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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 산(Der Zauberberg)-上일상/book 2020. 12. 6. 00:01
매우 독창적인 작품이다. 독일인 특유의 분석적인 글쓰기가 느껴지면서도 분방(Decadance)한 느낌도 섞여 있다. 또 휴양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로부터는 당시 독일의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분위기도 엿볼 수 있다. (소설이 쓰여진 시점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4년도다.) 이러한 독일적인 정신은 소설 속 이탈리아인 세템브리니와 대조적이다. 똑같이 민족주의의 열기가 나라를 뒤덮었지만 독일과 달리 이탈리아의 민족주의는 보다 급진적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이 현자(賢者) 세템브리니는 르네상스의 본고장(북이탈리아의 파도바)에서 온 사람답게 인본주의적인 견해로 한스 카스토르프를 여러모로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앞으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더 지켜봐야겠다!!:P
여행을 떠나 이틀만 지나면 사람은—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를 박지 않은 젊은이가 특히 그렇듯이—의무, 이해관계, 근심과 희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즉 일상생활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그것도 역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어쩌면 자신이 꿈꾸었을지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멀어지게 된다. 여행자와 고향 사이에서 돌고 날면서 굴러가는 공간은 보통 시간만이 갖고 있다고 생각되는 힘을 발휘한다. 그 공간도 시시각각 시간과 꼭 마찬가지로 내적 변화를 일으키는데, 어떤 의미에선 시간을 훨씬 능가하는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망각의 힘을 지닌다. 더구나 공간은 인간을 여러 관계로부터 해방시켜 주며, 인간을 자유로운 원래 그대로의 상태로 옮겨 놓으면서 그러한 망각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공간은 고루한 사람이나 속물조차도 잠깐 사이에 방랑자와 같은 인간으로 바꾸어 버린다. 사람들은 시간을 망각의 강이라고 하지만, 멀리 떨어진 곳의 공기도 그러한 종류의 음료수이다. 그리고 그 효력은 시간만큼 철저하지는 못하지만 시간의 효력보다 더 빠르게 나타난다.
—p. 14~15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 자신의 개인적 생활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가 사는 시대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우리는 우리 존재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보편적이고 비개인적인 토대를 절대적이고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며 이에 대해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선량한 한스 카스토르프가 실제로 그랬든 그러한 토대에 결함이 있을 경우 자신의 정신적 건강이 이로 인해 막연히 침해받는다고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개인은 여러 가지 개인적인 목표와 목적, 희망과 전망이 눈앞에 떠다니고 있어 이러한 것들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 행동으로 몰고 가겠다는 원동력을 얻어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주위의 비개인적인 것, 즉 시대 그 자체가 외견상 매우 활기를 띠고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 희망이나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면, 또 시대가 우리에게 희망도 없고 전망도 없으며 해결책도 없다는 것을 남몰래 인식시켜 주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시대에 대한 어떤 형태의 질문—즉 우리의 모든 노력과 활동이 지닌, 개인적인 의미 이상의 궁극적이고도 절대적인 의미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공허한 침묵을 계속 지키고 있다면, 그러한 사태로 인한 모종의 마비 작용을 보다 솔직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거의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에 시대가 납득할 만한 답변을 해주지 않는데도, 현재 주어진 정도를 넘어서는 중대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지니려면, 흔히 볼 수 없는 영웅적 속성의 정신적 고독과 자주성이나 식을 줄 모르는 활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스 카스토르프의 경우에는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도 역시 정말 존경할 만한 의미에서이지만, 그는 펴범하다고 할 수 있었다.
—p. 67~68
⎡좋아. 그러면 시간을 인식하는 기관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린 시간이 흘러간다고 말하지. 좋아, 그러니까 시간이 흘러간다고들 하지. 하지만 시간을 잴 수 있으려면…… 잠깐 기다리게! 측정이 가능하려면 시간이 균등하게 흘러가야 하네. 그러나 시간이 균등하게 흘러간다고 대체 어디에 쓰여 있는가? 우리 의식에서, 시간은 결코 균등하게 흘러가지 않아. 우리는 어떤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다고 가정할 뿐이야. 따라서 우리의 시간 단위는 단지 약속이나 관습에 불과한 거야.⎦
—p. 132~133
명예는 중요한 특전을 주지만, 불명예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으로, 오히려 불명예의 특전이 무제한의 성질을 지닌다.
—p. 160
⎡육체가 없는 영혼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마찬가지로 비인간적이고 끔찍합니다. 물론 전자가 드문 예외이고, 후자가 보통이긴 합니다. 일반적으로 육체는 무성하게 자라 여기저기 압박을 가하며, 또 모든 중대한 일과 모든 생명을 독점하여 아주 불쾌하게 독립을 꾀합니다. 그것이 육체입니다. 환자로 살아가는 인간은 단지 육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간성에 반하는 것이며 굴욕적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인간은 썩은 고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p. 195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일상생활의 흐름 속에 중간 휴식이나 막간극으로, 그것도 <휴양>이라는 목적으로 끼워 넣는다.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아무렇게나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것에 잘못 물들어 무기력해지며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을 경우, 또 이미 그러기 시작한 경우에 이것을 새롭게 하고 변혁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생활을 오랜 세월 계속할 경우, 어떤 이유에서 유기체가 이처럼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일까? 그 원인은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충족하며 살아가는 동안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와 마멸에 있다기보다는(이 경우에는 간단히 쉬는 것만으로 몸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신적인 것, 즉 시간의 체험에 있다—시간의 체험은 매일매일 똑같은 생활을 계속함으로써 마멸되어 버릴 위험이 있으며, 생활 감정 자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한쪽이 약화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쪽도 비참한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루함의 본질에 대해서는 잘못된 생각이 다양하게 퍼져 있다. 내용이 흥미롭고 참신한 경우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즉 시간이 지나가는 간격이 짧아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단조롭고 공허한 경우에는 시간의 걸음을 힘들게 하고 방해한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올바른 견해라고는 할 수 없다. 공허하고 단조로운 것은 한순간과 한 시간 등의 흐름을 잡아 늘여 <지루하게> 할지 모르나, 엄청나게 커다란 시간 단위일 경우에는 이것을 짧게 하고, 심지어 무(無)와 같은 것으로 사라지게 한다. 이와 반대로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을 때는 한 시간이나 하루 같은 시간이 짧게 여겨지고 훌쩍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 단위를 아주 크게 하면 시간의 흐름에 넓이, 무게, 부피가 주어진다. 그렇게 되면 사건이 풍부한 세월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빈약하고 공허하고 가벼운 세월보다 훨씬 더 천천히 지나간다. 따라서 우리가 지루함이라고 명명하는 것, 그것은 사실 생활의 단조로움으로 인해 생겨나는 시간의 병적인 단축이다.
—p. 202~203
이 두 분 할아버지에게는 나름대로 아름다운 점과 존경할 만한 점이 있다고 카스토르프는 생각했다. ……세템브리니의 할아버지는 정치적인 권리를 얻기 위해 싸웠던 것이지만, 자신의 할아버지나 선조들은 원래부터 모든 권리를 장악하고 있다가, 4백 년이 지나면서 폭력과 허튼 소리를 일삼는 천민들에게 이 권리를 빼았겼기 때문이다……. 북쪽의 할아버지와 남쪽의 할아버지, 이 두 분은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 다녔다. 그 목적은 자신과 타락한 현재 사이에 엄격하게 거리를 두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쪽 할아버지는 자신의 본질에 속하는 과거와 죽음을 위해 경건한 심정에서 검은 옷을 입었으며, 이에 반해 다른 할아버지는 반역을 꾀하려는 마음에서 경건과는 적대적인 진보를 위해 검은 옷을 입었던 것이었다.
—p. 299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간의 양심이란 얼마나 속기 쉬운가! 인간이란 의무의 소리 중에서도 열정에 몸을 내맡기게 허락하는 소리를 가려듣는 데 얼마나 일가견이 있는가! 한스 카스토르프는 의무감에서, 공정과 균형을 기하기 위해 세템브리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의 말에 감화를 받아 보겠다는 준비가 되어 있어서, 이성, 공화국 및 아름다운 문체에 대한 그의 견해를 호의적으로 비판하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나중에 자신의 생각과 꿈을 이와는 다른 방향, 반대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펼쳐도 될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 우리가 가진 모든 의혹이나 우리가 얻은 모든 통찰을 솔직히 표현한다면, 그는 자신의 양심이 그에게 발급해 주지 않으려 하는 어떤 특별 허가증을 자신의 양심으로부터 교부받으려는 목적으로 세템브리니의 말에 귀 기울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애국심, 인간의 존엄성, 아름다운 문학과는 다른 방향, 이와 반대되는 방향에는 무엇이, 또는 누가 있었던 것일까? 한스 카스토르프가 이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다시 그쪽으로 돌려도 괜찮겠다고 느낀 방향에는 무엇이 또는 누가 있었는가?
—p. 310
……우리가 환자로서 침대에 누워 보내는 나날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 버리는가를 독자들 누구든지 상기한다면 지금으로서는 충분하다. 매일이 언제나 되풀이되는 똑같은 나날이기는 하지만, 언제나 똑같기 때문에 <되풀이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그렇게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단조로움이라든지 언제나 계속되고 있는 현재, 또는 영원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어제 당신에게 제공되었던 것과 똑같은 정오의 수프가 오늘 제공되고, 내일도 마찬가지로 오늘과 똑같은 정오의 수프가 제공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이와 똑같은 순간, 즉 영원의 바람결을 느끼게 된다 —그 바람결이 어떻게, 어디서 불어오는지 당신은 모른다. 수프를 날라 오는 것을 보면서 당신은 현기증을 느끼게 되고, 시칭이 희미해지고, 시간이 서로 뒤섞여 흘러가게 된다. 그리하여 존재의 진정한 형식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당신에게 영원히 수프가 제공되는 너비도 길이도 없는 현재인 것이다.
—p. 356
⎡죽음을 관찰하는 강하고 고귀한 방식은, 게다가 종교적이기도 한 유일한 방식은, 말하자면 죽음을 삶의 일부분이자 그 부속물, 삶의 성스러운 조건으로 파악하고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하고, 고귀하고, 합리적이고, 종교적인 것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정신적으로 어떻게 해서든 삶과 떼어 놓고 삶과 대립시키며, 심지어 구역질 나게도 삶을 천하게 하고 죽음을 높이려는 관찰 방식이 아닙니다. ……고대인들은 죽음을 존경할 줄 알았습니다. 죽음은 삶의 요람으로서, 갱신(更新)의 모태로서 존경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삶과 떼어 놓고 생각해 보면, 죽음은 유령이자 추한 얼굴—그리고 더 한층 고약한 것으로 변하고 맙니다. 정신적으로 독립한 힘으로서의 죽음은 극히 방종한 힘이며, 그 힘의 사악한 매력이 아주 큰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힘에 공감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가장 비참한 착오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p. 389~390
……오직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은 이용 가치가 있는 음식물의 영양가를 소화 기관이 흡수할 겨를도 없이 대량으로 그냥 지나가게 하는 대식가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말하자면,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인간을 더 강하게 할 수 없듯이, 기다리기만 한 시간은 사람을 늙게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순전히 기다리기만 하고, 그 외의 다른 일은 생각하지도 않는 경우는 실제로 일어날 수 없겠지만 말이다.
—p. 466
⎡<정신 분석의 어떤 점이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당신은 물었습니다.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분석이 교화와 해방, 진보를 지향하는 한 말입니다. 분석이 무덤의 추악한 썩은 냄새를 동반할 때는 존지 않습니다. 육체에 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육체의 해방과 아름다움, 관능의 자유, 행복과 쾌락을 추구할 때 육체는 존중되고 옹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둔중함과 나태의 원칙이 되어 광명으로 가는 움직임을 방해할 때 육체는 멸시되어야 합니다. 육체가 병과 죽음의 원칙을 대변할 때, 육체의 특수한 정신이 전도(顚倒)의 정신이면서, 또 부패와 욕정과 치욕의 정신일 때, 그럴 때 육체는 경멸받아야 합니다……⎦
—p. 488~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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