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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사적으로 볼 때 근대 사회철학의 등장은 사회적 삶을 근본적으로 ‘자기보존’(Selbsterhaltung)을 위한 투쟁관계로 규정하려는 계획에 따른 것이다. 예를 들어 마키아벨리의 정치 저술에서 주체들이란 자신의 이해를 둘러싼 지속적 경쟁 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정치적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나아가 이러한 견해는 토머스 홉스의 저작 속에서 국가의 주권을 계약론적으로 정당화하는 중대한 토대가 된다. 이러한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새로운 사고 모델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중세까지 효력을 발휘했던 고대 정치이론의 주요 구성 요소들이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전적 정치론에서 중세의 기독교적 자연권이론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근본적으로 일종의 공동체적 존재, 즉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로서 파악되어 왔으며, 이러한 존재는 자신의 내적 본성을 실현하기 위해여 정치적 공동체라는 사회적 틀과 관련을 맺는다. 다시 말해서 오직 폴리스(Polis) 또는 시비타스(Civitas)라는 인륜적 공동체 안에서만, 즉 경제 활동이라는 단순한 기능적 연관과 달리 상호주관적으로 공유된 덕성을 특징으로 하는 공동체 안에서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사회적 규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학은 이를 위해 적절한 제도와 법규에 대한 연구인 동시에 좋은 삶(das gute Leben)과 정의로운 삶(das gerechte Leben)에 대한 이론이었다.
—p. 35~36
……사회구조의 변화가 이미 명백하게 일어났던 바로 그곳에서 고전적 정치이론의 근대 사회철학적 변신이 이론적으로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키아벨리가 제시한 다양한 주장의 사회존재론적 토대를 이루는 것은 주체들 사이의 영원한 적대적 경쟁 상태에 대한 가정이다. ……마키아벨리의 역사적 비교 분석의 중심범주들은 항구적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 즉 전략적 상호작용의 무한한 그물망 위에서 전개되었던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이러한 그물망을 모든 사회적 삶의 원형적 상태로 보았다. 왜냐하면 이 범주들은 바로 성공적 권력 행위를 위한 구조적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p. 36~37
마키아벨리에서 홉스로 이어지는 120년간은 이와 같은 존재론적 기본 신념에 과학적으로 근거 지어진 더욱 성숙한 형태의 가설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홉스는 인간을 스스로 움직이는 일종의 자동기계로 생각했으며, 이 같은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미래의 안녕을 위해 미리 노력하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예비 행위는 인간이 함께 사는 다른 인간들을 대면하는 순간, 상대에 대한 불신에서 생긴 예방적 권력 확장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두 주체는 각자의 행위 의도에서 서로 낯설고 불투명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미래에 있을 수 있는 타자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각자 자신의 잠재적 권력을 미리 확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p. 38~40
19세기 초엽에 이르러 헤겔의 이러한 새로운 통찰은 사회에 대한 철학적 이론을 근거지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근대 자연법 전통이 묶여 있던 원자론적 오류를 극복해야만 한다는 신념으로 성숙한다. 이렇게 제기된 이론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과정이 바로 ‘자연법’에 대한 헤겔의 방대한 논문이다.
……무엇보다도 칸트와 피히테가 제시했던 이론들 속에서 이러한 원자론적 가정들을 인식할 수 있는 곳은, 인륜적 행위 일반을 인간 본성의 모든 경험적 충동과 욕구가 제거된 이성적 활동의 결과일 뿐이라고 보는 부분이다. 여기서도 역시 인간 본성은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적, 또는 헤겔의 표현을 빌리면 ‘비(非)인륜적’ 성향의 집결체로 간주되며, 주체들은 이러한 내부의 성향을 억압하는 방식을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인륜적, 즉 공동체적 입장에 이르게 된다.
—p. 43
피히테의 인정이론을 갈등론적으로 역동화함으로써 헤겔은 인륜성의 내적 잠재력에 대한 첫 번째 규정의 가능성과 인륜성의 ‘부정적’ 발전과정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회를 동시에 얻게 된다. 헤겔이 이러한 역동화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은, 마키아벨리에 이어 홉스로 하여금 근대 사회철학의 역사를 개시하게 했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근원적 투쟁 모델을 다음과 같이 변형하는 데 있다. 즉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면, 주체들은 자신들이 존재하는 인륜적 관계를 떠나든가, 이를 극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로부터 빚어지는 투쟁은 단지 신체적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주체들 사이에 불붙는 실천적 투쟁은 그것이 개인성 차원에 대한 상호주관적 인정을 목적으로 한, 처음부터 하나의 인륜적 사건이다.
—p. 54
헤겔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재 사회관계의 확립과정은 주체들이 자연적 조건에서 분리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개인성’(Individualität)의 성장은 두 단계의 상호인정을 통해서 수행되며, 이 두 단계 간의 차이는 어떠한 차원의 개인적 정체성이 각각 실천적으로 인정되는가에 있다. 주체들은 ‘보편적 상호작용과 인간 형성’ 관계인 ‘부모와 자식’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감성적으로 욕구하는 존재로서 인정한다. ……두 번째 단계는, 여전히 ‘자연적 인륜성’이라는 제목 아래 있지만, 계약의 형태로 규율된 소유자들의 교환관계이다. 이 새로운 사회관계로 나아가는 길은 권리의 일반화 과정으로 기술된다. 즉 주체들이 첫 번째 단계에서 이미 획득했던 세계에 대한 실천적 관계는 그것의 타당성 조건에서 벗어나 보편적이고 계약적으로 보증된 법적 요구의 형태로 변형된다. ……이런 점에서 법적 조항이 각 개인에게 부여하는 것은 ‘부정적으로 규정된 자유’(die negativ bestimmete Freiheit),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에 반대’할 수 있는 자유이다.
—p. 56~57
자신의 인격 훼손에 대해 당사자는 스스로 공격자에 대항하여 적극적인 방어를 취함으로써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 피해자의 방어행위를 통해서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범죄의 ‘반작용’은 헤겔이 ‘투쟁’이라는 개냄을 통해 입증하고 있는 전체 사건 가운데 첫 번째 것이다. 즉 ‘인격’ 대 ‘인격’, 다시 말해서 권리 능력을 가진 두 주체 사이에서 투쟁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투쟁의 목적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요구를 각각 인정받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을 방해 없이 전개하려는 투쟁도발적 요구와, 소유권의 사회적 존중을 위한 대항적 요구이다.
—p. 62
……의식철학으로 범주를 전환하는 것은 ‘인정투쟁’이라는 사고 모델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제 헤겔은 국가 공동체의 형성과정을 더 이상 근원적, 즉 ‘자연적’ 인륜성이 가지고 있는 기본 구조가 투쟁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으로 파악할 수 없다. 오히려 헤겔은 이 과정을 직접적으로 정신의 발전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 과정은 언어와 도구, 가족 소유물 같은 매개수단을 통해 단계적으로 수행된다. 그리고 이러한 매개 수단의 사용을 통해 의식은 단계적으로 자신을 ‘개별성과 보편성의 직접적 통일체’로 이해할 줄 알게 되며, 이에 상응하여 자기 자신을 ‘총체성’으로 이해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맥락 속에서 ‘인정’은 이미 ‘이념상’ 총체성으로 발전한 의식이 ‘다른 총체성, 즉 타인의 의식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되는’ 인지적 단계를 의미한다.
—p. 71~72
……헤겔은 이제 피히테의 영향 아래서 정신의 본질적 특징을 ‘자기 자신에 대해 동시에 타자로’ 존재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으로 본다. 즉 정신은 자신을 자기 자신의 타자로 만들 수 있으며 이로부터 다시 자기 자신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자신을 분화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분화 활동이 일회적 행위가 아니라 한 과정의 운동 형식으로 이해될 때, 이로부터 헤겔이 현실의 구조를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통일적 원리가 도출된다. ……헤겔의 이론은 물론 관철된 것은 아니지만, 그 이념에 따라서 보면 이미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이라는 세 가지 큰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정신은 무엇보다도 우선 자신을 내적으로 이해하고, 다음으로 자신을 자연이라는 객체로 외화시키며, 마지막에 다시 고유의 주관성 영역으로 귀환하는 순서에 따라 기술되고 있다.
—p. 77~78
……의식 내부에서 정신이 자기를 실현하는 과정은 방법적으로 도출된 단계적 순서에 따라 기술된다. 즉 우선 개인적 주체와 자기 자신의 관계, 다음으로 주체들 사이의 제도적 관계, 나아가 공동체화된 주체들의 세계에 대한 반성적 관계 전체가 고찰된다.
……이러한 재구성 방법은 결과적으로 주체가 자기 자신을 ‘권리’를 가진 인격체로 파악하고, 그럼으로써 제도적으로 규율된 사회적 삶, 즉 ‘현실적 정신’에 참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어떠한 경험들을 거쳐야 하는가를 알려준다. 헤겔은 정신의 발전과정의 이러한 인식적 측면을 위해서 우선 직관에서 시작하여 상상력을 거쳐 사물에 대한 언어적 표현능력에 이르는 단계들을 가정한다. 주체는 개별성 의식으로서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과정에서 이미 자신을 ‘부정적’인 힘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이 힘은 현실의 질서를 독자적으로 산출해내며, 따라서 그 질서 속에서 자신을 ‘대상’으로 만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 헤겔은 이런 식의 경험을 여전히 불완전한 것으로 간주한다. 왜냐하면 이 경험은 주체가 세계를 범주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줄 뿐이며, 주체가 어떻게 세계를 실천적으로, 즉 그 ‘내용’에서 산출할 수 있는가는 가르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p. 81~82
……지금까지 주관적 정신은 현실에 대한 인지적 관계에서만 고찰되어 왔기 때문에 그것은 단지 ‘지성’으로서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나 헤겔이 순수이론적 경험의 지평을 떠나 세계에 대한 실천적 접근을 시도하는 순간, 이 주관적 정신은 ‘의지’로 화한다. 여기서 ‘의지’ 개념으로 특징지어진 의도나 경향은 이제 자기 대상화를 위한 충동 이상의 것이다. 오히려 의지라는 표현이 두드러지게 부각시키는 것은 행위 대상 안에서 자기 자신을 경험하려는 특수한 결단성이다. “의지하는 자, 즉 자신을 정립하려는 자는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만들려고 한다.”
—p. 82~83
……헤겔은 개인의 자기형성과정의 실천적 측면이 주체의 도구적 자기경험과 함께 시작된다고 본다. 헤겔은 도구적 자기경험을 노동 행위와 도구, 생산물 사이의 내적 연관성 속에서 보았다. 동물과 달리 인간 정신은 ‘결여감', 즉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다는 느낌에 대해 대상을 직접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헤겔의 경우, ’단순한 욕구 충족‘을 대신하는 것은 ’자기반성적‘ 노동 행위이다. 이 노동 행위는 현재의 상황을 떠나, 즉 미래에 실현될 소비 대상들을 산출함으로써 인간의 본능 충족을 지연시킨다. 노동 활동은 ’본능적인 나의 분열‘에 따른 것이다.
—p. 83
……인간들 사이의 자연 상태라는 방법적 허구에서 출발하는 모든 이론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동일한 이론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즉 이는 어떻게 개인들이 상호경쟁관계라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 ‘권리와 의무’라는 상호주관적 이념에 도달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헤겔에 따르면,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자연법 전통 속에서 제시되었던 대답들은 모두 동일한 부정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권리에 대한 규정’은 항상 외부에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즉 계약 체결 행위는 지적 명민함의 명령이거나(홉스), 도덕의 요청(칸트와 피히테)이었다. 또한 사회계약으로의 이행을 ‘나에게’ 속한 어떤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전형적인 철학적 해결방식이다. 이에 따르면, 계약 체결의 필연성이 ‘자연 상태’라고 부르는 상황 속에서 나타나게 된 것은 바로 ‘나의 사고 운동’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은 이와 달리 이제 사회계약의 성립과 그에 따른 법적 관계의 성립이 하나의 자연 상태라는 사회적 출발 상태에서 필연적으로 산출되는 실제의 과정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즉 여기서는 더 이상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경쟁이라는 상황 속에서 계약 체결이 경험적으로 필연성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p. 95
인정 행위 속에서 나는 개별자가 아니다. 나는 당연히 인정 행위 속에서 존재하며, 더 이상 매개 없는 현존재가 아니다. 인정된 자는 이 존재를 통해 직접적으로 유효하게 인정된 것이지만, 바로 이 존재는 개념상 산출된 것이며 이 존쟁도 인정된 존재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인정받으며, 필연적으로 인정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필연성은 인간 본유의 것이며, 내용과 대립하는 우리의 사고의 필연성이 아니다. 인간 자체는 인정 행위로서의 운동이며, 이러한 운동이 바로 인간의 자연 상태를 극복한다. 즉 인간은 인정 행위다.
—p. 97
결과적으로 헤겔은 가상적 자연 상태의 본질적 특징인 투쟁이라는 현상을 홉스적 전통에서 흔히 나타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한 가족의 독점적 소유물 획득은 처음부터 사회적 공동생활에 대한 민감한 방해 행위로 나타난다. 헤겔이 이러한 해석에 도달한 이유는 그가 사용하는 서술방법 때문이다. 이 방법은 투쟁을 야기하는 사건을 무엇보다도 수동적 위치에 있는 참여자들의 시각 아래서 일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일방적 소유 행위란 존재하는 상호작용관계에서 주체 자신이 배제됨으로써 주체들이 순수개별적인, 즉 ‘대자적인’(fürsichseienden) 개인으로 전락하는 사건이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p. 99
배제된 주체의 실천적 대항 행위와 직접 연관지어볼 때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행위가 ‘부정적인 것, 즉 사물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타자의 자기인식’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p. 100~101
……사회적 삶에서 권리관계가 일종의 상호주관적 토대가 되는 이유는, 모든 주체가 모든 타자를 그들의 정당한 요구에 맞게 대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게 권리는 사랑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사회적 친밀관계라는 특수한 영역으로 한정될 수 없는 상호인정 형식이다. ‘권리 인격체’의 성립을 통해 비로소 한 사회의 핵심 중심 제도들의 공동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의사소통적 동의, 즉 ‘보편적 의지’를 위한 최소한의 척도가 마련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서로의 정당한 권리 요구를 존중할 때에만 그들은 서로 갈등 없이 사회적으로 관련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p. 110
범죄가 무시당했다는 느낌 때문에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 느낌을 일으키는 규범적 원인들은 범죄 자체가 강제할 수 있는 법적 혁신을 통해서도 실제로 극복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를 위해서는 추상적 법 적용의 오류나 형식주의적인 법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헤겔은 그가 보편적 의지의 단계에서 개인의 자기형성과정의 원동력으로 파악한 인정투쟁이 도덕적 요구를 산출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헤겔 자신은 이러한 도덕적 요구를 위한 적절한 법적 해결 형식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권리관계의 발전 자체도 인정투쟁이라는 규범적 압력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제안이 내포하고 있던 풍부한 이념은 그의 텍스트 전체에서 단지 하나의 사상적 자극제로 머물러야만 했다.
—p. 122
…… 미드는 이러한 생각에 즉각 이의를 제기한다. 이러한 ‘심리적인 것에 대한 정의’는 주관적 세계에 대한 접근 가능성을 증명하는 데 충분치 못하다는 것이다. 즉 행위자는 도구적 행위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순간, 실제로 자신의 상황해석이 지니고 있는 주관적 성격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나 행위자가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아의 능동성이 아니라 ‘자극을 주는 객체에 대한 더욱 정확한 규정’이다.
—p. 146~147
한 주체가 음성 행위를 통해 자신의 상호작용 상대에게 영향을 미칠 때, 그 주체는 바로 그 순간에 상대방의 반응을 자신 속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주체의 표현은 자신에게도 외부의 자극으로 감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 주체의 음성 행위는 그것의 수취인이 갖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자신에 대해서도 갖게 되며, 그 자신도 다른 청자와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
……자연적 존재인 인간이 타인을 자극하듯 자기 자신을 자극하고, 타인의 자극에 대해 반응하듯 자신의 자극에 대해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인간의 행위를 사회적 대상의 형태와 접목시켜준다. 이른바 주관적 경험이 관련할 수 있는 ‘목적격 나’란 이러한 사회적 대상으로부터 생성될 수 있다.
……미드는 ‘목적격 나’(me)와 ‘주격 나’(I)를 구분한다. ‘목적격 나’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나에 대한 상이며, 지금 진행되고 있는 행위조차도 항상 이미 지난 것으로 보존하고 있다. 이에 비해 ‘주격 나’는 나의 모든 현재적 행위의 규정되지 않은 원천이다, ‘주격 나’ 개념은 비록 인지될 수는 없지만, 행위상의 문제에 대한 창조적인 반응을 책임지는 개성의 심급을 뜻한다.
—p. 149~151
……인정에 대한 경험은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이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확신할 수 있는 실천적 자기관계의 한 양식이라는 것이다. 미드가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이러한 의식을 묘사하기 위해 선택한 일반적 개념은 ‘자기존중’이다. 이 개념은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뜻한다. 각 개인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신을 하나의 특수한 인격체로 인정할 때 자신에 대해 이러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자기존중의 정도는, 주체가 자신의 상호작용 상대자들의 인정을 통해 발견한 자신의 속성과 능력이 얼마나 개성적인가에 달려 있다. 권리란 이를 통해 각 개인이 자신의 공동체에 속한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어쩔 수 없이 공유하는 속성들 속에서 인정됨을 알 수 있는 어떤 것이기 때문에 권리는 미드에게 자기존중을 위한 확실하지만 매우 일반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p. 160
‘목적격 나’와 ‘주격 나’는 대립해 있다. 각 개인은 시민, 즉 공동체의 구성원일 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에 반작용을 가하며, 우리가 몸짓의 전달에서 보았듯이 반작용을 통해 공동체를 변화시킨다. 공동체의 태도가 개인의 경험 속에서 나타나듯이 ‘주격 나’는 공동체의 태도에 대한 개인의 반작용이다. 그리고 개인의 반작용은 공동체의 조직적 태도를 다시 변화시킨다.
—p. 163
미드가 염두에 둔 해결은 자기실현을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의 경험과 연결하는 것이다. 즉 사회적 분업이라는 틀 속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기능을 ‘잘’ 충족시키는 주체에게 부여되는 인정의 척도는 주체로 하여금 충분히 자신의 특수성에 대한 의식에 도달할 수 있게끔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 존중의 조건에 대한 문제에 입각해서 볼 때, 개인이 전적으로 자신을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은 개인이 객관적으로 주어진 기능 분배의 틀 속에서 공동체의 재생산에 자신이 적극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때이다.
—p. 177
……미드는 몇 가지 추적 가능한 이유에서 탈전통적 공동체의 윤리적 목적설정을 기능적 분업이라는 사실적 도구들과 전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도덕적 문제, 즉 ‘일반화된 타자’의 인륜적 신념을 규정하는 문제를 놓치고 말았다. 이러한 인륜적 신념은 각 주체가 사회적 과정에 대한 자신의 특수한 기여를 의식하게 하는 데는 필요한 전제이지만, 역사적으로 증대된 개인적 자기실현을 위한 자유공간을 또다시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형식적이다. ……상호주관적 구속력을 지니는, 어떤 점에서는 관습적으로 익숙해진 좋은 삶에 대한 관념은 내용적으로 볼 때, 단지 공동체의 각 구성원에게 자신에게 허용된 권리의 범위 안에서 스스로 자신의 생활방식을 결정할 수 잇는 기회를 부여할 뿐이다. 따라서 미드가 도출한 것이지만, 또한 그가 잘못 인식한 것이기도 한 난점이란 ‘일반화된 타자’에게 ‘공동선’을 부여하는 과제이다.
—p. 179~180
어머니가 다시금 증대된 행위 자주성 때문에 어린아이의 이용범위 밖에 놓이게 될 때 등장하는 탈착각 과정에서 아이는 커다란, 극복하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지금까지 자신의 주관적 세계의 한 부분으로만 여겼던 어머니가 차츰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게 됨으로써 아이는 대상(어머니)을 ‘고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 인정’하기 시작해야만 한다. 어린아이는 사회적 환경이 두 가지 심리적 메커니즘의 적용을 허용해야만 이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위니캇은 이 두 가지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를 ‘파괴’라는 제목을 통해 다루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이행기 현상’이라는 개념적 틀 속에서 설명한다.
—p. 198
……이제 출발점이 되는 것은 모든 사랑관계가 생후 초기의 특징인 어머니와 아이의 근원적 상호융합 상태 체험에 대한 무의식적 회상에 근거를 두고 추진된다는 가정이다. 즉 공생적 단일체라는 내적 상태는 일생 동안 주체들의 배후에서 타인과 융합하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완전한 만족 상태에 대한 경험도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융합욕구가 사랑의 감정으로 변하는 것은, 이 융합욕구가 불가피한 분리에 대한 체험을 통해 좌절됨으로써 이제 타인을 독립적 개인으로 인정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결합할 때이다. 오직 파괴된 공생관계만이 인간 사이의 경계 설정과 탈경계의 생산적 균형을 발생시킨다.
—p. 206~207
……첫째로, 권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개인적 자율성이라는 동일한 속성을 부여하는 인정 형태는 어떤 성격을 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해명이 필요하다.
……둘째는, 주체들이 근대적 권리관계라는 조건 아래서 서로의 도덕적 판단능력을 인정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p. 215~216
……‘권리 인정’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예링)의 책에서도 이미 지적하였듯이, 모든 인간 주체를 무차별적으로 ‘목적 자체’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사회적 존중’은 개인의 ‘가치’를 부각시킨다. 이는 개인의 가치가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기준들을 통해 상호주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경우는 칸트의 공식이 보여주듯이 ‘개인의 의지 자유’에 대한 보편적 존중과 관련되어 있으며, 이에 반해 두 번째 경우는 개인의 능력에 대한 인정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개인의 능력에 대한 평가는 그것이 한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경험되고 있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
—p. 218
……한 주체에게 이성적 통찰에 따라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점은 오히려 합리적 동의 절차가 무엇을 뜻하느냐를 규정함으로써만 대답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런 정당화 절차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이 정당화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각 개인에게 부여되어야 하는 속성들 역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본질적으로 한 인격체로 특징짓는 능력을 확정하는 일은, 합리적 의사 형성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주관적 조건에 대한 기본 가정에 의존한다. 이러한 절차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 할수록 각 주체의 도덕적 판단능력을 총괄적으로 규정하는 능력은 더 광범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미 알 수 있는 것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할 때 여기서 인정하는 서로의 능력이 가변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p. 223
그동안 법학 내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자유주의적 자유권, 정치적 참정권, 사회복지권으로 구별하는 것이 자명한 것이 되었다. 첫 번째 범주의 권리는 개인의 자유, 생명, 소유권을 국가의 임의적인 침해로부터 보호하는 소극적 형태의 권리를 뜻한다. 두 번째 범주의 권리는 개인이 공공의 의사형성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적극적 권리를 뜻하며, 세 번째 범주의 권리 역시 개인이 공정한 방식으로 재화의 분배에 참여하게 하는 적극적 권리를 뜻한다.
—p. 224
첫 번째 경우에서는 사회적으로 보장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개인적 기회의 불평등에 차차 법적 고려를 가능하게 하는 구체적 내용의 권리가 증대된다. 이에 비해 두 번째 경우에서는 지금까지 소외되어 불이익을 당하던 집단에게 다른 모든 사회 구성원들과 동등한 권리가 부여된다는 의미에서 권리관계가 보편화된다. ……따라서 인정의 유보나 무시에 대한 경험 때문에 일어나는 대립은 권리 인격체라는 지위가 갖는 실질적 내용뿐만 아니라 그 사회적 적용 대상의 확장을 둘러싼 갈등이다.
—p. 229
……근대의 기본권 목록을 통해 모든 인간의 사회적 위신은 법적으로 동등하게 보호된다. 그러나 권리관계가 모든 차원의 사회적 가치부여를 자신 속에 수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회적 가치부여는 그 기능상 사회 구성원들을 서로 구분해주는 속성과 능력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 개인이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가 자기만의 독특한 능력이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이다. 이러한 속성의 차이는 지금까지는 각 개인이 자신이 속한 신분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명예의 정도를 확립한다는 점에서 단지 집단주의로만 규정되었지만, 이제 전통적 가치 위계구조가 차츰 해체됨에 따라 속성의 차이를 규정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즉 과거의 인정질서가 부과하는 신분적 행위 강제에 대한 시민의 투쟁은 개성화의 길로 나아갔으며, 이는 누가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하느냐에 대한 새로운 표상에 따른 것이었다. ……또한 개성화 과정에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관이 개인적 자기실현의 다양한 방식을 위해 개방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이때부터 계급적, 성적 차이를 통해 규정된 가치 다원주의가 각 개인의 능력과 그 능력의 사회적 가치를 규정하는 문화적 방향틀을 형성하게 된다.
—p. 241~242
이러한 개념사적 변화과정은 한 측면은 당시까지 신분적 생활방식과 결합되어 있던 ‘명예’ 범주의 적용 틀이 개인적 영역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 명예 범주는 무조건적 방어가치를 지닌 개인적 자기이해의 측면에 대해 단지 주관적으로만 규정 가능한 척도를 나타낼 뿐이다. 이에 반해 명예 개념이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 차지하고 있던 자리는 이제 차츰 ‘신망’이나 ‘위신’ 범주들이 대신하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각 개인이 향유하는 개인적 업적과 능력에 대한 사회적 가치부여의 척도가 규정된다. ……개성화된 인정질서 전체가 의존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지평은 한편으로 자기실현의 다양한 방식을 위해 개방되어야 하지만, 다른 한편 가치부여를 포괄하는 체계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p. 242~243
……무시에 대한 세 가지 부류의 경험에서 특징적인 것은 이러한 경험의 개인적 결과가 항상 신체의 붕괴 상태와 관련된 비유를 통해 기술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고문이나 폭행의 체험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후유증에 대한 심리학 연구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심리적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생활방식에 대한 문화적 평가절하에 존재하는 무시 유형과 관련해서는 ‘모욕’이라는 범주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신체적 고통과 죽음이라는 비유가 암시하는 것은, 인간의 심리적 불가침성에 대한 다양한 무시의 형태에는 신체기관상의 질환이 신체의 재생산과 관련하여 행사하는 것과 동일한 부정적 역할이 부여된다는 점이다. 즉 사회적 모욕과 굴욕의 경험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당한다. 이는 바로 병의 고통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것과 같다.
—p. 256
……마르크스의 구성에 따르면, 인간 주체는 생산 행위 속에서 자신의 개인적 능력을 단계적으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실현한다. 그러나 단지 이것뿐만이 아니라 이와 동시에 주체는 모든 상호작용 상대자를 욕망하는 주체로 예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을 정서적으로 인정한다. 이러한 통일적 행위 수행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통해 파괴된다면, 노동에서 자기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투쟁은 동시에 상호인정관계를 재건하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체들이 자기규정적 노동의 가능성을 다시 획득하는 순간, 그들이 서로를 욕망하는 유적 존재로 긍정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조건들도 재확립되기 때문이다.
—p. 273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는 인간들이 원칙적으로 성공적 상호작용을 이룰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는 당시 사회적 의사소통이 단지 제한적으로 왜곡되었을 뿐이라는 관점을 전혀 고려할 수 없었다. 사르트르가 ‘인정투쟁’을 인간 현존재에게 영구화된 실존적 요소로 보는 상호주관성이론에 처음으로 도달하게 된 것은, 그가 ‘대자적 존재’와 ‘즉자적 존재’라는 존재론적 이원론을 타자 실존이라는 선험철학적 문제에 적용함으로써 얻은 성과이다. 즉 모든 인간 주체는 대자적 존재로서 자신의 행위기획에 대한 영원한 초월적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인간 주체는 동시에 자기의식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타자의 시선을 자신의 여러 가지 실존적 가능성 가운데 하나만을 대상으로 고착화시키는 것으로 경험한다.
—p. 289
……모든 공리주의적 설명 모델과 달리 이 개념은 인정받고자 하는 근본 기대가 훼손될 때 야기되는 도덕적 경험의 틀 속에서 사회적 저항과 봉기의 동기가 형성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대는 심리 내적으로 개인의 정체성 형성조건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 기대는 주체로 하여금 자신의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자신이 자율적이고 개성화된 존재로서 존중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인정 유형과 굳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회운동의 발생은 개인적 실망의 경험은 단지 그 개인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주체에게도 해당되는 것으로 해석하게 하는 집단적 의미론의 존재에 의존한다.
—p. 301
……역사적 사건을 고찰하는 관점의 급진적 확장은 일차적 연구 자료에 대한 우리의 시각 변화를 요구한다. 즉 사회적 투쟁에 대한 설명과 연관된 부정의 감정과 무시 경험들이 단지 행위의 동기로서만 주목되어서는 안 되며, 나아가 이것들이 인정관계의 전개과정에서 차지하는 도덕적 역할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따라서 지금까지 사회적 투쟁의 정서적 원료 격이었던 도덕적 감정은 이른바 순진함에서 벗어나 포괄적 발전과정을 늦추거나 빠르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마지막 규정이 오해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해주는 점은 인정투쟁 모델을 통해 도덕적 진보의 역사적 과정을 재구성하려는 이론적 단초가 겪게 되는 요구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즉 전진의 동기와 퇴보의 동기 사이에서 역사적 투쟁을 구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대략적이나마 최후 상태를 가설적으로 예견함으로써 발전 방향을 규정할 수 있게 해주는 규범적 척도가 필요하다.
—p. 309
……인륜성에 대한 이러한 평가절하는 오늘날 헤겔이나 고대 윤리학을 새롭게 재고하려는 도덕철학적 조류가 인륜성을 평가절상 하는 것과 대립해 있다. ……이 책에서 우리에게는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자기실현 조건 전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우리는 칸트적 전통에서 이탈하고 있다. 따라서 보편적 존중의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덕은, 좋은 삶의 실현이라는 보편적 목적을 위한 많은 보호 장치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삶에 대한 개념은, 칸트와 결별한 여타의 조류와는 반대로 구체적 전통 공동체의 윤리적 관습을 형성하는 실체적 가치관의 표현으로 파악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의사소통적으로 자기를 실현하게 하는 보편적 관점이라는 점에서 수많은 특수한 생활방식과 규범적으로 구별되는 인륜성의 구조적 요소들이다.
……‘인륜성’ 개념은 여기서 개인의 자기실현에 필연적 전제 조건으로 작용하는 상호주관적 조건 전체를 말한다. 그러나 자기실현의 구조에 대한 모든 설명이 곧바로 특정한, 즉 역사적으로 독특한 이상적 생활방식에 대한 해석이 되어버리는 위험에 빠질 경우, 어떻게 자기실현의 가능 조건들에 대한 보편적 언명이 가능할 수 있겠는가?
—p. 315~316
……사랑, 권리, 사회적 연대라는 인정 형식들은 개인적 삶의 목표를 강제 없이 구체화하고 실현하는 과정에서 필요시되는 내적, 외적 자유의 조건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이미 규정된 어떤 제도적 구조가 아니라 보편적 관계 유형이기 때문에 모든 특수한 생활 형식이라는 구조적 요소들의 구체적 총체와 구별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가 직면한 더 큰 어려움은 세 가지 인정 유형 가운데 두 가지는 규범적으로 계속 전개되는 어떤 미래적 요소를 자신 속에 감추고 있다는 데 있다. 즉 이미 지적했듯이 권리관계뿐만 아니라 가치 공동체 역시 보편성이나 평등성의 증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내적 발전의 잠재성 때문에 자기실현의 규범적 조건 속에는 우리의 형식적 인륜성 개념의 요구를 제한하는 역사적 지표가 침투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성공적 삶의 상호주관적 전제 조건으로 여길 수 있는 것들은, 인정 유형의 현실적 수준에 따라 규정되는 역사적, 가변적 크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식적 개념은 해석학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형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무시간성을 상실한다.
—p. 319~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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