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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Time일상/coffee 2020. 7. 23. 00:05
<Coffee>라는 카테고리가 커피라는 공통분모 외에는 딱히 일관된 주제나 테마가 있는 카테고리는 아니다. <Miscellaneous>처럼 머릿속에 엉킨 생각들을 정돈하는 정도의 공간이기 때문에 따로 태깅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기록을 남기는 리듬을 유지해 오고 있었는데, 7월 들어서는 아무래도 이 카테고리에 이번 달의 기록을 남기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카페야 수시로 다녀도, 독서를 하거나 필요한 공부를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노트북으로 자질구레한 문서 작업을 할 뿐이지, 딱히 기록을 따로 남겨둬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의미 있는 만남이나 순간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런 상태로 시간을 보낼 것 같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앞둔 시점에서 몇몇 만남이 있기는 있었다. 시간 순서상으로 가장 먼저 중학교 친구인 B의 얼굴을 봤고, 몇 주 전에는 입사동기인 Y를 만났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학교 후배를 봤다. 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얼굴을 보는 사이도 있고, 자주 얼굴을 보는 사이도 있고 제각각이다. 이번 주말에 약속된 만남은 처음에는 용산역 인근에서 보기로 했다가 학교에서 보는 것으로 급선회했다. 학교를 오랜만에 가는 건 아닌데 그렇다고 학교에 긴 시간 머물 일도 없었어서, 밥먹을 식당을 찾다보니 처음 보는 가게들이 너무 많았다. 결국 메뉴 결정에 관한 전권을 K에게 맡겼다=_=
그래서 해서 점심식사 후에 간 카페도 학교 다닐 때에는 분명 없던 곳인데, 주택을 통째로 개조해서 두 층을 카페로 활용하고 있었다. 서울이라는 곳이 살롱문화가 차고 넘칠 만큼 어딜 가나 카페가 많지만, 일반 단독주택을 개조해서 카페를 운영하는 곳은 그리 많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튼 학교 근처에 이런 곳이 있다니 뜬금없기도 하고 신기해서, 비에 젖은 마당을 쭈욱 둘러봤다가 2층으로도 올라가봤다. 2층에는 한쪽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고, 다른 한쪽으로 널따란 목제 테이블에서 두어 사람이 비즈(Beads) 공예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다닐 쯤에 저런 비즈 공예가 꽤 유행했던 거 같은데, 요새 비즈공예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는 K의 이야기.
요 근래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모두가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가장 무겁게 느낀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자기 손톱에 낀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라고도 말하더라만, 넌지시 내 고충을 말하려 할 때마다 먼저 치고 들어오는 건 상대방의 볼멘소리다. 요새 힘들다, 스트레스 받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등등. 내 고충을 꺼내보이지 못할 때는 초조하기도 하지만, 상대의 고충을 듣다보면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낄 때도 있다. 거꾸로 말하면 내가 공감할 만한 범주의 슬픔과 고통이라는 말이다. 요새 내 또래의 친구들이 대체로 맥락만 다를 뿐 비슷한 고민을 통과하고 있는 것일까, 이날도 K의 고민을 듣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섣부른 조언을 하게 될까봐 천천히 상황을 정리해보고, 다음으로 상대가 현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해본다.
내 나름대로는 최근 몇 주를 보내는 사이 직장선배 한 명으로부터 많은 조언을 얻었다. 여러 가지로 교집합이 많았던 사람이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배였다. K에게 조언을 하는 동안 왠지 그 선배를 빙의한 것 같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신중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묻어나는 사람, 처음에는 헤아리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던 사람, 조직에서 인정받으면서 자신을 잃지 않는 이 사람처럼 K의 고민을 정돈해본다. 내게 고맙다고 말하는 K도 당장에 고민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는 것이 쉽지 않기에. 하지만 각자가 짊어진 짐은 잠시 거들어줄 순 있어도 도맡아 들어줄 수는 없기에, 나도 내 몫의 짐을 단단히 고쳐 멘다. 짐의 무게는 뼛속까지 스며들고 마주해야 할 여정은 지루할 정도로 길다. 남은 것은 나를 마모시키는 쏜살 같은 시간과 몇 가닥 운(運)의 돌출뿐.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