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책을 읽는 건 언제나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옛날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사실은 지금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람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막상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연도나 인물을 달달 외우지는 못한다. 그냥 역사책을 읽는다는 건, 여러 제국들의 흥망성쇠,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거대한 변화들을 접한다는 것이고 그 자체가 흥미를 당긴다.
중앙아시아사에 관한 책은 이전부터 읽어보려고 몇 권을 봐두었었다. 결국 피터 B. 골든의 「중앙아시아사: 볼가강에서 몽골까지」를 택한 건 가장 간명하게 중앙아시아사에 대해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엽적인 시기 또는 국가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개괄적인 글이 필요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 정권이 다시 들어서면서 여러 국제적 이슈들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에 관한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은 세계 정세를 보다 깊이 이해하는 측면에서도 유익했다. 그렇지만 실제 읽을 때는 잠들기 전에 수면제나 다름없이 꾸벅꾸벅 졸며 읽었던 책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흥미롭다고 느꼈던 부분은 아무래도 이슬람교에 관한 내용들이다. 이슬람교는 불교나 그리스도교보다 한참 늦게 출현했지만 전파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그만큼 확장정책에 융통성이 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유럽과 동아시아를 매개하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종교가 성장했기 때문에, 수백 년간 매우 높은 수준의 과학과 문화를 창출할 수 있었다. 물론 돌궐, 티무르, 몽골 제국과 같은 중앙아시아의 유목 국가들이 로마나 진(秦)나라 같은 정주 국가처럼 거대한 유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슬람과 융합한 중앙아시아의 크고 작은 국가들은,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자면 충분히 '선진국'과 같은 지위를 당시에 구가했던 것 같다. 물론 유럽에서는 훈족의 전투방식이 매우 잔인하고 야만적이라고 언급했지만, 여러 기록과 유물들을 토대로 그들의 문화와 기술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당시 세계의 다른 나라에 크게 뒤처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교와 이들 국가가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 역시 매우 극적이었던 모양이다. 책을 읽다보면 무역로로써 실크로드의 기능이 쇠퇴하는 시기와 유럽의 서세동점이 시작되는 시기가 묘하게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갖 문화의 용광로와도 같았던 중앙아시아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일종의 교착상태에 이른다. 페르시아의 사파비 왕조에는 시아파 이슬람교가 들어서고, 모스크바 대공국은 그리스 정교회의 유일한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위구르 지역 일대의 수니파 이슬람교와 오스만 제국의 수니파 이슬람교가 단절되었다. 여기에 몽골이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중앙아시아에서 종교적인 단절은 한층 심해졌다. 중앙아시아의 유능한 두뇌는 무굴 제국이라는 인도의 유력한 왕조로 유출된다. 실크로드는 점점 활기를 잃어 갔다.
하지만 유럽과 동아시아의 무역로는 계속 필요했기에, 유럽은 육로를 대신할 해양 루트를 찾아나선다. 무역관계에서 수요가 있었던 것은 동아시아보다는 늘 유럽이었다. 그리고 희망봉을 돌아 동아시아로 향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육로를 통한 무역의 중요성은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또 말 위에서 생활하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들의 특성상 화기(火器)와 같은 진보된 서구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마침내 중앙아시아의 제국들은 유라시아 대륙을 동서로 호령하던 위치에서 수세적인 위치로 내몰린다. 책에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대해 중앙아시아 사회가 보인 반응의 하나로써 '살라피야 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오늘날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원형이 아닌가 싶다.
"육로를 통한 실크로드의 기능 약화+서세동점의 본격화" 이외에 책에서 또 한 가지 흥미를 끌었던 건, 페르시아 문화권과 투르크 문화권을 묘사하는 대목들이다. 비록 이슬람교의 확산과 더불어 아랍어가 아시아의 동쪽 깊숙히 침투해 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슬람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이전부터 이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페르시아 문화와 투르크 문화는 서로 간섭을 일으키며 이 일대에 다양한 문화적 변형을 낳았다. (여기에 불교가 더해지는 점을 감안하면 중앙아시아의 문화는 정말로 모자이크와 같다.) 재미있는 점은 페르시아 문화가 일반적으로 세련되고 우아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서, 지배층 사이에 널리 쓰였다는 점이다. 이는 꼭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유럽 궁정들에서 프랑스어 사용을 선호했던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언젠가 지금의 페르시아인 이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오늘날의 이란은 예전처럼 개방적이지도 않고 여러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끝으로 책에는 아프가니스탄이 왜 오늘날과 같은 분쟁을 겪고 있는지 추론해 수 있는 단서들이 아주 조금 나와 있다. 아프가니스탄 일대가 이슬람교와 불교, 페르시아 문화와 투르크 문화, 심지어 몽골 문화가 얽힌 복잡다단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국민국가로 통합을 이룰 만한 민족적 요인이 뚜렷하지 않았다. 두라니 왕조를 기점으로 근대 아프가니스탄이 형성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까지 수많은 나라들이 아프가니스탄의 지도 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어찌 보면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나라에 함께 산다는 관념은 상대적으로 불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데다가, 러시아와 인도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인도를 지배하는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세력 다툼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척박하고 파편화된 여건 속에서 극단적인 사상이 뿌리내리기 쉬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더 읽고 싶어지는 역사책들이 생겼다. 예를 들면 페르시아의 역사, 위구르 지역의 역사 등이 더 알고 싶어진다. 또 초기의 모스크바 공국에 대한 이야기도 궁금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담은 좋은 책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책들은 시간이 될 때 천천히 찾아볼 생각이다:) [fin]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 옛 이란어로 “낙타를 모는 사람”을 의미한다)는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종교 개혁가다. ……아후라 마즈다는 악의 세계의 우두머리인 아리만과의 투쟁을 이끄는 존재였다. 아리만은 유대교-그리스도교-이슬람교의 악마와 유사한 존재였다. 조로아스터는 악과 싸워야 하는 인간의 책임을 강조했다. ……조로아스터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동족에게 즉각적으로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p. 54
부민의 아들들인 카라와 무간, 부민의 동생 이슈테미는 중국의 북부에 거주하는 부족들과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만주에서 흑해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했다. 돌궐 제국은 유럽과 동아시아를 잇는 최초의 유라시아 횡단 국가였다.
—p. 85
소그디아의 남부에는 일직이 쿠샨 왕조와 헤프탈 왕조의 지배를 받은 박트리아가 위치했다. 박트리아는 조로아스터교와 불교의 중심지였다. ……주로 그리스 문자로 기록되었던 이란계 박트리아어에는 셈어파 언어들, 그리스어, 산스크리트어, 사산조 페르시아어, 중국어, 투르크어 차용어들이 존재해 박트리아의 복합적 문화사를 잘 보여준다.
—p. 113
이제 중동에서 아랍인들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식민 세력의 하나가 되었다. 많은 수의 아랍인이 트란스옥시아나와 페르시아의 국경지대를 포함한 정복지들에 정착했다. 중동의 셈계 언어 사용 지역에서 아랍어는 현지의 그리스도교들과 유대교도들이 사용하던 같은 셈계 언어인 아람어를 대체했다. 이슬람교는 초기에는 정복 엘리트 집단이 믿는 종교였다.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비록 정복이 개종의 토양을 마련해주었지만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보통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영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동기들이 합쳐진 결과였다.
—p. 131
수피들은 무아경 상태에서 신과의 영적 합일을 추구한 자들이다. 수피라는 단어는 아랍어 수프(양털)의 파생어로 초기의 수피들이 단순한 양털옷을 입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수피는 페르시아어로는 다르비슈라 불렸고, 영어의 dervish가 되었다. 수피즘은 원래 개인적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후에는 수도회 혹은 종교 교단으로 발전했다.
—p. 148~149
<쿠타드구 빌릭>의 저자 유수프 하스 하집은 동카라한 카간국의 수도 발라사군 출신이었다. 그는 분노 때문에 급하게 한 일은 설익은 음식처럼 병을 가져올 것이라고 저서에서 경고한다. 처벌은 신중한 숙고 끝에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p. 156
몽골 정권들이 붕괴되고 국제무역에 차질이 생기자 이 상업적 교역망의 주변부에 존재했던 서유럽인들은 동방으로 가는 대체 루트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슬람권 중동은 이에 잘 대응하지 못했다. 9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한 압바스 칼리프국은 고전적 아랍-이슬람 문명의 전통들과 함께 휩쓸려 사라졌다. 11세기에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도래한 이후로 초원의 유목민들이 이슬람 세계의 중심부를 계속 지배해나갔다. 강력한 정치・군사・종교 세력으로서의 이슬람은 14세기에 오스만 제국하에 부활했다. 오스만인들의 핵심 세력은 칭기스 세계의 주변부에 거주하던 투르크인 집단에서 기원했다. 이들은 몽골 제국이라는 회오리바람이 만들어낸 여러 집단 중의 하나였다.
—p. 192
티무르는 모순적인 사람으로서 이슬람 지식인들을 곁에 두는 것은 좋아했지만 샤리아뿐 아니라 전통적인 유목민 법(‘토레’ 혹은 ‘야사’)도 따랐다. 티무르는 이슬람 사원과 학교들을 후원하기도 했지만 그의 군대는 이슬람교도들을 노예로 삼고 모스크들을 파괴했다. ……티무르는 동시대의 다른 유목민 엘리트처럼 한 발은 도시화된 이슬람 세계를 밟고 있었고 다른 한 발은 초원의 이교도 세계를 밟고 있었다.
—p. 207
16세기 들어 중앙아시아는 점차 서로 경쟁하는 제국들에 둘러싸이게 되었다. 사파비 왕조의 샤 이스마일은 이란을 정복하고 시아파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았다. ……이후 시아파 국가인 이란은 수니파 중앙아시아가 가장 강력한 수니파 이슬람 국가였던 오스만 제국과 직접 교류하는 것을 방해했다. 1550년대에는 모스크바 대공국이 볼가강 유역의 주치 울루스 계승 국가들을 정복해,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무슬림 투르크 민족들 사이에는 또 다른 장벽이 생겼다. 최고 종교 스승 달라이 라마를 정신적 지도자로 받드는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불교권 몽골은 이슬람권 투르크-페르시아로부터 분리되었고 칭기스 세계는 더더욱 분열되었다.
—p. 229~230
1453년 오스만 투르크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후 모스크바 대공국은 스스로를 정교회의 마지막 전초 기지라고 여겼다.
……1547년부터 ‘차르’(황제) 칭호를 스스로 사용해온 이반 4세는 볼가강 유역의 칸국들을 정복한 후에는 비잔티움 황제들과 몽골 칸들의 계승자임을 자쳐했는데, 이것은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선언이었다. 러시아는 이반 4세의 정복 활동을 이슬람에 대한 십자군 전쟁으로 묘사하는 한편 무슬림 타타르인들을 그리스도교로 집단 개종시키려 했다. ……그리고 광범위한 식민지화가 따랐다.
—p. 234~235
1500년부터 190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팽창하는 구가 중 하나였던 러시아는 하루에 약 50제곱마일(₩30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획득해나갔다. ……당시 유목민들의 약탈은 막대한 인적 희생을 가져왔다. 18세기 전반기까지도 많은 수의 러시아인이 포로로 잡혀갔다. 러시아가 아프리카에 견줄 만한 노예 공급자가 되었던 것이다.
—p. 236
우즈벡 칸국들의 남부에서는 헤라트 출신의 파슈툰인 수령 아흐마드 두라니 칸이 정복과 외교 활동을 통해 파슈툰인, 타직인, 우즈벡인, 투르크멘인, 몽골인으로 구성된 나라를 수립했다. 불안한 통합을 이루었던 이 나라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으로 발전했다. 영국은 이 나라를 인도에 눈독을 들이던 러시아에 대한 완충물로 여겼다.
—p. 269
중앙아시아에서 개혁과 일신은 이슬람의 부흥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그리고 유럽의 위협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종교와 문화의 일신, 교육 개혁,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족의식, 즉 민족주의의 등장이라는 단계들을 거치며 이루어졌다. 그런데 개혁 운동에는 다른 시각들이 존재했다. 살라피야 운동(아랍어의 ‘살라프’는 ‘조상’을 의미한다)은 초기 이슬람의 가치와 관습으로의 회귀를 주장했다—이 운동은 모든 혁신을 거부하는 근본주의 입장으로 보통 받아들여졌다.
—p. 279
'일상 >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미지의 삶과 죽음 (0) 2021.11.20 쇼코의 미소 (0) 2021.11.03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 요법 (0) 2021.09.11 The Economic Institutions of Capitalism (0) 2021.09.08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0) 2021.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