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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냘픈 날갯짓일상/film 2020. 2. 7. 21:05
올해 봤던 영화 가운데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는 단연 여감독들의 작품들이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그러하고 이번에 본 작품 <벌새>가 그렇다. 작은 몸집의 벌새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은 마치 정지화면 같지만, 이를 위해 벌새는 1초에 60번의 날갯짓을 한다. 마찬가지로 은희를 비롯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하루 무수한 날갯짓을 마음 속에 띄운다. 느낌 또는 생각의 파동이 느릿느릿한 화면 속에 꽉 차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영화를 봤다.
영화는 1994년 여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실 나는 영화 속 세대의 감성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김일성 주석 사망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는 아주 어릴 적의 일이다. 그 뿐 아니라, 아마 영화에 등장하는 은희나 지영 같은 인물에게는 IMF 금융위기가 그들 삶에 큰 흔적을 남긴 이벤트였을 테지만, 나는 오히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더 크게 느껴졌었고, 9.11 테러에 대한 기억이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마 은희는 우리나라의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한’ 세대일 것이고, 나는 우리나라의 만성적인 소득 양극화와 학습된 무력감에 ‘길들여져’ 갔던 세대다. 이처럼 영화 속 인물들이 살아간 시간과 내가 살아온 시간은 아주 약간씩 어긋나 있다. 그 뿐 아니다. 공간적 배경을 보아도 나는 대치동의 분위기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학원이 있는 지역에서 자라나기는 했어도, 영화에서처럼 ‘서울대’나 ‘명문대’를 도그마처럼 외치며 자라지는 않았다.
학교 다닐 때 꼭 교실에 한 명은 은희 같은 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이 부분은 1994년도를 살았던 세대든 그 이후의 세대이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어느 모로 보나 두각을 보이지는 않아서 가끔씩 부리는 말썽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친구들. 말을 걸기 어려운 친구는 아니지만, 막상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던 친구들. 물론 그들에게 그들만의 일탈이 있고, 고민이 있고, 로망스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영화는 그런 은희와 은희 가족의 이야기를 94년도라는 캔버스 위에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책이 원작인 작품인데 가장 첫 번째 장면이 어떤 방식으로 글에 묘사되었는지 궁금하다. 902호에서 1002호로 화면이 옮겨가는 장면이 무척 인상적인데, 굉장히 알쏭달쏭하기는 하지만 뭔가 이 장면만 따로 떼서 개인적으로 이름을 붙여본다면 “열 수 있었던 것과, 닫을 수 없었던 것들”이라 명명하고 싶다. 은희는 친구와 후배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지영 선생님을 통해 인생에 용기를 얻는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생인 은희의 힘으로 봉합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붕괴된 교각, 쫓겨난 철거민, 마음을 열었던 사람의 죽음. 그러나 은희는 여전히 필사적으로 두드린다. 은희가 번지수를 제대로 짚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알 수 없다.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相識滿天下 知心能幾人. <벌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꼽을 명대사이자 격언이 아닐까.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많으나, 마음을 아는 자는 과연 몇인가. 1994년을 살아갔던 사람들이나 2020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공감할 수 있는 문구다. 아니 오히려 보다 물질화된 25년여 후의 지금이야말로 이 격언이 더 와닿는다. 시대상과 우리의 개인적 자화상, 더불어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가령 남성의 폭력성, 가부장제라든가...나 역시 여동생을 둔 오빠로서 잠시나마 내가 누렸던 시대와 나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보았다) 모두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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