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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On Liberty)일상/book 2020. 12. 16. 21:27
“자유”. 너무 상투적이기도 하지만 막상 그 형태를 헤아려보자면 추상적인 말. ‘자유’라고 하면 사실 내게는 크게 두 가지 측면이 떠오르는데, 영어로는 이를 구분해주는 각각의 표현이 있다. 첫 번째는 ‘Liberty’로서의 자유다. 나는 민주화 이후 세대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에 둔감하지만, 개괄적으로 보자면 헌법으로 보장된 기본권—표현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Freedom’으로서의 자유다. 내 기준에서 좀 더 피부에 와닿는 것은 이 두 번째 의미로써의 자유인데, 아마도 두 차례의 금융위기—97년도 외환위기와 08년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오기도 했고 대학시절 시장에 대한 공부를 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여하간 온전한 경쟁상태를 가정하고 규제나 간섭을 멀리하는 의미에서 두 번째 자유는 시장이나 경제에서 즐겨 사용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Liberty’나 ‘Freedom’이라는 말이 칼 같이 나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원제가 <On Liberty>라는 점에서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 ‘자유’에 대한 생각을 펼쳐 보이는데, 상거래와 이를 규제하는 정부의 역할도 일부 논의되는 것으로 보아 자유의 경제적 함의도 함께 다룬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역자는 밀의 <자유론>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하는데, 과연 밀의 글을 읽으면서 지금의 한국 사회를 보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이 일었다.
밀에 따르면 ‘자유’는 인간이 자기 개발로 나아가기 위해 타고난 본질적인 영역이기도 하지만, 다수의 횡포에 의해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성질을 띠기도 한다. 완전한 진리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으며—기독교에 관한 밀의 반성적인 의견도 들을 만하다—완전한 오류라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다. 완전한 진리가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러한 진리는 상대편에 놓인 오류와 경쟁을 거쳐 논증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밀이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보았다는 점에서 자유를 소극적으로 했다고 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유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점을 꾸준히 역설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소극적으로 해석되었다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 밀이 말하는 ‘자유’는 사회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에, 개인의 모든 자유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자유를 행함으로써 다른 누군가의 자유가 훼손된다면, 그 자유는 통제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널리 받아들여지는 생각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까지를 개인의 자유와 사회의 안정성이 충돌하는 지점으로 볼 것인가는 간단하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조금 더 궁금증이 생기는 대목은 밀이 이러한 글을 쓰게 된 배경, 그러니까 사회가 점점 더 양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밀은 시민들이 합리적인 논박을 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면 민주정보다는 독재가 채택될 수도 있다는 과감한 주장을 한다. 하지만 선진적인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고 하던 당시 영국에서조차 흑백 선전과 다수의 탄압은 심심찮게 발생하고, 이미 19세기에 밀 또한 영국 사회를 바라보며 우려스럽게 생각하던 부분이다. 대중매체와 대중문화가 발달하면서 보편적인 취미가 등장했다는 점, 또 다른 한편으로 뿌리깊게 내린 관습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이한 관성을 언급하면서, 무엇이 사회적 갈등의 씨앗인지 밀은 적지 않게 지면을 할애한다.
민주주의 아래에서도 이른바 ‘여론’으로 뭉뚱그려지는 다수의 독재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무지갯빛보다 흑백에 가까운 사회는 보통 중용을 취하는 태도를 곱지 않게 바라볼 뿐만 아니라, 논쟁에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 한다. 반론은 귀찮은 것으로 여겨지고 대안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 모든 것이 시간과 비용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일축된다. 결국 개인의 목소리는 다수의 완고함 앞에 자세를 낮출 수밖에 없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강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하려는 규모 있는 다수만이 경쟁할 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의 글은 자유의 성격과 자유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그려내면서 인간이 자유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나타낸다. 결국 자유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가 스스로 설정해 나가야 하는 것임을 되새기며, 막연했던 ‘자유’라는 개념의 뼈대에 살을 덧대며 가냘픈 생각의 조소(彫塑)를 빚어보았다. [終]
권력을 행사하는 ‘인민’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과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자치’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스스로를 지배(government of each by himself)하기보다, 각자가 자기 이외 나머지 사람들의 지배를 받는 정치 체제(government of each by all the rest)가 되고 있다.
—p. 26
나는 효용이 모든 윤리적 문제의 궁극적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효용은 진보하는 존재인 인간의 항구적인 이익(permanent interests)에 기반을 둔, 가장 넓은 의미의 개념이어야 한다. 나는 이런 이익 개념 때문에, 오직 다른 사람의 이익에 영향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외부의 힘이 개인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p. 38
우리 생각에 대해 철저한 부정과 비판 과정을 거친 뒤, 그래도 살아남은 생각에 입각해서 어떤 행동에 나선다면 그 행동의 타당성은 매우 높아질 것이다.
—p. 55
인간이 내리는 판단의 힘과 가치는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그것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p. 57
비록 자기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충분히 자주, 그리고 기탄없이 토론을 벌이지 않을 경우 그것은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니라 죽은 독단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p. 83
진리와 오류 사이의 논쟁은 진리를 더욱 분명히 이해하고 또 깊이 깨닫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이다. 그러나 서로 대립하는 두 주장 가운데 하나는 진리이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으로 확연히 구분되기보다는, 각각 어느 정도씩 진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p. 102
그리스도교 도덕은 반동적인(reaction) 성격이 매우 강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것은 이교도들과의 투쟁을 통해 기본 성격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기본 지향은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이다. 적극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다. 고귀함보다는 결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선을 활기차게 추구하기보다는 악을 억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계율에는 ‘어떤 일을 하라’는 것보다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압도적으로 많다.
—p. 109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최고 의지(Supreme Will)라고 생각하는 존재에 복종할 수는 있어도, 최고선(Supreme Goodness) 개념에 공감하거나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은 하지 못한다.
—p. 112
욕망(desires)과 충동(impulses) 역시 신념과 자제 못지않게 완전한 인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충동이 강하다고 해서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다시 말해 특정 종류의 목표와 성향은 강하게 발전하는데, 그와 함께 있어야 할 다른 것들은 약하고 활발하지 못할 때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이 너무 강해서 나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양심(conscience)이 약한 것이 문제이다.
—p. 130~131
정부 기관이 너무 많은 일상의 활동을 관할하게 하지 않으면서, 권력 집중과 지적 능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p. 232
효율성을 지키면서 최대한 권력을 분산하라. 그러나 정보는 가능한 한 중앙으로 집중시킨 뒤 그곳에서 분산시켜라.
—p.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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