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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내가 나를.. (As if, I have missed myself)주제 있는 글/Théâtre。 2023. 10. 22. 22:31
10월 중순 가을밤의 혜화동은 퍽 추워서 겨울의 문턱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로니에 공원 옆 빨간 벽돌로 된 아르코 극장은 언제 봐도 고즈넉한 느낌이 있다. 해질녁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이제 유백색 가로등 불빛을 받아 생기 없는 암록색을 띠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설치된 간이 가판대 앞에 앉아 연극 티켓을 파는 사람이 부루퉁한 얼굴로 관객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낙산으로 접어드는 어두운 골목길에서 혜화동(惠化洞)이라는 한자가 검은색 양각으로 새겨진 한 가게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했다. 은 '나'라는 존재 안에서 쉼없이 충돌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연극이다. 소설도 그렇고 영화와 그림작품도 그렇지만 가끔은 클래식한 걸 즐기다가도 아예 아방가르드한 것에 관심이 간다. 흔히들 고전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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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도우 메도우 메도우(Meadow, Meadow, Meadow)주제 있는 글/Théâtre。 2018. 11. 1. 19:57
이렇게 되고 보니 연극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인상도 남지 않는다. 때로는 적나라하거나 무의미하고, 때로는 공격적이거나 익살스럽고, 동작은 연속되어 있으나 의미는 분절되어 있는 연극. 내가 유일하게 배우들의 표정을 읽을 여유를 가진 건 커튼콜 타임이 다 되어서였던 것 같다. 기획자로 보이는 사람―왜냐하면 무대에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으니까―은 독일인처럼 키가 크고 짧은 금발을 하고 있었는데, 배우들과 일렬 횡대로 서서 인사를 할 때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수행해야 했던 것을 완벽히 소화해냈다는 듯이. 도대체 왜? 왜냐하면 나는 연극을 보며 일종의 민망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단지 배우들이 반라―가끔은 전라―로 유인원 같은 연극을 펼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런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