 이 두 가지 원리 사이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일치와 조합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이성이 계속 발달하여 마침내 자연을 질식시켜버리게 되면, 이성은 이 규칙들을 또 다른 기초 위에 세워야 한다.
—p. 43
동물은 태어난 지 몇 달 후면 일생 동안 변치 않을 모습을 지니게 되며, 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종의 최초 모습과 별 차이가 없다. 어째서 인간만이 쉽사리 어리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이 이와 같이 하여 원시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즉 동물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므로 잃는 것도 없이 언제까지나 자신의 본능 그대로 있는 반면에 인간은 노쇠와 그 밖의 사고로 말미암아 그의 완성 가능성 덕분에 얻게 된 모든 것을 잃어, 동물보다 더 저속한 상태로 다시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과 동물을 분명히 구별하는 거의 무제한적인 이 가능성이 인간의 모든 불행의 근원이며, 평온하고 순진무구한 나날이 계속되는 저 원초적인 상태로부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인간을 이끌어낸 것도 바로 이 가능성이다.
—p. 68
그들(미개인)의 욕망은 육체적인 욕구를 초월하지 못한다. 그들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행복은 음식과 이성(異性)과 휴식뿐이다. 그들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행복은 고통과 굶주림뿐이다. 나는 고통이라고 말할 뿐 죽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동물은 죽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과 그 공포에 대한 지식이란 인간이 동물적인 상태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들 중의 하나다.
—p. 70
정념들이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억제를 위한 법률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 정념들이 날마다 우리들 사이에서 일으키고 있는 무질서와 범죄는 이 점에서 법률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무질서가 혹시 법률 자체와 함께 생긴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경우라면 법률이 무질서를 억제할지라도 그 법률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법률이 없으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해악을 막아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 94
도구를 가진 사람들은 많은 여가를 즐길 수 있었고, 그들의 선조들이 알지 못했던 편리함을 얻기 위해 이 여가를 활용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꿈꾸지 않았음에도 스스로에게 부과한 최초의 멍에였고, 그들의 자손에게는 불행의 단초였다. 이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육체와 정신을 유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편리함은 습관이 되자 매력을 상실하고 그들의 실제적 욕구로 변질되어버렸다. 따라서 그것이 없는 고통은 그것이 있을 때 즐거웠던 만큼이나 극심한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편리함을 누려도 행복하지 않은 반면에 그것을 잃으면 몹시 불행해지게 되었다.
—p. 111~112
토지의 경작은 필연적으로 토지의 분배라는 문제를 낳았으며 일단 소유가 인정되자 정의에 관한 최초의 규칙이 생겼다. 각자의 소유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각자가 무엇인가를 소유할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미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장차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재산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기가 남에게 끼칠지도 모르는 피해가 바로 자기에게도 일어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p. 119~120
실체와 외관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별에서 위압적인 호사(豪奢)의 과시와 기만적인 책략, 이에 따르는 모든 악덕이 쏟아져 나왔다. 이전에는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던 인간이 이제는 무수한 새로운 욕구로 인해, 이를테면 자연 전체에, 특히 자기 동족에게 복종하게 되어, 결국 그는 동족의 주인이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
—p. 122
불평등의 진행을 따라가보면, 법과 소유권의 설정이 제1단계이고 행정 권력의 제도화가 제2단계이며 합법적인 권력에서 독단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것이 제3단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자와 빈자의 상태는 첫 번째 시대에 의해, 강자와 약자의 상태는 두 번째 시대에 의해,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세 번째 시대에 의해 성립되었다.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불평등의 마지막 단계로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 정부 권력을 완전히 해체하거나 정당한 제도에 가깝게 만들 때까지는 다른 모든 단계가 거기로 귀착된다.
—p. 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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