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ffee Time일상/coffee 2021. 3. 14. 16:19
나는 존중받는 느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오늘날 가장 빠르게 희미해져가는 미덕이기도 하다. 모름지기 사람은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감정적 존재이기도 하다. 무수히 얽힌 관계에서 팩트체크를 하는 것 역시 의미 있지만, 서로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 역시 필요한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뉴스와 생활정보, 가십, 스캔들은 과잉이다 싶을 만큼 흘러넘치지만, 이토록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섭취해도 섭취해도 포만감이 들지 않는 까닭은, 아마도 어떤 형태의 영양 불균형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성에 대한 과신으로 타인을 힐난할 권위를 획득하고, 낙인 찍을 자격을 얻고, 평가절하할 기회를 갖고, 그렇게 알량한 자존감을 근근이 채워나가는 동안 정작 필수적인 감정—관계 안에서의 안정감—은 메말라 간다. ‘안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함부로 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얼마전 사회적으로 명망깨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과 작은 모임 형태로 반포 근처에서 저녁을 함께 할 일이 있었다. 아는 것은 참 많은 사람이었지만, 대화가 이어질 수록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 가족의 직업, 내가 사는 곳, 내가 공부했던 것을 비아냥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들으며, 나도 부정하지 않는 나 자신을 함부로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은 아마 그것을 고칠 수가 없을 것이고, 나는 이 자리가 불편하고 피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와인을 구별하고 트러플 향을 맡을 줄 알지만, 그와 같은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다.
시종일관 테이블을 장악하던 그의 장광설에서 언급된 말들은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너무 가볍고 깊이가 없는 말들. 뮤지컬은 웨스트엔드보다 브로드웨이에서 봐야한다는 말 정도는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본 적 없는 나조차도 할 수 있는 말이다. 결국 그의 ‘앎’이라는 것도 얄팍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낱 젊은 청년을 앞두고 자신의 자존감을 주섬주섬 챙기던 그는 언젠가 부끄러움을 느끼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