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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젠의 로마사 III : 이탈리아 통일에서 카르타고 복속까지일상/book 2021. 1. 13. 02:02
한니발은, 이탈리아에서 드러난 그의 모든 행동 방식으로 보건대, 두 가지 기본 원칙에 충실했다. 첫째로 작전 계획과 교전 지역을 수시로 변경함으로써 전쟁을 일종의 모험처럼 이끈다는 것이었고, 둘째로 전쟁의 궁극적 목표는 군사적 성공이 아니라 정치적 성공에, 즉 이탈리아 연방의 점진적 분열과 최종적 붕괴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원칙은 필연적이었는바, 다각도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균형을 이루기 위한 그의 유일한 무기는 군사적 천재성을 십분 발휘하는 것뿐이었는데, 그러려면 늘 예측 불가능한 전술 조합으로 적군을 유인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그가 패전하는 것이었다. 또한 한니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정치적 안목에 따른 것인데, 전투의 강력한 승자였지만 매번 수도 로마가 아니라 로마의 총사령관을 물리쳤을 뿐이며, 자신은 로마 장군들을 압도했지만 매번 전투에서 로마 병사가 카르타고 병사를 압도함을 그는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한니발이 행운의 정점에서도 이런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는 점은, 전투에서의 놀라운 승리를 능가하는 매우 경탄할 만한 일이었다.
—p. 167~168
이번 3권은 전권들에 비해 분량이 약간 가벼운 편이다. 내용으로는 로마가 북부 이탈리아의 켈트족을 복속시킴으로써 이탈리아의 자연적 경계를 아펜니노 산맥에서 알프스 산맥으로 확장하는 과정이 하나 담겨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하고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지중해 너머 카르타고 세력을 굴복시키고 비로소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는 과정이 또 하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이탈리아 반도 내에 대륙세력으로 머물러 있던 로마는 기원전 4~3세기에 이르러 점차로 해양세력까지 겸비하게 된다.
결과론적으로만 보자면 카르타고의 완전한 패배다. 하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가장 부각되는 인물은 스키피오를 비롯한 로마의 여러 사령관들도 아닌, 한니발이다. 국가(카르타고)의 지원을 등에 업지 못한 채 히스파니아에서 출발한 한니발은 크게 세 차례의 전투를 치른다. 트레비 전투, 트라시메노 호수 전투, 칸나이 전투. 결정적인 이들 전투에서 한니발은 승리를 쟁취했고, 도시 로마인들이 ‘성문 앞의 한니발’이라 일컬었을 만큼 한니발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사실 ‘한니발’이라 하면 코끼리를 동원하여 알프스를 넘은 명장군이라고 막연하게 알고 있었을 뿐, 알프스를 넘은 뒤에도 이탈리아 반도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뛰어난 지략을 펼친 장군이라고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용병술도 뛰어나지만, 로마 연맹체를 뒤흔들기 위해, 캄파니움, 삼니움, 브루티움, 에트루리아, 그밖에도 알프스 너머 켈트족과 히스피아인들까지 동원하여 로마 안에 분열과 동요를 꾀했던 것을 보면, 이게 과연 한 명의 장군이 당해낼 수 있는 일인가 싶다. 심지어 아드리아 해 너머 마케도니아와도 교섭을 꾀하는데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전쟁의 막바지에 이르러 브루티움의 레기온 일대에서 배수진을 치다 카르타고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한니발이지만, 과연 ‘일당백’이라는 말에 꼭 걸맞는 인물이지 않나 싶다.
결과적으로 로마가 카르타고에 승리를 거두었기에 더 색안경을 끼게 되는 까닭도 있겠지만, 책에서 카르타고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테오도르 몸젠에 따르면, 카르타고를 구성하는 페니키아 인들은 문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문명을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상업에 종사한다는 사실로 미루어 이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 그리스 문명이나 오리엔탈 문명을 능가하는 수준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로마가 시킬리(시칠리아) 섬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하기 이전까지 지중해 무역을 독점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부와 향락으로 인해 카르타고의 정치체제는 취약성을 드러낸다. 귀족들은 당파싸움에 빠져 대외 여건을 적시에 읽지 못하고, 가혹한 과세정책을 추진하여 누미디아와 같은 주변국의 반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하지만 3권을 다 읽고 나면 결국 로마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우수한 정치체제를 지녔기 때문이라기보다 그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 옛날 고대인들이 왜 신전에서 점을 보고 점성학에 빠졌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무기나 군사의 수준이 높지 않고 이동의 자유도 높지 않던 당시에는 아주 우연한 요인이 하나가 까딱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 승패도 완전히 달라졌던 것 같다. 점점이 흩어져 있던 씨족들의 도움을 받아 알프스를 넘거나 용병들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또는 유능한 장군을 얻는 것은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니 말이다. 4권은 3권보다 책이 좀 더 두툼한데 내용이 벌써 기대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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