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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이 나에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늘 있는 어떤 확신이라든지 자명한 일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병에 걸리듯이 닥쳐왔다. 그것은 조금씩 음흉하게 자리를 잡아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나 자신이 좀 괴이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뿐이다. 한번 자리를 잡더니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고 헛놀란 것이라고 자신을 타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또 꽃잎을 열었다.
—p. 15
무릇 물체들, 그것들이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마치 그것들이 살아 있는 짐승들인 것처럼 그 물체들과 접촉을 갖는 게 나는 두렵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것은 시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p. 27~28
나는 미래를 ‘본다‘—미래는 거기에, 길 위에 놓여 있어, 현재보다 약간 희미할락 말락 할 뿐이다. 미래가 실현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실현되어 보았자 무엇이 더 보태질 것인가? 노파는 약간 절름거리면서, 또박또박 걸으면서 멀어진다. 그 노파는 선다. 목도리에서 삐죽 솟은 흰 머리칼을 잡아당긴다. 노파는 걷는다. 그 노파는 저기에 있었는데, 지금은 여기에 있다…… 나는 내가 현재에 있는지 미래에 있는지 알 수 없어졌다. 나는 그 노파의 동작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 노파의 동작을 ‘예견’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 나는 미래와 현재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계속된다.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 노파는 쓸쓸한 거리를 전진한다. 커다란 남자 신발을 옮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간이란 것이다. 순수한 시간이다. 그것은 서서히 인간 존재에게로 다가온다. 그것은 기다려지고, 그리고 그것이 닥쳐오면 사람들은 답답해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노파는 길모퉁이에 가까이 간다. 그 노파는 이미 검고 작은 헝겊 뭉치에 불과하다. 그렇다. 그것은 새로운 일이다. 조금 전에는 노파가 거기에 없었다. 그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퇴색하고 케케묵은 새로운 것이어서 절대로 사람을 놀라게 할 수는 없다. 노파는 길모퉁이를 돌려고 한다. 돈다—영원의 시간 속을.
—p. 64~65
무엇인가가 시작되지만 그것은 끝나게 마련이다. 모험은 연장되지 않는다. 모험은 그 자체의 사멸로서만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 사멸을 향하여, 그것은 아마도 나의 사멸이 되겠지만, 나는 되돌아오지 않고 끌려간다. 순간순간은 그것을 이어오는 순간을 이끌기 위해서 생겨난다. 나는 온 마음의 애착을 느낀다. 각각의 순간은 유일한 것이며, 대치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한 인간, 늘 이야기를 하는 자이며, 자기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본다. 또 그는 마치 남에게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살려고 애쓴다.
……산다는 것이 그런 거다. 그러나 사람이 삶을 이야기할 때에는 모든 것이 변화한다. 다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하는 변화이다. 그 증거로, 사람은 정말 이야기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마치 정말 이야기가 있거나 한 것처럼 말이다. 사건은 한 방향에서 생기고 우리는 그것을 그 반대 방향으로 얘기한다.
—p. 76~80
그 모험의 감정은 확실히 사건으로부터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것은 증명됐다. 모험이란 차라리 순간순간이 서로 얽히는 그 방법에서 생긴다. 아마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즉 갑자기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것, 즉 한순간이 다른 순간에 인도되며, 그 순간이 또 다른 순간에 그런 식으로 인도되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매 순간이 사라지고, 그것을 붙잡아두는 게 어리석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매순간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사건에서 이 특징의 원인을 찾는다. 다시 말하면, 형식에 관련된 것을 내용에 연관시켜버리는 것이다. 요컨대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지만 그것을 보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어떤 여자를 보고 그 여자가 늙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여자가 늙는 것을 ‘보지는’못한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 그 여자가 늙는 것을 보는 것 같고, 또 그 여자와 더불어 자기도 늙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이것이 모험의 감정이다.
—p. 110
어디에 나의 과거를 간직해둘 수 있을까?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호주머니에 넣어둘 수 없다. 과거를 정돈해 놓기 위한 집을 한 채 가져야만 한다. 나는 나의 육체밖에는 가진 것이 없다. 자신의 육체만 가지고 있는 아주 고독한 사람은 추억을 간직할 수가 없다. 추억은 육체를 거쳐서 지나가버린다. 나는 슬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자유로웠으니 말이다.
—p. 126
……매일매일 그는 조금씩 그렇게 되고 말 시체의 모습과 비슷해진다. 그들의 경험이란 그런 것이다. 자주 내가 경험에서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경험, 그것은 그들의 마지막 요새이다. 의사는 그 마지막 요새를 믿으려고 한다. 그는 참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하여 눈을 가리려고 하는 것이다. 고독하고, 알아낸 것도 없고, 과거도 없이 지성은 우둔해지고 육체는 무너져간다는 그 현실에 대하여. 그래서 그는 벌충이 될 만한 자질구레한 망상을 꾸며 그것을 잘 정돈하고 잘 꿰매어 놓았다. 그는 자기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사고에는 구멍이 나 있어 머릿속에서 그것이 헛바퀴를 도는 때가 있는 것 같다면, 그것은 그의 판단엔 청춘의 성급함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책에서 읽은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금 책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며, 성교를 못하게 된 것은 전에 했기 때문이다. 했다는 것은 아직도 하고 있다는 것보다 낫다. 멀찍이 물러설 수 있어야 판단도 할 수 있고, 비교도 반성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 무서운 시체의 얼굴, 그것을 거울 속에서 맛보는 경우를 위해서, 그는 경험에 의해 얻은 교훈이 얼굴에 새겨졌다고 생각하려고 애쓴다.
—p. 134~135
‘나 자신의 과거조차도 기억할 힘이 없었던 내가 타인의 과거를 구제할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을까?’
……나는 내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둘러보았다. 현재뿐이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각기 현재 속에 처박힌 가볍고 튼튼한 가구, 즉 탁자며, 침대며, 거울이 달린 양복장과 나 자신이었다. 현재의 진실한 본성이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현존하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현재가 아닌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 속에도, 나의 생각 속에도 없었다. 확실히 오래전부터 나의 과거가 나에게서 도주해 버렸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것이 나의 능력 범위 밖에 있는 거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과거는 은퇴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존재 양식이었으며 휴가 상태, 비활동 상태였다. 각각은 자신의 역할이 끝났을 때, 스스로 상자 속에 얌전히 들어앉아서 명예로운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무(無)를 생각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나는 알았다. 사물이란 순전히 보이는 그대로의 사물인 것이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p. 179
나는 펄쩍 뛴다. 생각하는 것을 중지할 수만 있어도 좀 낫겠다. 생각이라는 것들, 그것보다 무미건조한 것은 없다. 육체보다 더 무미건조한 것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뻗는다. 그리고 이상한 맛을 남긴다. 그리고 생각 속에는 말이 있다. 끝마치지 못한 말, 늘 돌아오는 문구가 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존재한다‘는, 괴롭도록 되씹는 소리, 바로 내가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나다. 육체는 한 번 태어나면 혼자서 살아간다. 그러나 생각은 바로 ‘내가’계속하고, 내가 전개한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 긴 뱀이며, 존재한다는 그 감정—나는 그 감정을 고요히 전개한다……. 생각하는 것을 단념할 수 있다면! 나는 노력해본다. 나는 성공한다. 내 머릿속이 연기로 충만되었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게 또 시작한다.
나의 생각, 그것은 ‘나‘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하는 고로 존재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단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그것은 무서운 일이다—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고 있는 저 무(無)로부터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존재하는 데 대한 증오, 싫증,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방법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넣는 방법인 것이다. 생각은 현기증처럼 내 뒤에서 생겨나고, 나는 그것이 내 머리 뒤에서 생기는 것을 느낀다. 만약 내가 양보하면 그것은 앞으로, 내 두 눈 사이로 오려고 한다—다만 나는 언제나 양보한다. 생각이 커지고 커진다. 그리하여 거기 나를 충만케 하고 나의 존재를 새롭게 하는 무한한 것이 있다.
—p. 186~187
나는 방 안을 훑어본다. 광대 연극이다. 모두 얌전하게 앉아서 먹고 있다. 아니다, 먹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부과된 일을 잘 하기 위해서 힘을 회복시키고 있다. 각자가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는 개인적이고 보잘것없는 고집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그 누구에게, 또는 그 무엇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나는 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체하고 있으나, 내가 존재하며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설득하는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백발의 훌륭한 신사 곁에 가서 앉아, 존재한 무엇인가를 설명했을 것이다. 그때 그가 지을 표정을 상상하자 나는 웃음이 터졌다.
—p. 208~209
창 뒤에서, 푸르스름한 물체가 단속적으로 지나간다. 그것은 아주 딱딱하고 바삭바삭하다. 사람들, 벽들,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서 집의 컴컴한 내부가 보인다. 그리고 유리창은 모든 검은 것을 창백하고 푸르게 만든다. 노란 벽돌로 만든 저 큰 집을 푸르게 만든다. 그 집은 떨면서 멈칫멈칫하며 나에게로 다가와서, 내 앞에서 코를 부딪치며 멈춘다. 어떤 신사가 올라타 내 맞은편에 앉는다. 노란 집이 다시 출발한다. 그것은 유리창에 기대어 미끄러져 간다. 그 건물은 일부분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컴컴해졌다. 유리창이 떨린다. 노란 건물이 까마득하게 높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수백 개의 창이 어두운 내부로 뚫려 있다. 그것은 전차를 따라서 미끄러져 간다. 전차와 스친다. 떨리는 유리창 사이에 밤이 이루어져 있다. 진흙처럼 노란 건물이 무한히 미끄러져 가고 있다.
—p. 233
……3, 4일 전만 해도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결코 예감하지 못했다. 나는 다른 사람들, 봄옷을 입고 바닷가에서 거니는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그들처럼 “바다가 푸르‘다’. 저기, 저 높은 곳에 있는 흰 점, 그것은 갈매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점, 갈매기가 ‘존재하는 갈매기’라는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존재는 숨어 있다. 그것은 여기 우리들 주위에, 그리고 우리들 내부에 있다. 그것은 즉 ‘우리’이다. 존재에 관해서 말하지 않고는 무엇 하나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 존재에 손을 댈 수는 없다. 내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믿었을 때, 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믿어야 옳다. 나의 머리는 비어 있었다. 혹은 꼭 한마디가 머릿속에 있었다. ‘이다’이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그것은 거기에 있었다. 대낮처럼 분명했다. 존재가 갑자기 탈을 벗은 것이다. 그것은 추상적 범주에 속하는 무해한 자기의 모습을 잃었다. 그것은 사물의 반죽 그 자체이며, 그 나무의 뿌리는 존재 안에서 반죽된 것이다. 또는 차라리 뿌리며, 공원의 울타리며, 의자며, 드문 잔디밭의 잔디며,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사물의 다양성, 그것들의 개성은 하나의 외관, 하나의 칠에 불과했다. 그 칠이 녹은 것이다. 괴상하고 연한 것의 무질서한 덩어리—헐벗은, 무섭고 추잡한 나체만이 남아 있었다.
—p. 237~238
‘여분’, 이것이야말로 저 나무, 저 철책, 저 조약돌들 사이에서 내가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였다.
—p. 240
이상야릇한 순간이었다. 나는 움직이지도 않고, 얼어붙은 듯 거기에서, 무서운 절정감에 잠겨 있었다. 그 절정감의 한복판에서 새로운 그 무엇이 막 생겨났다. 나는 ‘구토’를 알았고,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면, 나는 나의 발견을 말로 구성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것을 말로 옮기기가 쉽다고 느낀다. 본질적인 것, 그것은 우연이다. 원래, 존재는 필연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란 단순히 ‘거기에 있다’는 것뿐이다. 존재하는 것이 나타나서 ‘만나’도록 자신을 내맡긴다. 그러나 결코 그것을 ‘연역’할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 그것을 이해한 사람들이 있다. 다만 그들은 필연적이며 자기 원인이 됨직한 것을 발명함으로써, 이 우연성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필연적 존재도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우연성은 가장이나 지워버릴 수 있는 외관이 아니라 절대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무상인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이다.
—p. 245
……나무 뿌리는 천천히 땅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늘 거기에 뿌리를 박고 없어질 것처럼 보였다. 피곤하고 늙은 채 그것들은 마지못해 존재하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들은 죽어버리기에는 너무 약했고, 죽음은 외부로부터 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적인 필요로 자기 속에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지닌 것이라고는 음악의 곡조밖에 없다. 단지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유 없이 탄생해서 연약하므로 그 목숨을 유지하다가 조우에 의해서 죽는다. 나는 뒤로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곧 다가온 이미지들이 도약하고, 나의 감은 눈을 존재로 충만시켰다. 존재란 곧 사람이 거기서 떠날 수 없는 충족을 말한다.
—p. 250
그렇다. 그것이 가령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나는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또 사람들은 갑자기 고독 속에 잠기는 다른 사람들을 볼 것이다. 고독하게 된 사람들은 무섭고 기형적인 모습으로, 완전히 고독해진 모습으로 거리를 달리고, 눈을 바로 뜨고, 화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날개를 치는 벌레의 혀를 가지고서 내 앞을 육중하게 지나갈 것이다. 그때, 나는 마치 나의 육체가 살점의 꽃처럼, 오랑캐꽃처럼, 또 미나리아재비처럼 꽃피는, 더럽고 못생긴 딱지에 덮여 있기라도 한 듯이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나는 벽에 기대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를 것이다. 너희들의 과학으로 “무엇을 했단 말이냐? 어디에 생각하는 갈대의 위엄이 있단 말이냐?” 나는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적어도 지금보다 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여전히 존재, 존재 위에 있는 바리에이션이 아닐 것인가? 어떤 얼굴을 천천히 삼켜버릴 이 모든 눈은 아마도 여분일 것이다. 그러나 존재나 그 바리에이션보다 더 여분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존재인 것이다.
—p. 296~297
지금,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공허한 것 같다. 나는 이제는 더 분명하게 나를 느끼게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버림받고 있다. 나의 내부에서 여전히 현실적인 것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조용히 긴 하품을 한다. 아무도 없다. 아무에게도 앙투안 로캉탱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미있다. 그리고 그 앙투안 로캉탱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그것은 추상이다. 나에 관한 작고 창백한 추억이 나의 의식 속에서 흔들린다. 앙투안 로캉탱…… 갑자기 그 ‘나’가 창백해진다. 창백해져서, 그래서 꺼진다.
—p.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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