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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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일상/book 2023. 5. 21. 00:07
이놈의 나라가 정녕 무서웠다. 그들이 치가 떨리게 무서운 건 강력한 독재 때문도 막강한 인민군대 때문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완변하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 시민들이 당면한 굶주림의 공포 앞에 양식 대신 예술을 들이대며 즐기기를 강요하는 그들이 어찌 무섭지 않으랴. 차라리 독을 들이댔던들 그보다는 덜 무서웠을 것 같았다. 그건 적어도 인간임을 인정한 연후의 최악의 대접이었으니까. 살의도 인간끼리의 소통이다. 이건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어쩌자고 우리 식구는 이런 끔찍한 세상에 꼼짝 못하고 묶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p. 65~66) 장독대 옆에 서 있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이 부푸는 것을 보았다. 목련나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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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일상/book 2020. 11. 25. 17:57
해마다 전집을 하나 독파하고 원서로 된 책도 한 권쯤은 읽었는데, 원서는 한 권 읽었지만(무라타 사야카의 ), 12월을 앞둔 아직까지 전집은 한 권도 집어들지를 못했다. 이탈로 칼비노의 전집은 사실 초여름쯤 구입했으니 사놓은지는 오래되었는데, 다른 책들에 손이 먼저 가다보니 책장 한켠에서 가지런히 새 책의 깔끔한 모습만 뽐내고 있었다. 여담으로 전집의 모든 책 표지들이 매우 다채롭다. 사실 이 전집을 구입할 때 이탈로 칼비노라는 작가의 작품을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고, 막연하게 평소 좋아하던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와 같은 작품세계를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충동적인 구매를 했었다. 근래에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을 하나둘 읽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이탈로 칼비노의 전집에 손이 갔다. 동화 같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