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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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지지 않는 것들일상/film 2021. 1. 23. 21:21
물의 요정, 운디네. 운디네는 원래 물을 관장하는 정령으로 중세 연금술에서 유래한 신화적 존재를 뜻한다. 그래서 운디네를 모티브로 하는 영화도 이미 여럿 만들어진 바 있다. 이 영화에서도 ‘물’은 핵심을 차지하는 소재다. 저수지와 잠수, 수조(水槽), 야외 수영장까지 모두 물과 관련되어 있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자면,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도시까지도 물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영화의 배경은 베를린(Berlin). 역사학자인 여주인공 운디네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한 도슨트에서 설명하듯, 베를린은 고대 슬라브어 ‘베를berl’ 또는 ‘비를birl’에서 왔다. 이 슬라브어는 ‘습지’를 말한다. 얼마전 읽었던 「강철 왕국 프로이센」에도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책에 따르면 브란덴브루크 가의 본거지였던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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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냘픈 날갯짓일상/film 2020. 2. 7. 21:05
올해 봤던 영화 가운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는 단연 여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 그러하고 이번에 본 작품 가 그렇다. 작은 몸집의 벌새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마치 정지화면 같지만, 이를 위해 벌새는 1초에 60번의 날갯짓을 한다. 마찬가지로 은희를 비롯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무수한 날갯짓을 마음 속에 띄운다. 느낌 또는 생각의 파동이 느릿느릿한 화면 속에 꽉 차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1994년 여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나는 영화 속 세대의 감성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김일성 주석 사망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그 뿐 아니라, 아마 영화에 등장하는 은희나 지영 같은 인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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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영화 두 편 : 얼룩말과 페르소나일상/film 2020. 1. 23. 02:55
모처럼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를 봤다. 영화 는 아동성추행을 지속해온 어느 사제에 대한 고발을 다루는 이야기로, 호평 가운데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보게 된 것―개인적으로 종교적인 색채가 가미된 영화를 좋아하진 않는다―도 그런 높은 평가의 영향이 크다. 관능미 넘치는 영화를 줄곧 제작해왔던 프랑수아 오종이 픽션에 기반한 사회고발적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도 관심을 끌었지만 말이다…… 앞서 말한 영화의 소재―아동성추행을 지속해온 사제와 이를 묵인해온 카톨릭 교계―는 미국영화 를 떠올리게 하는데, 접근 방식은 두 영화가 정반대이다. 는 교단의 폐부를 파헤치기 위해 기자들이 문제를 발굴하고 이슈화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에서는 피해자들이 직접 발벗고 나서서 범행을 저질러왔던 한 사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