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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의 시대(Le temps des tribus)일상/book 2021. 1. 8. 23:15
나누어서 / 생각해보기 // 책에 / 쓰인 / 개념을 / 바탕으로...
개인—사람
사회적인 것le social—사회성socialité
경제적—생태적
개인적—부족적
합목적적—망아적
로고스—에토스
폴리스Polis—티아소스Thiasos
합의—교환
일원론—다양성
대문자 역사—소문자 역사
내용contenu—용기contenant
추상적(기계적, 합리적, 도구적)—감정적(유기적, 상상적, 정감적)
외연ex-tension—내포in-tension
선적 공간—면적 공간
종교적-비의적
도덕—윤리
기능—역할
평등—위계/형식
역사—신화
인력—척력
구심력—원심력
세계시민주의—뿌리내리기
제도—아우라
권력—역능
교제—유보
극복—소진
서양—동양
제1법칙 사회적 구조화의 다양한 방식은 그 지주 역할을 하는 대중적 기반에 부합하는 한에서만 가치를 지닌다.
제2법칙 권력은 삶vie의 관리를 떠맡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며, 그에 비해 역능은 생존survie을 책임진다.
지하의 중심성의 가설
때때로 비밀은 제한된 집단의 틀 속에서 타자성altérité과의 접촉을 확립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동시에 비밀은 이 집단이 외부—그것이 무엇이건 간에—에 대해 갖는 태도를 조건짓는다.
사회적인 것le social의 특징 : 개인은 사회 안에서 한 가지 기능을 가질 수 있었고, 하나의 정당, 하나의 결사체, 하나의 안정된 집단 안에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었다.
사회성socialité의 특징 : 사람(페르소나persona)은 직업 활동만큼이나 자신이 참여하는 다양한 부족 안에서 여러 역할을 수행한다. 무대의상을 갈아입고 자신의 (성적, 문화적, 종교적, 친목의) 취향을 따르면서, 매일 세계극장theatrum mundi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다양한 연기를 펼친다.
—p. 150
“우리 모두 같으면서 다르다. 원 중심과의 관계에 있어 원둘레의 모든 점이 같으면서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p. 218
「부족의 시대(le temps des tribus)」. 처음에는 원제를 ‘부족(不足)’으로 잘못 이해했더랬다. 목차에는 ‘부족주의’라는 챕터가 들어가 있는데,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부족주의(部族主義)’라는 개념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여하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게 이런 느낌이구나 하며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합리적인 것’과 ‘합리적이지 않은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언뜻 이 두 표현은 다르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자는 합리주의의 ‘내포(內包)’를, 후자는 ‘외연(外延)’을 도맡는다. 좀 더 쉽게 말해, ‘비합리적인 것’은 합리주의 ‘안’에서 합리적으로 여길 수 없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합리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합리주의 ‘바깥’에 놓인 것을 말한다. 미셸 마페졸리가 분석을 시도하는 ‘생(生氣)기론’이 ‘합리적이지 않은 것’에 해당한다. 다시 말해, 때로는 변덕스럽지만 주위의 사물과 네트워크—저자는 이를 ‘근접성’으로 표현한다—에 애착을 갖고 때로 관망하기도 하는 대중에 역점을 두고 쓰인 글이다.
우리는 그동안 합리주의라는 틀 안에서 비이성적인 정황을 해석하고, 국가라는 틀 안에서 (경제학적) 개인주의를 분석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모더니즘적인 접근방식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더 이상 합리주의나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정치적 무관심은 부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없다. 대중들은 수동적이지 않으며 능동적인 주체다. 그들은 기성 정치에 ‘관망’이라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합리주의를 조롱하고, 억압된 감정이나 불만을 같은 부족 안에서 축제적인—또는 디오니소스적인—방식으로 슬기롭게 해소해나간다. 미셸 마페졸리는 이를 ‘신부족주의’라 명명한다.
미셸 마페졸리가 글을 쓰는 방법은 (사회과학적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은유적이며, 관심분야도 동양철학과 과학까지 망라한다. 예를 들어, 그는 합리주의가 끌어당기는 인력과 부족주의가 밀어내는 척력을 우주과학 속 ‘블랙홀’에 비유하기도 한다. 합리주의가 빨려들어가는 종착점이 부족주의로 승화되는 시작점이다. 코스모스(질서 있는 세계; cosmos)와 카오스(혼란스러운 세계; chaos)는 서로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사회학에서 이러한 서술 방식은 매우 생소하고 어색하다. 하지만 미셸 마페졸리는 합리주의라는 독사(doxa)를 타파하기 위해서 굳이 정면 돌파를 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는 전통적인 사회과학적 분석을 포기하고, 대안적인 용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함으로써 합리주의를 난처하게 하는 우회 전략을 구사한다.
게다가 ‘다문화주의’ 챕터에서 미셸 마페졸리는 지배 엘리트와 대중의 이원적 구성 안에 중간 형태로 ‘부족’을 삽입시킨다. 이처럼 이원론 안에서 변증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는 대신에, ‘부족’이라는 세 번째 요소를 첨가함으로써 삼중주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로써 국가 대 시민의 대립이라는 단조로운 이분법적 분석에서 탈피하고, 좀 더 다채롭게 사회 역학을 이해한다. 미셸 마페졸리는 이를 갈등적 조화, 양립가능한 모순, 반대의 일치라는 상반된 형용사를 결합하여 서술한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의 역능(puissance)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공감하는 것 : “살균된 세계”
미셸 마페졸리는 68세대가 이끌었던 진보 정치에 대한 회의(懷疑)로부터 질문을 던진다. 학생운동을 주도하고 이른바 지식인 계층의 주축을 이루었던 68세대가 제창해 왔던 것은 ‘정의’, ‘정치적 올바름’, ‘권익’과 같은 좋은 말들이었다. 문제는 합리주의에 기반한 이런 표현들이 그 수명을 다 한 것 같다는 점이다. 대중은 더 이상 무엇이 정의로우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좋은 것인지 전문정치가들이 하는 말에 관심을 두지 않거나 피로감마저 느낀다.
물론 형이상학이나 철학, 그밖의 학문 영역에서 ‘정의로움’이나 ‘좋은 삶’에 대한 논의나 연구는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인 실천 영역에서 이러한 수사학적 표현들은 너무 빈번하게 활용된 나머지 힘을 갖지 못한다. 68세대는 변화를 부르짖으며 합리주의적인 개념—정의, 공정성, 평등 따위의—을 선점했지만, 그들이 추구한 것은 천진한 생각(사변적인 것이 곧바로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었거나 책임지지 못할 수사적 표현을 남용했다. 전문정치가들은 어떤 방향을 제시해 줄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대중들은 그들이 예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이러한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모든 개인이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경제학적 전제가 사실 그리 튼튼하지 않다는 점, 각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여러 측면에서 사회가 빠르게 다원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현실 정치에서 말하는 여러 이념과 아이디어는 닳고 닳아 새하얗게 표백된 상태에 다다랐다. 결국 대중은 ‘합리주의’가 닦아 놓은 지나치게 살균된 사회에 살아간다. 살균된 사회에서 오래된 담론과 구태의연한 정치적 개념은 무력하다. 대중과 부족이 지닌 역능을 받아들일 때라야 사회・정치・문화에서 새로운 변화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 때문에 미셸 마페졸리는 개인의 합리성을 확신하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자연과의 어울림을 추구하는 생태학적 관점으로 우리의 삶의 인식을 옮겨가야 할 것을 주장한다.
공감하기 어려운 것 또는 남는 궁금증 : “포퓰리즘의 대두”
미셸 마페졸리는 정치가들의 지배논리는 ‘로고스’에, 부족의 역능(간단히 말해 ‘힘’)은 ‘에토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수사적(rhetoric) 요소는 로고스(논리), 파토스(감정), 에토스(관습, 성격)의 세 가지다. 이 지점에서 미셸 마페졸리는 부족의 역능은 파토스가 아니라 에토스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에토스라는 것은 「부족의 시대」에서 말하는 ‘아우라’와도 관련이 있다. 한 사람 또는 한 공동체에서 풍기는 느낌, 분위기, 아비투스(habitus)처럼 정형화되지 않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영감을 주는 것을 아우라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를 펼칠 때 로고스나 파토스보다도 에토스에 가장 큰 비중을 두었고, 설득에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대중과 부족에 대한 미셸 마페졸리의 인식은 너무 낙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미셸 마페졸리가 따로 짚고 넘어가지 않는 ‘파토스’로 관점을 돌려보자. 우리는 묘한 방식으로 파토스(감정)의 수사학이 크게 작동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를 특히 포퓰리즘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포퓰리즘 정치에서 정치인들은 여러 종류의 부정적 감정들을 끌어들인다. 혐오와 분열의 정치.
전문정치가들은 ‘로고스’로 위장한 ‘파토스’로 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한다. 그리고 부족이 자체적으로 지닌 유기적이고 창설적인 성질(에토스)은 파토스에 빛이 바랜다. 엘리트(인력)와 대중(척력)을 대립항으로 인식하는 미셸 마페졸리의 관점도 여기에는 통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에서 앞장서는 정치가나 그 지지자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광기의 도가니로 빠져든다. 미셸 마페졸리가 이 책을 출간했던 1998년도에도 적지 않은 국가들이 포퓰리즘에 신음하고 있었지만, 오늘날 만큼 ‘분열과 혐오’가 전세계적으로 부각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결국 독자로서는 20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독서를 해야겠지만, 오늘날 ‘부족’이라는 것이 정말 순기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 앞에서는 주저하게 된다.
나가며..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실체도 잘 보이지 않고 다소 모호하게 느껴졌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이나마 윤곽을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너무 방대한 은유와 신화, 모티브, 다른 학자들의 학설—뒤르켐, 루소, 베버, 짐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인용된다—이 다뤄져서 이걸 잘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많은 부분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중의 역능'을 말하기 위해, 대중이 수용하기 쉬운 글 대신 이렇게까지 현학적인 글쓰기를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기성 합리주의를 빈틈없이 반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말, 새로운 어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글쓰기를 할 수 있기 까지 대단히 많은 학문적 훈련과 지적 연습이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의 사회가 잘 작동하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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