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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I : 로마 왕정의 철폐까지일상/book 2020. 12. 18. 15:42
테오도르 몸젠의 <로마사>는 독일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인 동시에 역사서이면서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각별한 책이다. 역사책을 종종 찾아 읽기는 하지만 고대사에 대한 글은 많이 찾아보지 않았는데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희랍 민족의 특징은 개체를 위해 전체를, 시민을 위해 공동체를, 공동체를 위해 민족을 희생시키는 것이며, 삶의 목표는 미(美)와 선(善), 그리고 종종 학문적 여가에 있다는 것이다. 각 도시 국가의 지역 분권주의를 근본적으로 강화하고, 이후 소위 자치 권한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정치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최초로 신들을 인간의 모습으로 만들었으며, 결국 신들을 부정하는 종교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운동에서 거리낌 없이 발가벗은 사지를 드러내 보이며, 구성원들은 어떠한 위엄과 위협에도 맞서는 사상적 자유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로마 민족의 특성은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도록 하고, 시민이 통치자를 섬기도록 하고, 인간이 신들을 경외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로지 유용성을 추구하고 존경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한시도 쉬지 않고 짧은 인생의 매 순간을 노동으로 채우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정숙하게 몸을 가리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동료와의 집단행동을 회피하는 자는 불량 시민이라고 부르며 국가가 전부이고 국가의 확장을 유일하게 높은 이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p. 33
희랍인들에게는 모든 것이 구체적・구상적인 반면, 로마인들에게는 순수하고 투명한 추상성만이 필요했다. 희랍인들이 태고의 신화를 대부분 버린 것은 형상에 개념이 너무도 분명히 표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로마인들이 이를 거의 남겨두지 않은 것은 종교적 개념이 우의적 표상으로 인해 희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보편적인 신화, 이를테면 인도인이나 희랍인, 셈 족에게도 등장하는 대홍수 후의 인류가 하나의 조상에서 태어났다는 신화는 로마인들에게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로마의 신들은 희랍의 신들과 달리 혼인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는다. 또한 로마의 신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모습을 바꾸지도 않으며 신주(神酒)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p. 39
여기서 왕권의 도덕적・실제적 권한이 생긴다. 왕일지라도 지나치게 부당한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국법을 위반하는 행위다. 왕은 병사들에게 분배되는 전리품을 줄이고, 지나친 강제 부역을 부과하고 따르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해 시민의 재산을 부당하게 침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절대적 권한이 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이 대표하는 시민들로부터 신의 승인하에 부여된 것임을 망각하는 행위다. 반면 만일 시민이 왕에게 서약한 충성의 맹세를 잊는다면, 누가 왕을 보호할 수 있을까? 왕은 법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집행하기 위해 왕권을 부여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왕권이 법적으로 제한된다. 왕은 법을 위반할 경우에는 예외 없이 사전에 민회와 원로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이는 법적 효력이 없는 폭군의 행위였다. 로마의 가족제도가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인 만큼, 로마 왕정은 도덕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오늘날의 주권과는 전혀 다른 토대를 갖고 있다.
—p. 95
가장 오래된 로마 정치체제는 이를테면 전도된 입헌군주제의 모습을 띠고 있다. 입헌군주는 국가권력의 소유자이자 담지자로서, 예를 들어 사면은 오로지 그에 의해 가능하고 시민 대표들과 관리들이 이를 실행했다. 그에 반해 로마에서는 영국의 왕이자 사면권의 담지자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시민 공동체였다. 예외를 인정할 권리는 영국에서는 왕에게 있었지만, 로마에서는 시민 공동체에 있었다. 물론 모든 집행권은 공동체의 대표자가 가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떤 다른 시민 공동체도 로마 시민 공동체처럼 그 영역 내에서 절대권을 갖지 못햇으며, 또 건실하게 살아가는 로마 시민만큼 다른 시민들과 국가에 대하여 절대적인 법적 보호를 누린 시민 공동체도 없었다.
—p. 114
영주민의 수는 필연적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줄어들지 않았으며, 시민권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 결과 영주민은 어느새 또 다른, 좀 더 자유로운 지위를 얻게 되었다.
—p. 125
시민에게 최고 수준의 의무를 요구하며 공동체 전체에 대한 개인의 복종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킨 이 나라는 어떤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를 성취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로마가 거래를 제한하는 것만큼이나 거래의 제한 역시 철폐했고 그만큼 자유를 보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허용하는 경우이든 금지하는 경우이든 법은 늘 가차 없이 시행되었다. 피호민이 되지 못한 이방인은 추적당하는 들짐승처럼 취급되었지만, 영주민은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가졌다. 계약은 일반적으로 소송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채권자의 권리가 인정되기만 하면 이는 절대적이었으므로, 채무자가 가난하다고 해서 어떤 구체적인 혜택이 주어지는 경우는 전무했으며 어떤 경우에도 인간적인 참작의 여지는 없었다. 그래서 마치 로마법이 사방으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극단적으로 법적 판단을 집행하는 데서, 그리고 법이 가지는 독재적 성격을 둔한 지성에 폭압적으로 강요하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다.
—p. 227~228
종교는 예술적이고 사변적인 이념을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억에했다. 희랍인은 순진한 원시적 사유라는 뼈대에 인간적 살과 피를 보탰으며, 이들의 신관은 조형예술과 문학의 요소가 되었고, 더 나아가 보편성과 유연성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인간 본성의 내밀한 특징인 동시에 모든 세계종교의 핵심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 단순한 자연관은 우주론이 되고, 단순한 도덕적 계율은 보편적 인간관으로 심화되었다. 오랜 기간 희랍 종교는 자연관과 우주관, 민족적 이상을 전부 수용할 수 있었고, 그 그릇에 담긴 상상과 사상 때문에 그릇이 터지는 일 없이 수용된 내용물과 더불어 깊이와 넓이를 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라티움에서 신의 개념은 매우 구체적이었으며, 굳이 예술과 시인의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은 만큼 분명했다. 라티운 종교는 항상 예술과 거리가 멀었으며, 심지어 적대적이기까지 했다. ......로마 종교는 두 개의 머리를 한 야뉴스 신의 경우를 제외하면 신의 특정 모습을 그리지 않았는데, 바로(Varro)도 대중이 인형과 조각 따위를 원한다며 조롱했다. 이렇게 로마 종교에 창조적 사유가 결여되었던 것은 다시 로마의 문학과 사색이 완성을 보지 못한 이유가 되었다.
—p. 248
그럼에도 라티움이 가진 장점은, 라티움 종교는 대중이 이해하기 용이한 차원으로 바뀌어 모든 이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공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로마 공동체가 종교적 평등을 유지했다는 점이다. 반면 희랍 종교는 최고 지성의 수준에 닿아 있어 처음부터 전적으로 지식 지배계급의 축복과 저주 가운데 서 있었다.
—p. 251
라티움 젊은이들의 신체 단련은 거칠고 강한 것으로, 희랍 체육교육이 목표로 삼고 있는 신체의 아름다운 발달이라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희랍의 공적인 경기는 이탈리아에서 제도들은 아니지만 본질은 변화되었다. 경기는 시민들의 시합이었고 분명 로마에서도 처음에는 그러했지만, 이후 전문적인 기수, 전문 권투 선수의 시합이 되었다. 자유민 혈통이라는 조건이 희랍 축제 경기에 참여하기 위한 첫 조건이었다면, 로마의 경기는 해방 노예와 외국인, 심지어 노예의 손으로 넘어갔다. ......시와 그 자매 문학의 운명도 이와 비슷했다. 희랍인과 독일인만 스스로 샘솟는 노래의 샘을 갖고 있다. 무사이 여신들의 황금 꽃병에서 단지 몇 방울만이 이탈리아의 푸른 대지에 떨어졌다.
—p.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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